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국가대표 출신 유망주였다. 하지만 프로축구 K리그 승부조작에 연루되면 인생이 급격히 틀어졌다.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실혈을 선고받았다. 그의 이름은 김동현이다. 빠르게 잊혀졌던 그 이름이 다시 검색어 상위에 올랐다. 이번엔 더 극악하다. 그는 특수강도 혐의로 구속되었다.
김동현은 전직 프로야구 선수 출신 윤 모씨와 함께 서울 강남의 한 빌라 주차장에서 박모(45)씨를 흉기로 위협해 차량을 빼앗고 납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국가대표 출신이란 화려한 딱지가 붙어있는, 한 비리 스포츠맨이 저지른 엽기적 행각에 언론은 그야말로 넋을 잃었다.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는 판에 박은 듯 같다. 김동현 선수가 얼마나 주목받던 선수였는지에 대한 새삼스런 회고 그리고 강남서가 배포한 보도 자료를 무협지 풍의 서사 구조로 살린 생생한 범죄 과정 묘사가 수반되고 있다.
물론, 충격적인 사건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언론이 이 사건을 대하며 내세울 반응의 전부가 ‘충격’뿐이어서만은 곤란하다. 국가의 관리와 지원까지 받았던 전도유망한 엘리트 스포츠 선수가 승부조작이라는 범죄를 경유해 끝내 사회적 흉악범이 된 경로에 대해 물을 수 있어야하고, 당연히 물어야 한다. 그것은 모두가 안다고는 하지만 어떤 언론도 현실에서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는 저널리즘의 본령과 관련한 태도이기도 하다.
한 언론인은 ‘타락한 개인은 병든 체제의 자식’이라는 말을 했던바 있다. “체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악인은 탄생하고, 그렇게 탄생한 악인이 공공의 적이 됨으로써 위기의 체제는 구원받는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K리그 승부조작 파문 당시 ‘연루 선수들 역시 또 다른 이름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운동선수는 다른 가치들은 모두 배제한 채 오로지 승부에만 반응하도록 길들여진다. 인성은 메마르고, 감성은 황폐하게 훈련시키는 풍토야말로 승부조작이라는 기형적 사건을 낳은 토대다.
승부조작 파문이 발생하고 협회는 언론을 향해 사과하고, 연루된 선수들을 가차 없이 리그에서 내쫓아 버리는 것으로 사건을 봉합했다. 평생 운동 외엔 다른 것을 배워보지도, 경험해보지도 못했던 수십 명의 선수들은 하루아침에 천하의 몹쓸 놈이 되어 냉혹하게 공동체에서 쫓겨났다. 김동현 같은 선수는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 인물이었다. 언론은 일일이 수십 명의 이름을 거론할 수 없으니 김동현을 비롯한 몇몇 이름 있는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팔았다.
그렇게 그들은 사회에 나와 건전한 생활인이 될 아무런 준비 없이 버려졌다. 그들을 그렇게 버린 협회는 마치 그런 일은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 모두가 범죄자가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닐 테다. 하지만 그들은 길게는 십 수 년 동안 ‘수업 결손, 과도한 훈련, 제한된 관계’로 점철된 삶을 살며 사실상 격리되어 운동 기계로만 키워져온 이들이었다. “운동에서 탈락하는 것은 곧 인생에서 탈락하는 것”이란 훈계를 뼈 속 깊이 각인해온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운동을 할 수 없게 된 인생 앞에서 어떤 선택들을 하고 있을까?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웅진지식하우스)에 따르면 “한국에서 운동선수라는 직함을 갖고 있는 청소년은 14만 명 가량”된다. 이 가운데 운동을 통해 대학에 가는 비율은 10% 정도다. 대학에서 사회로 진출하는 비율이 또 10% 가량이다. 운동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 가운데 직업 운동선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은 고작 1%란 얘기다. 김동현 같은 선수는 이 1%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고 그 1%들 가운데서도 제일 앞 선에 있던 선수였다. 이런 선수가 하루아침에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함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당연히, 일종의 완충장치와 조정기간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김동현 사건을 보며 가차 없이 선수들을 내쫓으며 모든 것을 박탈했던 그 협회는 이후 그 선수들을 어떻게 관리해왔을지 의문이 든다. 이들이 극복해야 할 현실적 장벽이 무엇인지 협회는 최소한의 고지라도 해줬던 것일까?
축구계의 원로인 김호 감독은 언젠가 사석에서 “평생 운동만 해온 선수들은 한 번 탈락하면, 다른 재도전 기회가 없다. 그대로 방치된다. 이때 유혹이 뻗치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범죄자가 될 수 있다”며 “협회는 물론 축구계 선배들이 쉬쉬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일이 날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던 바 있다. 김호 감독의 이 안타까움은 불과 몇 년도 안 돼 현실의 문제가 되었다.
이 시간 현재 김동현의 이름은 검색어 순위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 사람들의 관심을 짚은 언론은 부지런히 그리고 전폭적으로 사건을 옮겨주고 있다. 그런데 여러 기사를 읽어봐도 도통 언론이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가 읽히지 않는다. 어떤 언론도 김동현이 왜 이렇게까지 타락하게 된 것인지는 묻지 않고 있다. 언론이 이 질문은 하지 않는 한 탈락한 선수들의 범죄는 또 재현될지도 모른다. 그 개인들이 특별히 더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운동선수가 육성되는 구조적 시스템이 그러하고 거기서 탈락한 이들에게 기회를 줄 만큼 한국 사회가 넉넉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언론이 하는 짓은 병든 체제의 자식을 향해 ‘여기 병든 자식이 있다’고 손가락질만 하는 격이다. 이 병을 만들고 방치하는데는 언론의 책임도 적잖은데 말이다. 그렇다면, 이 곪은 병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지를 물어야 한다. 높은 조회수에 묻혀 늘 유예되는 본질에 대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