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북 관계에 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북한이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비밀접촉의 내용을 폭로한 어제(2일) SBS 8뉴스의 첫 마디였다. 8뉴스는 클로징에선 "북한이 1일 발표를 통해 노리는 효과 중에 하나가 남남 갈등일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망신이냐며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를 바라는 겁니다. 잘못이 있었다면 지적하되, 냉정하고 정밀하게 해야 합니다. 남북관계가 위험한 국면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정부 비판을 자체하라는 메시지로 읽힐 수 있는 '훈계'를 내놓기도 했다.
북한의 이번 공개에 대해 방송 3사는 북한을 비난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KBS는 "정상회담의 조건에 대한 불만 표시", MBC는 "우리 정부를 망신주기 위한 의도", SBS는 "국제정치적 관례를 완전히 깨버린 행위" 등의 표현으로 북한의 의도를 분석했다. 즉, 남북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 비밀접촉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데 내용을 낱낱이 공개한 것은 북한의 잘못이란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물론, 남북정상회담의 특성상 비밀리에 일이 진행될 수밖에 없고, 드러내놓고 알릴 수 없는 이유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겠지만 언론의 이러한 보도 방향이 적합한 것인지는 의구심이 든다. 방송 뉴스의 이러한 프레임은 오늘(2일)자 일간지들로 그대로 이어졌다. 조중동은 1면 제목으로 "북한, 남북정상회담 걷어차다"(중앙일보), "북, "남북정상회담 비밀 접촉" 일방 공개...왜?"(조선일보), "회담 매달린 남, 뒤통수 때린 북"(동아일보)을 뽑았다. 동아일보가 그나마 정부에 비판적 태도를 보였고, 중앙과 조선은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걷어찼다는 점을 부각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정말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며 그런 제안을 했는 가의 여부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판을 엎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그동안 언론이 보여왔던 태도를 감안하면 매우 이중적인 태도다. 단적으로 지난 정부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될 때마다 언론은 추진 과정의 불투명함과 이른바 '뒷거래 의혹'에 비상한 관심을 가졌었다.
북한의 이번 발표로 언론이 의심하던 정황이 상당 부분 사실로 드러난 셈인데, 언론은 그 보다는 국제적 외교 관례를 무시한 북한의 태도를 먼저 비판하는 '물타기 보도'를 택했다. 합리적 비판의식이 작동한다면, 정말 북한에 돈 봉투까지 주면서 정상회담을 하려 한 것이냐고 따져 물어야 했지만 이를 제대로 물은 언론은 거의 없다.
돈을 주려 했다는 대목에 대해서 방송 뉴스는 '북한이 그렇게 주장했다' 수준에서 그쳤고, 이 문제에 예민한 조중동 역시 눈에 띄는 기사를 내놓지 않았다. 만약, 참여정부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온 나라를 벌집 쑤신 듯 헤집어났을 것이 분명한데 어찌된 일인지 잠잠할 뿐이다. 이에 대해 조선과 동아는 '정상회담의 대가가 아닌 북측 인사의 여행경비일 수 있다'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는 모습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이란 '메가 이벤트'의 성립 조건은 예민함 그 자체다. 외교적으론 복잡하고, 정치적으론 다층적이다. 대략적인 전제 조건만 훑더라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동시에 우호적이어야 하고, 동북아 국가 전체의 교감 및 승인이 필요하다. 6자회담 등과 같은 외교적 일정과의 조화도 필요하고, 선거와 같은 한국의 정치 일정과 조정도 필요하다.
국내 언론은 우선 이명박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며 내놓은 조건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진지하게 따져봐야 했다. 별다른 고려 없이 덮어놓고 정상회담만 추진하고자 했던 것이라면 북한의 발표와 상관없이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어야 옳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을 보면, 이명박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살리기 위한 노력은 없이 단지 그런 '메가 이벤트를 했다'는 퍼포먼스의 연출을 위해 북한에 돈을 주고 정상회담을 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그토록 비분강개하던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까지 협상의 조건으로 제안했다고 한다. 염치와 윤리가 부도난 권력이라고 할 만한 상황이고, 이 정부의 핵심들이 지난 정부 내내 '남북정상회담'의 뒷거래를 비난해왔던 이력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심각한 착란까지 염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언론이 정면으로 묻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정권의 눈치를 본다는 것 외엔 설명이 안 되고 민심이 이명박 정부를 향해 돌을 던질 것을 우려한 세심한 배려라고 밖엔 풀이가 안 된다.
이명박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에 임한 태도는 한 마디로 "정상회담, 그까이꺼 얼마면 되겠니" 정도로 요약된다. 이게 협상의 방식이 될 수 있는가는 각자 판단의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저잣거리 불량배들이나 취할 이 적나라한 오만함을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했을지를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비교적 자명한 답이 나온다. 언론은 '남남갈등'을 우려하려 그 촉발을 북한의 탓으로 돌리지만 보다 확실한 촉발자인 이명박 정부에 대해선 애써 외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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