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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민심 프리뷰]오세훈은 가고, 박근혜는 지고, 안철수가 떳도다

대통령께서 정말 푸짐한 추석 밥상을 차려주셨구나!

2011. 09. 10 by 김완 기자

기자가 되고 나서 추석 민심의 향방을 결정지을 이른바 정치적 소재에 관한 얘기를 3년째 쓰고 있다. 고백하건대, 나는 매해 틀렸다.

첫 해엔 리얼 버라이어티에 대해 썼다. '공정사회'를 유독 강조하시는 대통령께서 '나만 아니면 돼'를 외치는 <1박2일>이나 '무한 이기주의'를 설파하는 <무한도전>을 가만두고 보지만은 않으시리라 썼다. 그해 명절 TV 편성표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재방, 재재방송으로 도배됐었다.

모름지기 추석이라면, 각 정파 정당의 정치적 입장이나 아니면 김정일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일고찰 그것도 아니라면 대통령이 특별히 분발을 강조한 개인들의 경제적 각성에 우리 가족은 어떻게 화답할 것이냐 정도가 논의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그해 추석은 <무한도전>, <1박 2일>, <패밀리가 떴다>로 삼분지계를 이룬 주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대한 호불호로 다른 모든 것이 덮였었다. 정치에 대한 염증이 극에 달해 세상이 예능과 그밖의 것으로 갈려버린 세태. 더군다나 그 웃음의 코드들이 대통령께서 밝힌 국정 지표를 가뿐히 우스운 것으로 만들며 주말 저녁 버라이어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도무지 인생의 전망을 세울 수 없던 상황에 대해 대통령께서 철퇴를 가하실 거라 썼었다. 틀렸다.

다음 해에 나는 민주당 경선과 <슈퍼스타K>에 관해 썼다. 그 해를 강타한 문화적 현상이었던 <슈퍼스타K>는 업계에선 불가능이라고 봤던 케이블 시청률 10%를 훌쩍 넘기며 세상을 강타했다. 세상이 겨우 아이돌 그룹의 외모적 차이와 창법의 유사성에 대해 얘기할 수 있을 때, 유행은 또 다시 존 박의 뉴욕스런 외모와 장재인/김지수가 불러 젖힌 '신데렐라'의 감동으로 한 발짝 나아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렵 민주당은 경선을 치렀다. 그리고 그 해 민주당 경선은 역대 최악의 흥행 부진을 보였다.

국민경선이라는 말이 무색했던 '그들만의 리그'는 박근혜라고 하는 절대 강자 앞에 누가 나서더라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자괴감과 겹쳐지며 우리는 정말 손학규 수준의 대중성으로 정동영 수준의 조직력을 갖고 미래 권력을 준비해야 하는 것인가하는 절망으로 이어졌다. 그 해에 대통령은 유독 '정의'를 많이 말씀하셨다.

딱 1년이 지났다. 세상은 깜짝 놀랄 만큼 변했다. 무엇보다 대통령께서 견딜 수 없이 외로워지셨다. 이제 오나 저제 오나 했던 '레임덕'은 실제 왔다는 비명 한 번 질러볼 새도 없이 훌쩍 와버렸다. 8일 밤 청와대가 부랴부랴 국영방송을 동원해 평일 프라임 시간대에 '대통령 쇼'를 편성한 것은 가을밤의 스산함에 대통령이 너무 외롭지 않을까를 염려한 특단의 배려였다. 간만에 TV에 출연하신 대통령은 이러저러한 말씀을 하셨지만, 종합해보면 '외롭다'는 감정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번안일 뿐이었다. 올해 추석 밥상머리가 '안철수에 의한, 안철수를 위한, 안철수의' 그것이 될 상황이 너무나 자명한 마당에 대통령께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에 대해 궁금할 국민은 없어 보인다.

물론, 대통령이니까 외로운 거다. 그건, 인정해줘야 한다. 게다가 인기가 형편없는 대통령이니까 더 외로운 거다. 물론, 그동안 나와 당신도 외로웠다.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이 아니어서 외로웠고, '어륀지'가 제대로 발음되지 않아 또 외로웠다. 미네르바 말이 맞는 것 같아서 외로웠고, 아무리 생각해도 천안함 사건의 진실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일어서 또 외로웠다. 그렇게 국민이어서 한 없이 외로웠다.

이제 더이상 추석 밥상에서 당신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슈퍼스타K>의 주인공을 모르는 내가 너무 세상에 뒤쳐진 것 같단 느낌일랑은 잊어도 좋다. 당신은 오세훈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애들 밥 먹이는 문제에 인생을 걸었다고 아예 밥숟가락 놓게 된 어느 멀끔했던 정치인의 '무리수'에 대해 실컷 얘기해도 좋다. 아니면 곽노현에 대해 말해도 좋다. 세상에 '선의'란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논쟁도 괜찮고,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검찰의 행태에 대한 법리적 비평도 나쁘지 않다. 만약, 누군가 '아무리 그래도 진보 교육감이 그러면 되냐, 진보도 똑같은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비장의 무기 안철수로 빠져나가라. 안철수를 보아라. 압도적 지지율을 기록하고도 선뜻 후보를 양보하지 않느냐. 진보의 인감됨이란 모름지기 이런 것이다.

내다보건대, 올해는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추석을 불과 20여 일 앞두고 이처럼 블록버스터 이슈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밥상 앞에 차려진 것은 기념비적인 일이다. 이제, 오세훈은 없고 '복지'가 논쟁의 대상이 됐으며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박근혜 없이도 대선 얘기가 되는 상황이 왔다. 안주 없이도 술이 술술 넘어가리란 얘기다. 정말, 놀라운 변화다. 이게 다 대통령께서 하신 일 아니겠는가. 추석 민심 프리뷰 3년 만에, 대통령께서 정말 푸짐한 밥상을 차려주셨다. 드디어 찾아온 정치적 격론의 계절, 이번 추석에는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론의 롤러코스터가 드디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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