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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정동기'로 '한나라당' 겨눈 조중동, 외통수에 빠진 청와대

조중동과 MB, 국면 전환이 왔다

2011. 01. 10 by 김완 기자

결국, 청와대의 선택만 남았다. 한나라당마저 정동기 감사원장 내정자를 버렸다. 단순히 버린 것이 아니라 청와대가 도무지 어쩔 수 없도록 공식적으로, 과감하게 잘랐다. 청와대의 선택이 남았다곤 하지만 사실상 외통수를 던지고 판을 걷어 버렸다.

정동기의 편은 청와대 뿐, 외통수 던진 한나라당

이제 하늘 아래 정동기 내정자의 편은 청와대만 남았다. 전격적인 고립 양상이다. 아직까지도 청와대의 공식 입장은 '문제없다, 청문회를 통해 오해가 풀리길 바란다'이다. 어제까지는 한나라당의 입장 역시 "야당이 의혹을 언론에 흘리고 있다. 청문회에서 검증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주말동안 여론 수렴을 해본 결과, 정동기 후보자는 감사원장으로서 적격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며 "정 후보자는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국민의 뜻을 따르는 것이고, 또 이것이 이 정부와 대통령을 위하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이러한 뜻을 직접 청와대에 전달하겠다고 했다. 단순한 제스처가 아니란 말이다. 얼핏, 은근해보이지만 노골적으로 당의 입장을 받으라는 겁박이다.

하루 사이 바뀐 것이다. 이를 두고 안상수 대표는 '주말동안의 여론 수렴'을 이유로 밝혔다. '주말동안의 여론 수렴'이란 용어의 여의도 용례는 도무지 다른 이유를 댈 수 없을 정도로 난감한 상황에서의 확고한 선택을 일컫는다. 여론은 진즉부터 나빴다. 하루 사이에 당이 화들짝 자리를 이동할 만큼 급변한 건 아니다.

그렇다면, 왜 한나라당은 입장을 바꾼 것일까. 정 내정자를 날리면 '레임덕이 온다'며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강행돌파 의지를 비췄던 지도부이다. 그런데, 왜 입장을 바꾼 것일까. 분명하다. 조중동 때문이다.

▲ 10일자 동아일보 김순덕 칼럼
조선 "민간인 사찰", 중앙 "헌법기관으로 바로 설 기회", 동아 "민주정부의 비극"

오늘자(10일) 조선일보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던 정 내정자에게 보고됐다는 사실을 전했다. 한나라당의 가장 치명적 아킬레스건을 때린 것이다. 민간인 사찰 문제는 한나라당 입장에선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이다. 당장에 박근혜 의원이 걸려있다. 인정 상 떠벌리지 않고 있을 뿐, 도저히 눈 감아 줄 수 없는 일이다. 조선일보의 정동기 불가론은 한나라당의 '역린'을 정확히 찔러 들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더 직설적으로 갔다. 편집국을 대표하는 논객들이 정동기는 안 된다는 기명칼럼을 썼다.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은 <정동기 감사원장에 반대하는 이유>란 제목의 칼럼에서 "자유민주 정부가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 무엇인지 개념을 가진 사람이 청와대 안에 없다면 비극"이라며, 조선과 마찬가지로 '민간인 사찰' 문제와 '도곡동 땅 의혹사건 소송' 이력까지 겨눴다. 동아는 "'우리나라 권력은 어쩔 수 없다'는 국민적 낭패감"을 줄 것이 아니라면 정 내정자를 거두라고 일갈했다.

중앙일보 역시 김진 논설위원의 <한나라당, '7년 전 윤성식' 기억해야>란 제목의 칼럼에서 한나라당을 직설로 찔렀다. 한나라당의 행태를 '까마귀 정치'에 비유했다. 2003년 9월 한나라당이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킨 기억을 꺼내 흔들었다. 그 때 한나라당이 던진 '독립성'의 칼을 기억한단 것이다. 조중동이 참여정부 시절 한나라당의 행태를 전면화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중앙은 한나라당을 향해 정동기 사건이야말로 "여당 의원들이 정권의 하수인 비난에서 3권 분립의 헌법기관으로 바로 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행위의 동기와 명분을 확인해줬다.

▲ 10일자 중앙일보 김진 칼럼
한나라당을 정조준한 조중동의 의도는

10일 아침 조중동은 일제히 정동기 불가를 천명하며 한나라당을 정조준한 메시지를 던졌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를 '여론'이란 이름으로 수용하는 적극적인 정치 감각을 발휘했다. 결과적으로 청와대는 완전히 고립됐다. 조중동은 힘을 확인했고, 한나라당은 명분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순식간에 당청 분리가 이뤄줬다. 권력의 역관계만 놓고 보자면, 이것이야 말로 '레임덕'이다.

레임덕을 우려해 정동기를 선택한 것이고 또 버릴 수 없던 것이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정동기를 버리는 과정에서 가장 적극적인 형태의 레임덕이 노출됐다. 조중동이 한나라당을 겨누자 권력의 흐름이 일순간에 혼란스러워졌고,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문제는 단박에 정리됐다. 조중동 입장에선 오랜 만에 여론을 주도하는 힘을 확인했고, 동시에 이제 본격적으로 그 힘을 쓸 것임을 시사한 셈이다.

12월 31일, 종편 사업자 선정 이후 스멀스멀 몽니의 기운을 보여주던 조중동이었다. 정동기 사건을 기점으로 이제 단순한 몽니가 아닌 완전히 일탈적인 '반란'의 채비를 갖춰졌음을 확인케 했다. 청와대가 조중동으로 인해 정동기를 버릴 수밖에 없게 된다면 가만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3년 이상 유지되어 온 정권과 조중동의 유착관계가 확실히 종점에 다다른 모양새다.

'정동기 사건'을 기점으로 역사의 시간이 바뀌었다

굉장히 중요한 사건, 괄목할 만한 변화이다. 조중동의 변모는 이제 MB의 집권 후반기를 내다보는 핵심적 고리가 되었다. 프랑스의 역사가이자 교육자였던 페르낭 브로델은 역사를 '3층 건물'에 비유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역사의 3층에는 복잡다단한 것들이 단기지속으로 빠르게 흐르는 '사건사'가 있다. 하지만 MB 3년 동안 적어도 한국 언론에는 이러다할 '사건사'가 기록되지 않았다. 정권에 장악된 언론은 이슈를 빠르게 흘렸고, 정권과 담합된 조중동은 문제를 비판하지 않았다. 비극이었다.

하지만 영원히 3층, '사건사'에만 머무는 역사는 없다. 브로델은 역사의 2층에는 '사건사' 보다는 장기적인 이슈, 불변적인 요소들이 자리하는 '국면사'가 있다고 했다. 조중동이 정동기 사건을 맞아 참여정부 당시의 한나라당을 꺼내 든 것이나 민주정부의 기본적 개념을 물은 것은 상징적 국면의 변화이다. 발생된 이슈에서 조중동이 정권에 책임을 묻기 시작했단 점은 비약적인 발전이다. 바야흐로 조중동과 정권의 관계에 역사적 국면 전환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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