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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에세이집 펴낸 이상협 KBS 아나운서

‘혼자 전문가’가 추천하는 ‘혼자서도 잘 있는 법’

2023. 05. 29 by 이영광 객원기자

[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KBS 클래식FM <당신의 밤과 음악>을 진행하는 이상협 KBS 아나운서가 4월 말 『나에겐 가까운 바다가 있다』란 제목의 에세이집을 출간했다. 여행 마니아이자 자칭 ‘혼자 전문가’인 이 아나운서는 첫 에세이집 『나에겐 가까운 바다가 있다』에 읽고 쓰고 다니며 해왔던 혼자만의 놀이법과 일상을 여행하는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에서 『나에겐 가까운 바다가 있다』의 저자인 이상협 아나운서를 만나 에세이 출간 소회와 ‘행복’ ‘여행’ ‘혼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이 아나운서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이상협 KBS 아나운서의 에세이집 『나에겐 가까운 바다가 있다』 홍보 이미지
이상협 KBS 아나운서의 에세이집 『나에겐 가까운 바다가 있다』 홍보 이미지

첫 에세이 『나에겐 가까운 바다가 있다』 출간 소회가 궁금합니다.

“처음에 시집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 두 번째로 낭독 안내서 『내 목소리를 좋아하게 됐다고 말해줄래』라는 책을 냈고 이번이 세 번째 책인데요. 이번 책은 ‘에세이’로 세 책 장르가 다 다르죠. 저의 자아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멍석을 깔아준 것 같아서 작업하면서 재밌었어요.”

세 번째 책 출간인데 느낌이 다를 것 같아요. 이전과 큰 차이가 있다면?

“대한민국에서 시인으로 등단해서 첫 번째 시집 갖는다는 건 정말 소중한 일이거든요. 전통 문학을 내가 할 수 있었다는 성취감이 매우 컸고요. 에세이도 당연히 문학이지만, 이번에는 긴장 풀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장이어서 훨씬 좋았어요.”

『나에겐 가까운 바다가 있다』는 어떤 책인지 소개해 주세요.

“‘혼자서도 잘 있는 법’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혼자서 잘 있다는 건 잘 존재한다는 것이고, 데카르트 대명제를 빌려 얘기하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잖아요. 우리는 끊임없이 외부적인 자극을 받고 있고 그 자극에 의해 계속 변화해 나가거든요. 변화해 나갈 때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으면 나를 잃어버리는 거죠. 그러니 잘 존재하기 위해서는 내가 이 세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보통 사회가 만들어 놓은 욕망을 나의 욕망이라고 착각하고 살고 있거든요. SNS를 보면서 멋진 데 가고 좋은 옷 입고 하는 걸 나의 욕망이라 착각하곤 하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자아를 만드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자아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우리는 초중고를 거치면서 공부 잘하는 게 가장 큰 미덕이며 제일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고, 대학 입시 이후에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 승진하는 걸 성공으로 여기며 살죠. 하지만 이건 사회가 맞춰놓은 기준들이거든요. 개인의 행복이란 관점에서 봤을 때 그것이 행복의 일부가 될 수 있지만 행복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아주 작은 데서도 행복을 찾을 수 있죠. 이를테면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인기 프로그램 있잖아요. 우리는 거기서 주인공이 채집한 걸 저녁거리로 만들어 먹으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데, 그 가치가 승진이란 사회적 가치와 비교를 했을 때 쓸모없다고 얘기할 순 없거든요. 저는 동등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각자에게 그런 가치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사회가 만들어 놓은 레일 안에서 계속 움직이다 보니 나에 대해 돌아볼 시간이 없죠. 이 책을 통해 그런 힌트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이상협 KBS 아나운서
이상협 KBS 아나운서

레일 안에서 벗어나면 사람들이 불안한 시선으로 볼 수 있죠. 그런 게 두려워서 레일 안에 머물고자 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죠. 레일 안에서 느껴지는 안전함, 평온함이 있어요. 하지만 그것을 조금씩 깨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거죠. 새로운 행복으로 치환될 수 있고요.”

『나에겐 가까운 바다가 있다』 책 제목의 의미는?

“많은 사람들이 힘들 때 바다를 생각하죠. 근데 사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서 어디로 가든 바다를 만나게 되죠. 바다는 일종의 비유입니다. 내가 생활하면서 찾을 수 있는 작은 위안이나 행복 같은 게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의미예요.”

아나운서님에게 바다는 뭔가요?

“저에게 바다는 아주 가까이 있는, 소소한 행복이에요. 아침에 ‘오늘은 날씨가 좋구나’ ‘봄이 됐으니 여의도에 가면 벚꽃이 만개했겠네, 그걸 봐야지.’란 생각에 설레는데 저는 그런 게 훨씬 소중해요.”

아나운서로 활동하면서 시집도 내고 앨범도 내셨던데 대단하신 것 같아요. 책 끝부분에 부캐에 대한 얘기도 나옵니다만, 힘들진 않으세요?

“힘들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말씀하신 게 사실 시간 축을 두고 보면 오랫동안 일어난 일들이에요. 대학교 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나가서 상을 받았고, IMF 터져서 음반을 못 냈죠. 인디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너무 안 좋아서 베이스캠프를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KBS에 입사했고, 그다음에 음반을 내게 됐는데 그 시간 텀이 거의 10년이에요.

그리고 한 5, 6년 뒤에 KBS에서 큰 파업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시간이 너무 많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시를 좀 파고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 써서 신춘문예 몇 군데에 투고했는데 현대문학에서 신인상을 받게 되며 등단했어요. 또 4년쯤 뒤에 시집이 나오고요. 이게 약 20년 정도의 히스토리 안에서 일어난 일들이어서 시간 축으로 놓고 보면 대단한 일들은 아닌데, 압축해 놓고 보면 ‘할 거 다 했네’란 생각이 들 수 있을 듯해요.”

<들어가며>에 보니 자칭 ‘혼자 전문가’라고 나와요. 혼자서 뭔가 하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혼밥이나 혼술도 하시고요. 하지만 가끔은 외롭다는 생각도 하시지 않나요?

“외로울 때 느껴지는 감정 있잖아요. 그게 저한테는 쾌감의 일종이에요. 외로울 때 훨씬 마음이 편하고 그렇기 때문에 감수할 수 있죠. 저는 예전부터 혼자 있는 시간을 되게 좋아했는데, 그 시간에 나에 대해 많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를테면 ‘양성적 이기주의자’ 같은 사람인데 그러다 보니 저는 타인에 대해서 관심이 적은 편이에요. 예를 들어 누가 어디에 집을 샀다든지, 주식을 해서 대박이 났다든지, 누가 결혼을 잘했고 누구 아이가 영재학교 다니는지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저는 제 행복에 집중하고 싶고 제 가족들이 행복한 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의미가 없는 거죠.”

이상협 KBS 아나운서의 에세이집 『나에겐 가까운 바다가 있다』 표지 (이미지=이른비 출판사)
이상협 KBS 아나운서의 에세이집 『나에겐 가까운 바다가 있다』 표지 (이미지=이른비 출판사)

지하철보다 버스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버스의 매력이라면 뭘까요?

“지하철을 타면 창문 밖 풍경이 다 어둠이잖아요. 물론 어둠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고 성찰할 수 있고 조금 차분한 느낌을 갖고 이동할 수 있긴 하죠. 그래도 저는 버스 앞자리에 타는 걸 좋아해요. 일단 풍경들이 계속 스쳐 지나가고 그 풍경의 흐름과 시각적인 자극이 있잖아요. 그 시각적인 자극들이 생각으로 치환되고 그러면서 아이디어 같은 것들이 많이 생각나요. 그래서 그 시간을 좋아하는 거죠.”

여행 관련 내용도 있더라고요. 코로나 기간엔 엄청 답답하셨겠어요?

“그렇죠. 보통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데 (코로나 땐) 여행이 우리를 떠나서 많은 분들이 답답해하셨을 것 같아요. 저도 사실 쉬는 기간이 있으면 가능하면 비행기 타고 가곤 했는데 갈 수가 없었으니까 답답했죠. 하지만 답답하다고 스트레스만 받고 있으면 안 되고 대안을 찾아야 하잖아요. 그 기간에 서울 곳곳을 많이 돌아다닌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장소를 꼽으신다면?

“거기도 서촌 쪽이었어요. 그냥 무작정 언덕으로 올라갔는데 아직도 달동네 같은 데가 남아 있더라고요. 어릴 때 보던 풍경들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고 거기서 바라보는 경치도 좋았어요. 근데 그때 무작정 갔기 때문에 다시 찾아갈 방법은 없을 것 같아요.”

공항 가는 것도 좋아하시던데 공항에 가는 것만으로 기분 전환이 되나요?

“어렸을 때부터 공항 가는 걸 좋아했어요. 공항이라는 공간 자체가 재밌는 게 비행기 볼 수 있고 여행 떠나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죠. 거기 앉아서 햄버거 하나 먹고 커피 마시면서 돌아다니는 거예요. 구조가 또 독특한데 공항엔 웬만한 것들이 다 있어요. 약국도 있고 알고 보면 사우나도 있죠. 공항 목욕탕 리모델링 했다길래 2주 전에 아들하고 둘이 놀러 갔거든요. 가서 목욕하고 개운한 마음으로 나와서 돌아다녔는데, 사람들 구경하고 비행기 뜨는 거 보는 게 재밌어요.”

기차역도 있고 버스 터미널도 있는데?

“기차역도 가끔 가요. 거기서도 약간 설레는 느낌 받는데 기차가 갈 수 있는 곳은 땅 안에서라는 한계가 있잖아요. 근데 공항은 지구라는 스케일에서 어디론가 떠나는 장소이기 때문에 조금 다르죠. 해방감 같은 게 있어요.”

이미지 출처=Pixabay.com
이미지 출처=Pixabay.com

아버지가 KBS 아나운서였는데, 아버지께서 근무한 회사 다니는 것에 대한 장단점이 있을 것 같아요.

“안 좋은 점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2세를 보면 불편을 많이 겪어요. 지역사 같은 경우에 있긴 하지만, 본사로 뽑힌 건 유일하게 저밖에 없어서 주목을 많이 받았죠. 약간의 역차별 같은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버지께서 아나운서에 적합한 목소리와 몸을 물려주신 덕분에 잘 먹고 잘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장례식이 슬프지 않았으면 한다고 쓰셨던데 왜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죽음의 방식이 사실 다양하죠. 자연사도 있고 사고사도 있고 그에 따라서 주변 사람들이 슬픔을 느끼는 건 자연스럽고 당연해요. 저는 획일화된 장례식 문화에 대해서 지적하고 싶은 거에요. 우리가 문상 가서 가장 먼저 묻게 되는 건 그분이 어떤 분이셨냐가 아니라 어떻게 돌아가셨냐죠. 사실 그건 고인의 일생이 마감되는 한 지점이잖아요. (유가족은)고인이 어떤 분이었는지를 알려드려야 하고, 이런 분의 장례식에 내가 애도하러 왔구나 느끼는 게 저는 먼저라고 봐요. 어떻게 죽었는지가 뭐가 중요한가요? 그런 장례 문화가 조금씩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술 이야기도 나와요. 5살 때 처음 맥주를 마셨다고 나오던데 빠르시네요(웃음).

“아버지가 술을 워낙 좋아하셨고요. 맥주 따라놓으면 거품 생기는데 어린아이들이 보면 신기하잖아요. 그래서 거품 먹는 걸로 음주 생활을 시작한 거죠. 본격적으로 술을 먹었다는 게 아니라요.”

혼술 자주 하세요?

“저는 혼자 술 먹을 때가 편해요. 사람들이 있으면 술을 먹으면서 어떤 사람과 중간 지점에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야 하잖아요. 근데 혼자 술 먹으면서는 저 혼자 얘기하는 거니까 되게 편하죠.”

버리는 것에 대한 얘기도 있던데, 잘 버리는 방법이 있을까요?

“제 책에 썼듯 곤도 마리에의 방법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는 게 그녀의 키워드거든요. 그건 아마 본인이 제일 잘 알겠죠. 버리지 못하는 건 욕망이 많다는 거고, 잘 버리는 건 내 욕망을 함께 잘 정리해서 버릴 수 있는 거죠. 저도 여전히 잘 못해서 ‘이렇게 하면 잘 버릴 수 있고 저는 버리기의 전문가다’라고 말씀드리기는 힘들어요. 옛날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좋아해서 잘 못 버리는 편인데, 언젠가 깨달음을 얻는다면 싹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다음에 또 에세이집 낼 계획 있나요?

“없어요. 힘들게 쓰고도 책 내는 과정이 너무 어려워요. 또 책 내고 나서도 여러 가지 다른 과정들이 있거든요. 인스타나 이런 데 홍보하게 되면 ‘좋아요’ 받아야 되고 이벤트도 해야 하죠. 그게 적성에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나중에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책을 쓰긴 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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