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여론이 '중앙' 김진의 ‘색깔론’을 거부한 이유 < 비평 < 뉴스 < 큐레이션기사 - 미디어스

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주요메뉴

본문영역

비평

[비평]사실이 없는 색깔론의 무력함

여론이 '중앙' 김진의 ‘색깔론’을 거부한 이유

2012. 03. 27 by 김완 기자

다시, ‘색깔’이다. 선거를 보름여 앞두고, 조중동이 정치를 붉게 물들이고 있다. 소재는 ‘경기동부’다. 구태의연하더라도 다시 ‘주사파’ 타령이다. 시기는 맞춤하고, 의도는 적나라하다. 비판에 합세한 조중동의 흐름은 일치된 것이었고, 기사의 전개는 유려하다. 조중동은 경기동부를 호명하곤, 사실에 대한 확인과 검증을 건너뛰고 곧장 가정과 주장으로 향했다. SNS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최대한 기정사실화해, 상황을 최대한 익숙한 색깔론의 구도로 단순화했다.

26일까지는 조중동 모두에서 ‘스트레이트’가 범람하던 국면이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차원에서 진중권 교수의 멘션이 인터뷰 코멘트처럼 널리 인용됐고, 조중동의 구미에 딱 맞는 이야기를 하는 변희재의 발언이 비중 있게 다뤄졌다. 이정희 의원은 ‘쉬리’의 여전사가 연상되는 ‘숙성 괴물’로 묘사되었고, 그녀의 남편은 신비감이 최대한 증폭된 ‘주사파의 이데올로그’로 표상됐다.

하지만 이 대표가 사퇴하고 통진당이 조선일보에 대한 취재거부를 선언한 27일로 접어들며 상황이 좀 변화하고 있다. 소설보다 더 흥미롭던 ‘스트레이트’의 국면이 지나가고, 주장/주의가 난무하는 ‘프로파간다’ 지면이 찾아오자 본색이 드러나고 있다.

▲ 27일자 김진 칼럼 "역사가 이정희를 거부한 이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이다. 새누리당 대변인으로 임명된 중앙일보 출신 이상일 대변인이 연일 '색깔론'을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그의 동료였던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은 이번 ‘색깔론’에 ‘운명’과 ‘영령’까지 끌어들였다. 김진은 ‘역사가 이정희를 거부했다’고 규정하며, “2년 전 유시민을 무대에서 끌어내렸던 국가안보의 영령”을 또 보았노라고 감탄했다.

김진의 논법을 따라 에두르지 말고, 질러 말해보자. 김진이 2년 전 사례를 꺼내들며, 경기동부를 희생양으로 삼아 원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전선’의 구축이다. ‘MB심판론’의 총선이 아니라 ‘야당심판론’의 총선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권력이 버젓한데, 죽은 권력을 다시 심판하자는 건 논설위원 씩이나 되서 주장하기엔 멋쩍은 '프레임'이다. 제 정신을 가진 언론인이 말하기는 힘든 언어 도단다.

김진은 경기동부를 지렛대로 조중동은 죽은 권력을 심판하자는 낙후된 프레임을 버리고, 미래 권력(이 될지도 모르는 이들을) 심판하자는 세련된 논법을 출격시킨다. 실제, 조중동은 경기동부가 등장한 이후 부쩍 통진당이 원내교섭단체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부각하고 있다. 김진은 아예 이정희를 향해 ‘의회 지도자’라는 표현까지 썼다. 진보정당 대표에 대한 유례없을 융숭한 대접은 역설적이게도 ‘야권 총선 승리=경기동부 미래권력’이란 도식의 구축을 위한 디테일인 셈이다.

그러나 김진의 이 규정은 무리하다. 무수한 갈래 길과 드넓은 공백이 있다. 한 트위터리안은 이번 사건이 “골방에 있던 운동권 정파 조직이 세상에 드러난 일”이라고 했는데, 김진은 이를 받아 말하자면 “운동권 정파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고 있는 셈이다. 그리곤 좌고우면하지 않고, ‘색깔론’으로만 일방 돌진했다. 전매특허의 발현, 전가의 보도, 거침없는 하이킥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잘 먹히지 않는다. 트위플은 ‘주사파의 실체가 드러났다’는 설레발에 비해 여전히 이정희 엄호 양상은 두드러지고, 야권연대에 대한 지지가 공고하다는 점은 여론조사 결과로 확인된다. 왜 일까? 일차적으로 말하면 ‘사실’의 힘이 없기 때문이다. 조중동은 경기동부에 대한 ‘사실’을 갖고 있지 않고, 주사파에 관한 ‘취재’된 진실이 없다. 다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가정’을 기정사실로 변환하는 논리적 ‘기술’로 사건을 구성하고 있을 뿐이다. 늘 팔아왔던 ‘색깔론’을 도래한 정치의 계절에 다시 팔고 있을 뿐이다.

이건 흡사, 아스팔트 우파라고 불리는 어르신들이 집회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미국이 도와줘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됐다’고 주창하는 안보에 대한 절대적 믿음 같은 것과 다르지 않다. 내용적으로 빈약하고, 효과 면에선 낙제점이다. 실상, ‘색깔론’이라고 하는 전가의 보도가 이렇게 무딘 칼이었단 점은 놀랍기까지 하다. 지난 십 수 년 간 조중동이 휘둘러 온 ‘색깔론’에 비해 조중동 내부에 축적된 내용의 실체는 트위터에서 떠도는 멘션만큼도 안 된다. 조선은 87학번 이정희를 92년에 결성된 전국연합이 육성했다고 할 만큼 부정확하고, 중앙일보 김진은 ‘영령’을 끌어들이지 않고선 논리를 세우지 못할 정도로 감정적일 뿐이다.

경기동부의 실체에 대해 조중동은 거의 아는 게 없다는 점, 김진이 주사파에 관한한 ‘카더라 통신’ 이상의 정보력이 없다는 점은 그 자체로 매우 시사적이다. 이는 조중동이 누군가에겐 잘 들리지만, 대부분의 이들에겐 전혀 소구되지 않는 메아리라는 점을 보여준다. 양질의 정보가 거의 무제한적으로 제공되는 미디어환경에서 늘 같은 얘기를 하지만 별다른 정보는 없는 김진과 같은 언론인의 존재감은 점점 옅어질 수밖에 없다.

▲ 이정희 대표가 사퇴한 이후에도 조선일보는 계속 '경기동부'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스트레이트를 가장한 '소설'이 범람했는데, 통합진보당은 결국 조선일보에 대한 취재 거부를 선언했다.

그래서, 다시 제기된 ‘색깔’이지만 이번 선거도 ‘색깔’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조중동이 열과 성을 다해 이 대표와 야권연대를 물어뜯는 시간에도 여론은 야권연대를 찍겠단 의지를 다졌다. 김진이 과대망상적 역사를 본 순간,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정희 대표의 사퇴를 정점으로 여론이 다시 ‘정권심판론’을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과학'을 전했다. 야권이 ‘잡음’을 일으킬 때, 이를 색깔론으로 역공한 조중동의 타이밍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영향력은 신통치 않다. 구성력이 너무 떨어지고, 구성 자체가 견딜 수 없이 진부하다. 단언하건데, 김진이 말한 ‘역사의 비상한 작동’ 같은 건 없다. 경기동부가 호명되고 또 주사파 타령이 울려 퍼지지만 조중동이 원하는 ‘전선’은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영령'을 끌어들이는 것은 이미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는 자기 고백같은 것이 아닌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최신순 추천순  욕설, 타인비방 등의 게시물은 예고 없이 삭제 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2012-03-28 02:51:13
한국역사에 가장큰 불행은 조중동이란 매체가 태어난것이죠 친일청산을했다면 태어나지도 않았을 문예창작소설신문
한희수 2012-03-27 19:18:29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조중동을 안 읽으니 가끔 걔들 무슨 짓을 하는지 좀 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