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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 의혹' 커뮤니티 주장 단순 전달 한 발 더 나간 조선일보, 악마의 편집 "증언 보도, 본질 가릴 수 있다"

이태원 참사, '토끼머리띠 남성' 찾아 헤매는 언론

2022. 11. 01 by 송창한 기자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해 추측성 보도를 자제하라는 당부가 이어지는 가운데 '토끼머리띠를 한 남성 등이 고의로 밀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 보도되고 있다. 참사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킬 수 있는 단편적인 보도는 지양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월 30일 한국일보는 기사 <쏟아지는 "밀어, 밀어" 의혹... 온라인 동영상·목격담 잇따라>에서 누군가 고의로 밀어 참사가 발생했다는 온라인상 주장을 모았다. 

한 발 더 나간 31일 아침 조선일보는 기사 <“5~6명이 밀기 시작”“토끼머리띠 남성” 잇단 증언... 경찰, CCTV 분석>에서 "이태원에서 발생한 핼러윈 압사 참사와 관련 누군가 고의로 밀었다는 증언이 잇따라 나오는 가운데, 경찰이 현장 일대의 CCTV 영상 등을 확보해 사고 원인 규명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10월 30일~31일 한국일보 
10월 30일~31일 한국일보·조선일보 보도 갈무리

조선일보는 "사고 현장에 있던 목격자나 생존자들 사이에선 누군가 고의로 밀었다는 증언이 다수 나오고 있다"면서 온라인에 게재된 주장을 전했다. 이어 조선일보는 "증언이 사실이라면 고의로 밀기 시작한 이들은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면서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과 교수의 YTN 인터뷰 내용을 인용했다. 

조선일보는 염 교수가 "누군가가 누구를 위해를 가할 의도로 밀었다면, 여러 형법적 부분이 걸려 있을 수도 있다. 고의 상해나 살인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해 등의 죄목이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다만 조선일보는 염 교수가 "자발적 행사 참여 행사에서 누구 하나를 특정해 꼭 집어 말하긴 어려운 부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고 했다. 이후 중앙일보, MBN, 인사이트, 국제뉴스, 금강일보, 시사매거진, 주간조선, 여성조선, 대경일보, 위키트리, 뉴스1, 머니투데이 등에서 조선일보 보도와 유사한 내용의 보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염 교수는 30일 YTN에 "예를 들어 고의적으로 상해를 했다든지 살인죄라든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해라든지 여러가지 죄목이 적용돨 수 있지만, 이건 그냥 자연적인 현상"이라며 "누구 하나가 지하도에 떠밀려가듯 떠밀린 것이다. 결국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행사도 문제가 있을 수 있구나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염 교수는 '아직까지 알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진행자의 발언에 "그렇다. 경찰이 수사를 해서 진위를 밝혀야 되는 부분"이라고 답했다. 

31일 오전 경찰청 기자간담회에서 '토끼머리띠' 질문이 나오면서 관련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은 이날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정례 기자간담회를 열고 30일 하루 동안 총 44명을 조사했으며 CCTV 52대와 SNS 영상 등을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 본부장은 취재진 사이에서 '골목길 위쪽에서 밀었다는 다수의 진술이 있었다'는 질문이 나오자 "목격자 조사, 영상 분석을 진행 중이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경위를 확인하고 있다"고 답했다. 남 본부장은 "목격자 진술이 엇갈려 추가로 경위를 확인할 예정"이라고 했다. 유명인을 보기 위해 사고 현장에 인파가 몰렸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남 본부장은 "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고 했다. 남 본부장은 현재까지 범죄 혐의 적용을 검토할만한 입건 대상은 없다고 덧붙였다.

대형참사에 확인되지 않는 추측성 보도를 자제하라는 당부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기자협회는 31일 '재난보도준칙 준수 요청'을 하면서 "일부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와 확인되지 않은 SNS 게시물들이 넘쳐나면서 수습 현장에 혼란을 주고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에 2차 피해를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기자협회 재난보도준칙은 '재난 보도는 사회적 혼란이나 불안을 야기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재난 수습에 지장을 주거나 피해자의 명예나 사생활 등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날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성명을 내어 "참사 현장을 취재할 때엔 말과 움직임에 더욱 마음을 써야 한다. 무차별적 인용, 확인 없는 추측성 보도는 참사 현장에 발붙여서는 안 된다"며 "이미 욕심 섞인 보도가 많았다. 지금은 시·청취율과 인터넷 클릭 수 따위를 노릴 때가 아니다"고 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30일 성명에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는 고인과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 혐오와 낙인은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여 재난 상황을 해결하는 데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면서 "언론은 취재보도 과정에서 피해자의 명예와 사생활 등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사회적인 혼란이나 불안을 야기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및 경찰 관계자 등이 '핼러윈 압사 참사' 현장감식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언경 뭉클미디어인권연구소장은 31일 미디어스와 통화에서 "인터뷰·SNS 등에 그런 말들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허위여부를 떠나 길이 너무 막히고 움직이지 않으니까 뒤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그런데 이것이 사고의 실질적인 원인인가를 생각해봤을 때,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래서 죽었다' 연결시키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왜, 어쩌다 그렇게까지 통제되지 않은 상황에 사람들이 몰렸는지 근본적인 얘기하지 않고 쉽게 원인 제공자를 찾으려는 생각일 수 있다"며 "언론이 증언을 외면할 수 없지만 이것을 참사의 직접적·근본적 원인이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보도에 담아야 한다. 막연히 증언만 강조한 보도를 했을 때에는 본질을 가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지금 '밀었다' '유명인이 와서 몰렸다' 등 원인이 단순화되는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사람이 많이 온다고 죽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며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너무 속상하고 참담해서 그렇게 기자들에게 말할 수 있지만, 기자는 그것만 전달해서는 안 된다. 자칫 와전될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해 현상과 원인을 다각도에서 전문적으로 얘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기자들은 사건을 보도할 때 원인을 집중적으로 취재하는데, 개인적인 원인을 찾는 것 같아 아쉽다. 중요하지 않다고 볼 수 없지만 그것이 원인의 전체인 것처럼 보도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누군가 밀었을 수 있다. 그런데 그 공간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있다는 걸 알고도 안전대비를 못한 것은 경찰·지자체·정부"라고 말했다.

윤 이사는 "현장에 있던 사람이 '누가 밀었다', '누굴 보러 갔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지만 언론인은 이를 그대로 쓰는 것에 그치면 안 된다. 구조적인 문제를 못 보게 하는 보도로 비칠 수 있다"며 "그 사람들 역시도 사고를 당했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서울 한복판 길거리에서 150여명이 사망한 사건이 말이 되는지를 따져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윤 이사는 '토끼머리띠' 남성 등에 대한 형사처벌 가능성이 언론에서 거론되는 데 대해 "그런 것 할 시간 있으면 현장에 투입된 정복입은 경찰인력은 58명뿐이었다는데 그런 문제를 제대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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