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과잉복지를 경계하는 역사의 상징'이라는 오세훈 사퇴 감상법 < 비평 < 뉴스 < 큐레이션기사 - 미디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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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정계은퇴가 서울시장이 되는 발판이 됐음을 기억한다면

'과잉복지를 경계하는 역사의 상징'이라는 오세훈 사퇴 감상법

2011. 08. 26 by 김완 기자

오세훈 시장이 사퇴했다. 예상보단 이른 시점이다. 이로써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오는 10월 26일 치러지게 됐다.

'시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란 제목의 사퇴서를 통해 오 시장은 자신의 사퇴가 '순교'라는 점을 최대한 부각했다. 당과 청와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즉각 사퇴를 택한 것 역시 순교의 이미지를 최대한 강렬하게 남기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의 사퇴서에서 가장 인상적인 구절은 "과잉복지를 경계하는 역사의 상징"이란 표현이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역사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사퇴의 메시지와 이후 행보에 대한 단서를 분명히 한 '정치적 선언'으로 읽힌다.

▲ 오세훈 서울시장이 26일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연합뉴스

사실, 오 시장의 강렬한 '순교'는 아무도 원치 않던 것이었다. 당장에 한나라당의 반응이 그렇다. 오 시장의 사퇴가 알려진 후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는 이례적으로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당 지도부와 상의 없이 내린 독단적 결정"이라며 "오 시장에게 3번 농락당했다"고 말했다. 홍 대표가 말한 3번이란 당과 사전 협의 없이 주민 투표를 강행하고 다시 주민투표와 시장직 연계하더니 10월 초에 사퇴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즉각 사퇴 한 것을 말한다. 홍 대표는 "앞으로 다시는 오 시장을 보지 않겠다"는 말로 자신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를 전했다.

친박계 역시 오 시장의 행보에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긴 마찬가지다. 친박계는 주민투표의 발의에서부터 오 시장이 사퇴하는데 이르기까지 일련의 일들이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기획'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보내고 있다. 여기서 읽어야 할 행간은 사퇴 이후의 행보에도 역시 '기획'이 있는 것 아니냐는 점이다.

관련해 26일자 중앙일보는 '중도실용', '공정사회', '공생발전' 등을 기획해 낸 박형준 사회통합특보가 "무상급식 문제를 복지 포퓰리즘과의 대결 구도로 몰고 가면 보수층을 결집시켜 우리가 이길 수 있다"며 오 시장에게 주민투표를 권유했다고 보도했다.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의 멘트가 인용됐다. 박 특보가 주민투표로 승부수를 띄어 오 시장을 '보수의 영웅'으로 만든 뒤 박근혜 의원의 대항마로 만들려했단 '어마어마한' 얘기다. 박 특보는 오 시장의 대일고, 고려대 1년 선배로 오세훈 변호사에게 서울시장 출마를 권유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물론, 박 특보의 이런 계획은 지금까지의 결과만 놓고 보면 실패했다. 그리고 당장에 실패의 부담은 청와대의 몫이 되었다. 하지만 친박계 입장에선 청와대가 박근혜 의원을 주저앉히기 위해 일련의 기획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불쾌한 일이고, 기획이 끝난 것인지 확인되지 않아 불안한 일이다. 만약, 이번 주민투표가 성공했더라면 오 시장의 위상은 박근혜 의원의 그것과 견줄만한 상황이 올수 있었다. 지난 4년을 여당 속의 야당으로 절치부심해온 친박계 입장에선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한 가정이다. 행여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시장이 보수표를 결집시켰다는 점과 조중동이 취하고 있는 프레임과 완전히 일치하는 행보를 보인다는 점은 서늘한 일이다. 왜 그럴까?

▲ 26일자 중앙일보는 청와대 박형준 사회통합특보가 "무상급식 문제를 복지 포퓰리즘과의 대결 구도로 몰고 가면 보수층을 결집시켜 우리가 이길 수 있다"며 오 시장에게 주민투표를 권유했다고 보도했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오 시장은 현재의 당 지도부는 물론 친박계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고 더 이상 친이계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던져졌다. 당장에 한 치 앞의 정치적 전망도 갖기 어려운 냉혹한 처지에 몰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치적 생명력이 완전히 다했다고 보긴 어렵다. "과잉복지를 경계하는 역사의 상징"이란 그의 표현은 암시적으로 그 가능성을 말하고 있으며 주민투표가 청와대의 기획이었다면 더더욱 그렇다. 오 시장의 정치 이력 역시 그러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과거 국회의원 시절 오세훈 시장은 '오세훈법'이라고 불리는 정치자금법을 만든 바 있다. 오 시장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이른바 '오세훈 선거법'이라고 불리는 선거법, 정치자금법, 정당법 등 현행 정치관계 3법의 입법을 주도했다. 당시 정가에선 "오세훈이 다시 국회에 와도 못 지킨다"는 비판이 제기될 정도로 비현실적이란 평이 지배적이었지만, 오 시장은 '정계은퇴'라는 배수진을 치고 정치 개혁의 명분을 앞세워 법을 밀어붙였다. 이후 오 시장은 2004년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았지만, 2006년 지방선거를 통해 화려하게 정계로 돌아왔다.

당시 오 시장은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하며 불과 1년 여 전 '정계은퇴'를 선언했다가, 다시 정계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저 추상적인 '국민의 뜻'을 강조했을 뿐이었다. 그가 정계은퇴를 했다는 사실은 별다른 문제도 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 말고는 이길 사람이 없었기에 당은 물론 조중동까지 일제히 침묵했다.

지금껏 오 시장이 걸어온 정치의 길은 신념과 원칙보다는 순간적인 상황 논리를 명분으로 포장해 대중과 직접 거래하는 이미지 정치의 색채가 짙었다. 예컨대, '오세훈법'의 경우 국회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당시에도 그가 서울시장을 노리고 있었다는 얘기가 많았고, 실제 그러했다. '오세훈법'이 얼마나 정치 개혁에 기여했는지는 제대로 평가되지 않았으나 그는 좋은 이미지를 남긴 채 서울시장에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스타 보수 정치인을 원했던 조중동의 적극적 도움이 있었고, 조중동은 훗날 그가 서울시장 후보가 될 수 있도록 적극 배려하기도 했다. 서울시장 선거 당시에는 환경단체 경력을 앞세우며 '환경시장'을 슬로건화 했지만 당선된 이후 그의 서울시정은 아시다시피 철저히 토건 위주였다.

이번 주민투표 역시 과잉복지는 안 된다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중앙일보의 지적대로 실제 그 배경에는 '보수의 영웅'이 되어 박근혜에 대항하는 친이계 후보가 되고자했던 그의 정치적 욕심이 깔려 있다. 그는 이번 주민투표로 단박에 '보수의 영웅'이 되는 데는 실패했지만, 보수표의 결집이라는 소기의 목적에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보여주었다. 이는 조중동이 '투표율'의 의미를 부각하고 여전히 '단계적 복지'에 대한 지지가 '전면적 복지'에 대한 지지보다 높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설파하고 있는 모습에서도 잘 드러난다.

내년 대선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오 시장이 노리는 것은 차차기가 아니라 차기다. 내년 대선의 프레임이 '경제냐 평화냐' 혹은 '성장이냐 분배냐'와 같은 전통적 맥락이 아닌 '단계적 복지냐 아니면 전면적 복지냐'로 짜여 진다면 이는 전적으로 한나라당에게 불리한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의원마저 '복지의 확대'를 노선으로 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복지 담론에선 결코 야권을 이길 수 없다.

주민투표 패배에 대한 조중동의 당혹감과 우려 역시 바로 이 지점에 기인한다. 복지담론이 지배하는 선거라면 제 아무리 박근혜 의원이라도 불안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방법은 이 판을 깨는 것뿐인데 현실 정치인 가운데 '복지는 망국'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력을 갖고 있는 이는 이제 오세훈 시장뿐이고, 오 시장은 그러한 프레임으로 충분히 경쟁력 있는 보수표를 모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유일한 정치인이다.

결국, 오 시장이 다시 정치로 돌아올 수 있는 시기는 과잉 복지가 경계되는 아주 먼 훗날이 아니다. 스스로를 '과잉복지를 경계하는 역사의 상징'이라고 칭한 오 시장은 복지에 관한 얘기가 과잉돼 정권을 내어 줄 위험이 도래한다면 언제든 다시 불러질 수 있다. '정계은퇴'가 변호사 오세훈을 서울시장으로 만드는 발판이 됐듯, '시장직 사퇴'가 뜻하지 않게 전혀 다른 맥락으로 활용될 수 있음을 예민하게 주시해야 할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던 보수세력과 조중동은 결코 정권을 내어줄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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