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기자 "허프 매각한 경영진, 적대적 M&A 투기자본 행태"

허프지부·인권연대·언론연대 '허프 장례식' 개최 한겨레 기자들 "'한겨레 장례식" "철거 용역 깡패 부활인가" "민중의 이야기 전하자는 한겨레 창립 정신 지키고 있나" 인권연대 "사장의 악랄한 짓 눈 감는 구성원들 부끄러워 해야"

2025-11-12     고성욱 기자

[미디어스=고성욱 기자] 한겨레 내부에서 자회사 허프코리아(이하 허프)의 경제지 매각을 두고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허프 노조와 연대에 나선 한겨레 기자들은 경영진이 투기자본과 다를 바 없는 적대적 인수합병 행태를 보였다며 오늘날의 '허프 사태'는 곧 '한겨레 사태'이자 '한겨레 장례식'이라고 날을 세웠다. 언론시민단체들은 이번 매각에 침묵한 한겨레 구성원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허프 지부, 인권연대, 언론개혁시민연대가 12일 마포구 한겨레 사옥 앞에서 '허프 장례식'을 열고 묵념을 하고 있다.(사진=미디어스)

전국언론노동조합 허프 지부, 인권연대,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은 12일 마포구 한겨레 사옥 앞에서 '허프 장례식'을 열었다. 이들은 장례식 도중 한겨레 구성원들이 지나가자 “부끄러운 줄 알라” “직원 5명 내쫓고 행복한가” “허프가 아니라 한겨레가 망해가는 것이다”라고 질타했다.

지난 7일 한겨레는 임시이사회를 열고 허프를 경제지 비즈니스포스트로 매각하는 안건을 8인의 찬성과 1인의 반대로 의결했다. 허프 지부에 따르면 매각 대금은 10억 5000만 원이다. 같은 날 저녁 앞서 사의를 밝혔던 유강문 허프 대표가 지난 11일을 시한으로 구성원들에게 희망퇴직 의사 여부를 묻는 이메일을 보냈다. 퇴직일자는 오는 14일이다. 앞서 허프 지부는 사재 등을 통한 ‘노동자 인수’를 교섭안으로 제시했지만 한겨레 경영진은 이를 거절했다. 

일부 한겨레 기자들은 허프 장례식에 참석해 연대 발언에 나섰다. 한겨레 기자들은 경영진이 적대적 인수합병 시장의 투기자본과 다를 바 없는 행태를 벌였다고 참담해 했다. 눈물을 보이는 기자들도 있었다. 

안영춘 한겨레 기자가 12일 '허프 장례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미디어스)

안영춘 한겨레 기자는 “최우성 대표는 9억 5000만 원이었던 매각 대금을 허프 노동자들의 ‘노동자 인수’ 협상 과정을 쿠션 삼아 1억 원을 올리는 탁월한 경영 능력을 발휘했다”고 꼬집었다.

안 기자는 “한겨레 경영진이 적대적 M&A 시장에서 투기자본과 다를 바 없는 행태를 보인 것”이라면서 “또 이사회 매각 승인 당일 부랴부랴 허프 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 받아주마, 위로금을 던져주겠노라 했는데 놀랍게도 그 기한이 불과 하루 이틀이다. 대한민국에서 사라진 철거 용역 깡패의 행태를 한겨레가 부활시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 기자는 “한겨레 구성원들은 ‘오늘의 허프 사태가 내일의 우리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착각”이라며 “오늘의 허프 사태는 오늘의 한겨레 사태고, 한겨레 장례식이다. 사내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실존적 문제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 기자는 “한겨레 창간 30년 동안 더 나은 사내 민주주의를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해 왔는데, 최 대표와 경영진은 그 역사를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뜨렸다”며 “우리의 문제를 어떻게 해쳐나야가야 하는지 밤잠 설쳐가며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신다은 한겨레 기자는 “진보 언론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같은 주제의 기사를 써도 (경제지·보수지의)물량과 프레임에서 밀리는 어려움 속에서 진보 언론의 생태계를 늘려가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며 진보지 허프가 경제지로 매각된 점을 짚었다. 

신 기자는 “한겨레는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서 자유로이 민중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창립됐는데, 그 역할을 수행하는 언론을 친자본 매체로 넘기면서 우리는 그 정신을 지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며 “기자들에게 사주가 바뀐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두가 알고 있잖나. 그 위기감을 언론 종사자로서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일을 자회사 노동자에게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양진 기자(왼쪽)와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오른쪽)이 12일 열린 '허프 장례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미디어스)

한겨레 노조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날 언론노조 한겨레지부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김양진 한겨레 기자는 “한겨레 노조가 굉장히 밉다”며 “노조 사무실에 ‘노조가 왜 허프 매각 반대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찾아왔다고 한다. 이런 회사에 다니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비참하다”고 말했다. 한겨레 임원을 제외한 팀·국장 간부들도 노조에 가입하고 있다고 한다. 김 기자는 “최 대표는 한겨레 그만 망신시키라”고 외쳤다.

박준용 한겨레 기자는 “우리 공동체 안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과 우리가 연대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만들어내는 콘텐츠에 과연 누가 공감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급변하는 언론 환경은 당면한 과제인데 이것을 핑계로 다른 누군가에게 어려움을 전가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 참석자가 한겨레 사옥 앞 계단에 붉은 글씨로 '한겨레는 죽었다'라고 적고 있다.(사진=미디어스)

한겨레 사외이사를 지낸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최 대표는 자신의 무능을 가장 약한 고리인 자회사 매각으로 해결하려 한다”며 “한겨레가 창간 이래 부침이 많았지만 이렇게까지 악랄했던 적이 없다”고 질타했다.

오 국장은 “일개 사장이 이렇게 악랄한 짓을 벌이는데, 구성원들은 뭐하고 있고, 노조는 왜 안 오나”라며 “한겨레 구성원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오늘은 허프가 아닌 한겨레의 장례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 국장은 "한겨레가 이렇게 망해가고 있는데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한겨레가 가장 약한 고리 자회사 직원들을 잘라가면서 얻을 이익이 얼마나 되는지 지켜보겠다”고 경고했다. 

권순택 언론연대 사무처장은 “자회사를 매각할 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과정에 굉장히 문제적”이라면서 “경제·보수지에 기울어진 언론 운동장에서 노동 기사는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허프가 매각되면서 경제지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대해 너무 걱정된다”고 말헀다. 권 사무처장은 “언론연대 차원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이날 허프가 죽었다며 묵념을 하고 “한겨레는 이제 죽었다” “노동자 인수 거부하는 한겨레 진보 언론 딱지 떼라” “한겨레 망신 최우성이 다 시킨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기자회견 종료 후 이들은 한겨레 사옥 외벽, 계단에 크레파스로 “한겨레는 죽었다” “최우성은 사퇴하라” 등을 적었다. 허프 지부는 고용청에 부당노동행위 진정서를 제출하고, 이사회 매각 의결을 중단하는 법적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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