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반값 등록금의 가이드라인을 "소득계층 하위 50%중에서 B학점 이상"으로 잡았다. 한나라당 김성식 정책위 부의장은 "현재 대학생의 75% 이상이 B학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무리한 기준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부의장은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봤을 때, 증액해야할 국가 예산은 "2조원 정도로 추계 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의 복지정책은 언제나 '보편성'보다는 '상대성'에 초점을 맞춰왔다. 앞선, 무상급식 논란에서도 그랬고 이전의 모자지원 사업에서도 그랬다. 기본적으로 한나라당은 복지를 개인의 몫을 국가가 대신 부담한다는 차원으로 이해하고, 언제나 그렇다면 잘 사는 사람에게도 정부가 돈을 써야 하느냐고 묻고 시작한다. 차별 없는, 보편타당함으로서의 복지 정책이 아닌 대상을 변별하는, 상대적 시혜로서의 복지 정책이 한나라당의 복지 기조이다.
이 자체의 옳고 그름을 따지자면, 긴 논쟁이 필요할 것이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복지 문제에 관한 한나라당의 입장은 정치적 보수주의를 자처하는 집권 여당의 스탠스(stance)에서 국가 재정의 운용 수준과 국민적 눈높이 사이에서 타협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타협의 현실적 수용여부이다. 한나라당은 대개의 복지정책에 있어 끝끝내 반대하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임계점이 왔을 때야 겨우 자세를 바꾸어왔다. 복지를 일종의 '민심 수습책'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복지의 문제를 시혜의 차원으로 추락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하위 50%, B학점 이상'의 기준에서 '반값 등록금'은 어떤 효과를 발휘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하는 만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너무 위험하다. 일단, 반값 등록금을 하위 50%의 문제로 고정해버리면 나머지 상위 50%의 등록금을 제어할 명분을 잃어버린다. 불 보듯 한 이 문제에 대해 한나라당이 어떤 보완책을 갖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한국은 현재 OECD 가입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등록금이 많다. 미국과 한국의 평균 소득 격차가 2배에 달함을 생각해볼 때, 사실상 가계 부담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이 가장 높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 등록금 문제는 하위 50%만의 어려움이 아니다.
반값 등록금의 정책 대상을 하위 50%로 고정하는 순간, 나머지 50%의 등록금은 엄청난 상승 압박을 받을 것이다. 대학 입시를 정점으로 엄청난 교육열이 발휘되는 한국 사회에서 이 상승 압박을 제어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정책기조에서 대학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싸게 해주는데, 잘 사는 사람들에겐 돈을 더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라고 물을 것이고, 정부 스스로 등록금이 보편타당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상황에선 이 질문에 대응하기가 어려워진다.
미국 대학의 경우에도 비싼 등록금에 대한 문제 제기가 될 때마다, '하위 계층에 대한 장학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피해가곤 한다. 이 말은 뒤집어서 얘기하면, 장학금을 받지 못할 경우 아예 대학에 다닐 수 없단 말과도 같다.(실제, 미국의 상황은 그렇게 전개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안대로라면 결국, 한국도 가계 수준이 하위 50%에 포함되지 않는 집의 아이는 장학금을 받지 않고선 대학에 다닐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지도 모른다. 이는 극단적 사회 양분을 초래할 것이며, 중산층의 몰락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B학점' 이상의 성적 기준이다. 실제 당사자들이라 할 대학생들 역시 이 부분에 대해 가장 강렬히 반발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이 문제는 앞서 '징벌적 장학금제도'라는 비판을 받았던 카이스트의 논란을 전국 대학으로 확대하는 뇌관으로 작동할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대학은 상대 평가 방식을 운영하고 있다. 전체 학생 가운데 평점 B이상을 받을 수 있는 비율은 학교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한 클래스에서 최대 55%~65%의 수준이다. 성적 입력이 전산화 된 이후 교수의 재량으로 이 비율을 줄일 순 있어도 늘릴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하위 50%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B학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전체의 절반 정도 된다는 말이다.
만약, 한나라당의 안대로 'B학점 이상'이 반값 등록금 제도의 커트라인이 된다면 이는 카이스트에서 운영했던 '징벌적 등록금'과 아주 유사한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수혜 대상이 되는데도 등록금을 받지 못하게 될 학생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반값 등록금'에서 탈락한 이들이 받게 될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반값 등록금' 제안은 톡톡한 언론 효과를 보고 있다. 4.27 재보선 이후 민주당에게 기울던 정국 주도권을 단박에 회복할 정도로 홍보 효과가 뛰어났다.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한나라당의 고민과 준비는 '슬로건'을 내놓은 것 외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년 총선 이전에 문제를 확정짓겠다는 속도전이 감행되고 있다. 한나라당의 현행 안대로라면 대학 사회의 극단적 양분화는 불가피하고, 하위 계층에선 피말리는 성적 경쟁이 필수적이다. 너와 내가 다르다는 걸 받아들여야하고, 너를 짓밟아야 내가 산다는 논리가 횡행하는 대학교육에서 사회의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난망한 일이다.
문제는 복지에 대한 '철학'이다. '반값 등록금'에 대한 정부 여당의 철학 부재는 어제(29일) 있었던 대학생들의 집회를 무자비하게 진압한데서도 드러난다. 신고 된 집회 범위가 어디까지이건 간에 이미 정부 여당의 핵심 정책이 되어버린 '반값 등록금'이다. 반값 등록금을 추진하는 정부 여당의 자세가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대학생들의 집회를 그렇게까지 몰아세울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그들을 사법처리해서 정부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