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혁명, 정부의 ‘고용 리부트 전략’ 시급하다

AI로 인한 '고용의 재편' 현실화

2025-11-11     권오석 공인회계사/칼럼니스트

[미디어스=권오석 칼럼] AI가 전 세계의 일자리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기술 발전이 경제성장을 이끄는 동력이 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고용 구조의 붕괴라는 심각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이제 문제는 명확하다. AI가 일자리를 대체하기 전에, 정부가 일자리를 새로 설계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이다.

최근 블룸버그가 공개한 미국의 고용 통계는 충격적이다. 2025년 10월 한 달 동안 미국 기업들이 발표한 정리해고가 153,074건에 달했다. 이는 20년 만에 최대 규모로, 전년 같은 달보다 세 배 가까이 많다. 1월부터 10월까지 누적된 해고 건수는 110만 건에 육박하며, 팬데믹 이후 최악의 수준이다.

아마존은 화이트칼라 직군에서만 1만4천 명을 줄였고, 연방정부는 30만 명의 인력을 감축했다. 파라마운트와 디즈니, 메타 등 주요 미디어·테크 기업들도 구조조정에 동참했다. 단순한 경기 불황이 아니라 AI가 만들어낸 고용의 재편이 현실이 된 것이다. 블룸버그는 이를 “노동시장 구조의 근본적 변화”로 규정하며, 회복이 아닌 ‘재구성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진단했다.

빅테크 (PG) (연합뉴스)

산업 구조가 바뀌면 일자리의 성격도 바뀐다 

이번 사태는 2008년 금융위기보다 더 심각한 구조적 신호다. 금융위기 당시엔 일시적인 경기 침체가 원인이었지만, 지금은 산업 자체가 바뀌고 있다. AI는 단순 반복 업무를 넘어 분석·기획·디자인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으며, 특히 중간관리자와 사무직 중심의 화이트칼라 직군이 집중 타격을 받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 조정’이 아니라 ‘새로운 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블룸버그는 “경기가 회복돼도 이전의 일자리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통적으로 경기 회복의 신호로 여겨지던 미국의 연말 임시 채용 규모도 2012년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AI 혁명은 단순히 고용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의 개념 자체를 재정의하고 있다.

AI 일자리 대체 (PG) (이미지=연합뉴스)

한국의 현실은? 

한국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내 제조업의 해외이전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AI 도입은 중간층 일자리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 겉보기엔 실업률 2%대의 안정세를 보이지만, 비자발적 비정규직과 전환형 실업이 빠르게 늘고 있다. AI가 생산성 향상을 이끌더라도, 고용의 양극화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위험은 매우 크다.

이제 정부는 ‘AI 산업정책’이 아니라 ‘AI 고용정책’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기술의 속도보다 빠르게 고용 구조를 리부트(Reboot)해야 한다. 산업의 자동화가 불가피하다면,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대신 ‘새로운 직무 구조’를 미리 설계해야 한다.

정부의 ‘고용 리부트 전략’, 지금 당장 가동해야

첫째, 전국 단위 리스킬(Reskill) 바우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AI·데이터·에너지 전환 등 신산업 직무에 연 50만 명 이상이 재교육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이를 산업별 수요에 맞춰 표준화해야 한다.

둘째, 전환고용 장려금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기업이 해고 대신 사내 직무 전환을 선택하면, 정부가 임금의 30%를 1년간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 AI가 사람을 밀어내는 구조에서 벗어나, AI와 사람이 함께 일하는 구조로 전환하는 데 필요한 실질적 유인책이다.

셋째, 임금보험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AI 도입 과정에서 전환 근로자의 임금이 하락할 경우, 기존 임금의 80% 수준까지 차액을 보전해 주는 방식이다. 이는 단순한 복지가 아니라, 고용 전환의 사회적 안정장치다.

넷째, AI 신산업 기반 일자리 창출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RE100·전력망·수소저장·데이터센터 등 에너지 인프라 산업은 AI 시대의 새로운 고용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 블랙록과 뷔나 그룹이 발표한 20조 원 규모의 AI·풍력 투자 선언은 그 단적인 사례다. 이 투자가 본격화되면 건설, 운영, 정비, 유지관리 등 지역 일자리가 대거 창출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9월 8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에서 열린 국가인공지능(AI) 전략위원회 출범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질서’ 

AI가 기술의 혁신을 상징한다면, 고용정책은 사회의 질서를 상징한다. 기술은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지금처럼 정책이 뒤처진다면 인간이 기술의 하위 구조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AI 시대의 진짜 경쟁력은 GPU나 알고리즘이 아니라 사람 중심의 고용 설계 능력이다. 정부는 산업정책의 보조자가 아니라 고용시스템의 '설계자'여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AI 국가전략’이 아니라 ‘AI 고용전략’이다. AI가 산업의 지형을 바꾸는 속도보다 빠르게, 정부는 일자리의 미래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불안을 줄이고, 기술의 혜택을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AI는 이미 현실이 되었고, 일자리는 그 영향권 안에 있다. 정부의 대응이 늦어질수록 위기는 깊어질 것이다. 지금이 바로, ‘고용 리부트’의 시간이다. 기술이 아닌 사람이 중심이 되는 AI 시대를 위해, 정부는 지금 즉시 고용정책의 판을 새로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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