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개헌과 개헌론은 다른 것이다 < 비평 < 뉴스 < 큐레이션기사 - 미디어스

상단영역

뉴스Q

기사검색

주요메뉴

본문영역

비평

[비평]개헌론은 가능하고, 개헌 의총은 실패하지 않는다

개헌과 개헌론은 다른 것이다

2011. 02. 09 by 김완 기자

개헌 논의는 이제 시작이지만, 이미 너무 젖어버려서 차라리 싸늘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현실은 바닥을 알 수 없이 심란한데, 정치는 너무 크고 진부해 딴 나라의 형국이기도 하다. 개헌은 동력도 마땅치 않고, 심지어 끌고 가는 동력조차 억지로 보이기도 한다. 친이계를 중심으로 당내 최대 계파인 '함께내일로'가 주축이라지만, 일부 의원들은 개헌에 행여 살갗이라도 닿을까 피해다니는 문제적 사안이다. 하지만 개념 않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논쟁은 시작됐다. 한나라당 개헌 의총은 오늘로 이틀째를 맞는다.

개헌 의총 첫날, 예상보다 많은 의원들이 참가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영 다르다. 썰렁했다고 한다. 개헌 의총의 다수적 분위기는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하나 들어나 보자' 정도로 요약된다. 지도부와 친이직계를 제외한 누구도 발언하지 않았다. 이틀째를 맞는 오늘(9일)은 단 한 명의 의원만 발언을 신청했다고 한다. 백가쟁명을 가장한 '소리없는 아우성' 그 자체다.

▲ 9일자 조선일보 5면
그래서 개헌은 불가능하고, 개헌 의총은 실패할 것인가? 조선일보가 분석한 친박계의 의중대로 개헌 의총은 '친이들만의 행사'로 끝날 것인가? 속단은 이르다. 아직은 모를 일이다.

지펴지지 않을 불을 피워야 할 때, 연기가 많이 나는 법이다. 개헌이 지펴지지 않을 불이라는 건, '개헌 전도사'를 자임한 이재오 특임장관이 가장 잘 알 것이다. 불쏘시개를 자처한 안상수 대표 역시 정치 경력이 얼추 20년은 넘는다. 모를 리 없다. '받들어 총'의 태세로 돌격대를 자임하고 있는 친이직계 의원들 역시 정치적 셈법이 모자라 되지 않을 명을 따르고 있는 건 아닐 테다.

제대로 봐야 한다. 개헌론의 진짜 목표는 불을 붙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불이 붙으면 난감하다. 훨씬 더 자욱하게 그리고 정교하게, 매캐한 연기만 피워 올리는 것이 개헌론의 진짜 목적이다.

지난 1월 친이계는 이른바 '개헌 비밀회동'을 가졌다. 결사가 가능한 의원수를 헤아리는 사전 모의였다. 소집령은 정권의 No.2를 다투는 이재오 특임장관이 내렸다. 이때 모인 숫자가 딱 40명이었다. 개헌의 본진 역할을 해야 하는 친이계 최대 계파 '함께내일로'의 소속 의원이 70명이다. 이 가운데 절반 정도 밖에 모이지 않은 셈이었다. 설 연휴 직후에 있었던 모임에선 이 숫자에서 다시 5명이 빠진 35명만이 '개헌 회동'에 참가했다. MB를 대리하는 이재오가 소집할 수 있는 규모가 딱 이 정도다. 전체 171명의 한나라당 의원 가운데 대략 40여명 정도는 개헌 결사체로 움직일 수 있다.

130명은 미지수로 남는다. 나머지 의원들의 입장과 관련해 주목할 것은 이상득 의원이다. 개헌 의총을 앞두고 이상득 의원은 불쑥 중국으로 출국해버렸다. 정가에서는 형님의 직접 지휘가 닿는 의원의 수를 대략 40명 남짓으로 보고 있다. 범 친이계이지만 이재오 의원의 소집령을 받는 의원들과는 구분되는 비당권파가 주축이다. 이들의 입장은 '마지못해'로 정리된다. 그리고 친박계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대략 4~50명 정도 된다. 이들은 드러내놓고 개헌론에 반대하고 있다.

얼추, 삼분지계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소장파와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친이계 40명 내외, 영남과 올드보이를 중심으로 한 이상득계가 또한 40명 남짓 그리고 '미래 권력'을 준비하는 친박계 50명 정도로 한나라당이 갈려있는 셈이다.

'개헌론'은 이 삼분지계에 포괄되지 않는 의원들의 충성 확인을 1차적 목표로 한다. 그 숫자가 대략 3~40명 정도 된다. 개헌에 대한 찬반 의견을 밝히라는 공개적 겁박은 내년 총선의 공천권과 물려 있다. 아주 노골적이다. 지난 1월 '개헌 비밀회동'에 참석한 한 의원은 "이 자리에 참여한 의원은 다음 총선 공천에 걱정이 없을 것”이라고까지 했다.

이 말의 뜻을 헤아려보면, 개헌론을 피우는 연기의 모양새가 보인다. 결국, 개헌론의 궁극적 타깃은 공천권을 매개로 한 충성 확인, 친이직계의 확대다. 사실상 대권을 잡을 수 없게 된 친이계 입장에서 차기 총선에서 당권을 확실히 하는 것이 지상과제나 다름없다. 개헌을 통해 군력 분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유토피아적 상상일 뿐, 얼토당토않다. 친박계에게 대권을 주더라도 당내 다수를 차지해 당권은 쥐자는 것이 개헌론의 속내로 읽힌다.

현재, 당권은 친이직계가 잡고 있고 따라서 공천권 역시 친이직계가 행사할 수 있단 점은 얼마 남지 않은 권력의 마지막 한 수나 다름없다. 개헌론은 이 권력의 한 수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치다. 그 자체로 생사여탈권이다. 개헌론의 전위에 서있는 40명 남짓의 공천은 확정적이다. 지난 총선처럼 친박계를 무참히 잘라 낼 힘은 이제 없지만, 최소한 나머지 130여 명의 의원들의 생사여탈권을 개헌 바람으로 흔들수는 있다.

무리한 추정이 아니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가 전한 MB의 최근 발언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설 연휴 직후 MB는 "내년 총선에서 대대적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며,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서 내년 총선에 시대정신과 시대흐름에 맞는 참신한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 게 좋겠다"고 강조했다. 개헌전도사 이재오 특임장관과 개헌 불쏘시개 안상수 대표가 틈만 나면 강조하는 개헌의 당위와 필요성이 바로, '시대정신'과 '시대흐름'이다.

개헌과 공천권은 직렬로 물려있다. 개헌이 되지 않을 것은 누구나 안다. 친이계 의원들조차 구제역과 개헌을 비교할 정도로 민심은 흉흉하다. 중요한 것은 개헌이 아니라 개헌론 그 자체다. 개헌론 회로는 공천권을 기반으로 한다. 흉흉한 민심 때문에 개헌은 불가하다는 논리는, 얼마 남지 않은 권력이라 개헌이 불가능하다는 수읽기는 곧 그래서 개헌론이 필요하다는 것과 같은 얘기다. 개헌론의 연기를 키워 흉흉한 민심을 마취하고, 저물어가는 권력의 마지막 빛을 발산하고, 흉흉한 민심을 저무는 권력을 뒤로 주군을 갈아타려는 의원들을 결박하는 것이다. 개헌과 개헌론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기사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