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촬영 시작도 안한 사극 '제작보고회'…왜?
방영까지 1년여 남은 대하사극 '문무' 박장범 "수신료 통합징수 덕에 사극 제작 가능" 메인뉴스 "내년 안방 찾는다" 홍보 리포트 박장범, 방송3법·대규모 적자로 사퇴 압박 받아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KBS가 촬영에 착수하지도 않은 대하사극 <문무>의 '제작보고회'를 개최했다. KBS는 방영까지 1년이 넘게 남은 드라마의 제작보고회를 열면서 AI(인공지능)와 CG(컴퓨터 그래픽), 과거 사극 영상을 짜깁기하는 수준의 트레일러(예고편)를 공개했다.
박장범 KBS 사장은 제작보고회에 참석해 "TV수신료 통합징수 덕분에 대하사극 제작이 가능했다"며 공영방송으로서 통합의 메시지를 전달하겠다고 했다. 통상 드라마·예능은 방영 2~3일 전 '제작발표회'를 통해 시청자 기대를 모으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장범 KBS 사장이 수신료 통합징수를 치적으로 홍보, 자신의 입지를 굳건히 하기 위해 이례적인 행사를 벌인 것으로 보인다. 박장범 사장은 개정 방송법과 대규모 적자로 KBS 안팎에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또 KBS는 수신료 통합징수에 대해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바 있다.
지난 18일 박장범 사장은 서울 구로구 더세인트에서 열린 KBS2TV 신규 대하드라마 <문무> 제작보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했다. 이 자리에서 박장범 사장은 "<문무>는 하나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KBS이 공적 책무 중 하나"라며 "TV수신료 통합징수법안이 통과돼 이번 달부터 수신료 통합이 시행되면서 대하사극 만들기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박장범 사장은 "지난 정부에서 수신료가 분리(징수)되면서 1000억 원 가까운 적자에 시달렸다. 4월 KBS인들이 모두 힘을 합쳐 (수신료 통합징수법을)밀어냈고, 여러 단체에서 도움을 주셨다"며 "수신료를 다시 통합 징수하게 되면서 재정적으로 효과가 있는데, 시청자들에게 어떤 서비스를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시청자분들께 먼저 알려드리는 것은 <문무>와 같은 대하사극 제작"이라고 했다.
박장범 사장은 "<문무>는 고구려, 신라, 백제를 통합하고 그 과정에서 외세의 침략을 물리친 우리 민족의 역사적 전환점을 다룬 작품"이라며 "대한민국만 하더라도 지역 갈등, 정치 갈등, 젠더 갈등, 빈부 갈등 등 많이 갈라져 있다. 공영방송이 통합의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날 제작보고회 현장에 대한 방송·언론계 관계자 설명을 종합하면, <문무>는 아직 촬영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촬영 착수 시점은 '곧 한다' 정도의 내용이 공유됐으며 몽골 로케이션 촬영이 계획된 상태다. 방영 예정일도 불명확하다. 2026년 하반기 방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제작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제작보고회에서 상영된 트레일러는 과거 KBS 대하사극 명장면을 짜깁기 한 영상, AI·CG 영상, 짧은 배우 인터뷰 영상 등으로 채워졌다고 한다. 예를 들면 <문무> 배우들의 출연 모습을 예상하는 AI 영상이 상영됐다. 박장범 사장은 제작보고회 시작 전 배우들과의 포토타임, 인사말, 기자들과의 악수를 하고 퇴장했다고 한다.
통상 드라마·예능 '제작발표회'는 방영 2~3일 전에 이뤄지며 상황에 따라 방영 하루 전에도 열린다고 한다. KBS의 최근 대표작 <은수좋은날>, <고려거란전쟁> 제작발표회는 첫 방송 2~3일 전 이뤄졌다. 첫 방송 시청률을 고려해 제작발표회 일정을 방송일과 가깝게 잡는다는 얘기다. 영화의 경우 통상 개봉 1개월 전에 제작발표회 일정을 계획한다고 한다. 드라마 방영 1년여 전 '제작보고회'는 이례적이다.
박장범 사장은 수신료 통합징수를 KBS 전 구성원과 단체들이 힘을 합쳐 이뤄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과 다르다. KBS 경영진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구속되고, 수신료 통합징수 논의가 국회에서 급물살을 탄 이후에야 기존 입장을 뒤바꿔 통합징수 찬성 의견을 개진했다.
이전까지 KBS 경영진의 입장은 "국민의 경고와 질책을 받은 KBS가 충분한 반성과 혁신을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스스로 결합징수를 요구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였다. KBS는 '수신료 분리징수에 국민 90%가 찬성했다'는 윤석열 대통령실의 거짓 주장을 앞세워 수신료 통합징수법에 부정적인 입장을 반복적으로 피력했다. 수신료 통합징수는 국회 과반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이뤄낸 성과로 볼 수 있다.
KBS는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23일 민주당 이훈기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KBS 적자는 1800억 원 이상에 달한다. KBS는 올해 초 매출 1조 2901억 원, 사업비용 1조 3998억 원, 적자 1097억 원을 계획했다. 그러나 적자 규모가 1850억 원까지 불어난 상황이다. 이 의원은 근거로 'KBS 내부 4차 경영 전망' 자료를 제시했다. 올해 KBS의 총수입은 당초 계획 대비 753억 원 감소했으며 광고수입이 1414억 원에서 1021억 원으로, 콘텐츠 판매수익이 2100억 원에서 1797억 원으로 줄어들었다.
반면 박장범 사장이 적자의 원인으로 내세운 수신료 수입은 98억 원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KBS는 방송제작비를 450억 원 삭감하고, 전체 사업비를 818억 원 줄였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국민의 방송이 스스로 콘텐츠를 줄여 미래를 포기한 자해행위"라며 "제작비를 깎아 숫자상 적자만 줄인, 방송사의 본질을 버린 꼼수 경영"이라고 했다.
박장범 사장은 방송3법 시행으로 사장직을 내려놓을 수도 있다. 박장범 사장의 임기는 2027년 12월까지다. 하지만 지난 8월 말 공포된 개정 방송법 부칙은 '이 법 시행 후 3개월 이내에 이 법의 개정규정에 따라 이사회를 구성하여야 한다' '이 법의 시행 당시 KBS의 사장, 부사장 및 감사는 이 법의 개정 규정에 따른 후임자가 선임 또는 임명될 때까지 그 직무를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박장범 사장은 해당 조항에 대해 헌법 소원을 청구했다.
한편, KBS는 저녁메인뉴스 리포트를 통해 <문무>를 홍보했다. 지난 18일 KBS '뉴스9'은 리포트 <“대왕 문무가 온다”…2년 만에 돌아온 KBS 명품 ‘대하사극’>에서 "44년 동안 34편, KBS 명품 대하 사극의 35번째는 문무"라며 "몽골 현지 촬영은 물론, 인공지능과 특수 시각효과를 통해 실감 나는 전투 장면을 구현한다.(중략) '통합'의 메시지를 담은 KBS 정통 대하사극 '문무'는 내년 안방 극장을 찾아간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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