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방탄’ 자초한 여당과 대통령의 경고
[김민하 칼럼]
[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던 재판방지법에 제동이 걸렸다. 그런데 제동을 건 주체가 대통령실이다. 강유정 대변인이 대통령실의 입장을 이미 밝혔음에도 강훈식 비서실장이 직접 나와 따로 브리핑을 한 것은 이례적이다. 강훈식 실장이 이 브리핑에서 한 얘기도 심상찮은 데가 있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정쟁의 중심에 끌어넣지 않아 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했다. 이 발언은 여당 지도부를 향한 대통령의 명확한 경고 메시지로 읽힌다.
1차적으로는 지지율 등 효과의 문제일 것이다. 대통령실의 입장에서 보면 호재가 많은 국면이다. 먼저 APEC 정상회의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이재명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를 활용한 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하는 데에 성공했다. 한일정상회담에서 연출된 장면, 가령 ‘강성’으로 알려진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태극기에 대해 예우를 갖추는 모습 등이 나온 것은 여론에 긍정적일 것이다. 한중정상회담도 ‘핵추진 잠수함’ 우려를 큰 잡음 없이 진화했다는 점 등에서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APEC 정상회의를 과거 잼버리 사례와 같은 논란을 일으키지 않고 성공적으로 치러냈다는 것 자체가 성과이다. 각국 정상들의 이해관계와 입장을 조율하는 몫을 의장국이 맡아야 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최근 코스피 활황도 대통령실은 호재로 판단할 것이다. ‘코스피 5000 시대’를 외치며 주식부양을 시사해 온 정치적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APEC 기간 동안 방한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 힘을 실어준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GPU 26만 장을 팔겠다고 약속한 것 등이 특히 여론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대통령실은 여당이 이런 성과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면서 긍정적 여론을 만들기를 바랐을 것이다.
물론 더불어민주당이 이런 맥락을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재판중지법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 논란이 되면서 이런 ‘호재’들은 제한적으로만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 이 배경에는 이른바 ‘대장동 재판’의 판결이 나왔다는 사실도 작용했다. 이 재판부가 대장동 사건에 이재명 대통령이 연루되었다고 본 것인지가 논란이 되면서 다수 일간지가 재판중지법 소식을 함께 다루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즉, 재판중지법 추진이 ‘이재명 대통령이 유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자 여당이 나서서 재판을 법적으로 중지시키려 한다’는 보수세력의 프레임 강화에 이용당한 것이다.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서 대통령실의 태도는 일견 이해가 간다. 직전까지 여당의 조희대 대법원장을 향한 무리한 공세가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부담을 줬다는 지적은 이미 나왔다. 선례가 있는데도 여당이 재차 같은 방식으로 여론을 다루려 하자 보다 분명한 공개적 방식으로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판단한 것 아니겠냐는 거다.
그렇다면 여당이 계속 이런 식의 무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1차적으로는 ‘이재명 대통령을 위협하는 사법부의 공세를 방어해야 한다’는 식의 충성경쟁이 문제라는 지적을 할 수 있다.
이 맥락에서 트리거가 된 것은 서울고법원장이 국회에 출석해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 재개 가능성을 언급한 사례이다. 물론 서울고법원장의 발언은 원론적 차원이다.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안 재판이 중단된 것은 각 재판부가 밝혔듯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렇기에 선거가 이미 끝난 지금 형식논리적으로는 각 재판부가 언제든 재판을 재개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재판 재개를 위해서는 소추의 범위에 재판이 들어가는지 등 헌법 84조를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에 대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대법원은 이전에 단일한 입장을 정하지 않고 각급 재판부가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는 메시지를 내놓은 바 있다. 그러니 이 역시도 판사들이 알아서 해야 하는 거라는 점에서 원론적으로는 재판 재개의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러니 서울고법원장의 답변이 이런 식으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실이 밝혔듯 헌법 84조에 대한 대다수 헌법학자들의 해석은 소추에 재판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의 안정적 국정 운영을 보장하기 위한 조항이라는 점을 보아도 그러한 결론은 합리적이다. 지난 대선 국면에서 이 쟁점을 활성화 시킨 것은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였다. 정파적 목적 때문에 과도하게 부풀려진 쟁점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생각해보면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재임 기간 중에 재개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판사가 헌법에 대한 다수 해석을 거스르는 것을 넘어 이를 재판 실무에 적용하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의도가 있는’ 일로 비춰질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국민의힘의 프레임 전략을 상기해보면 재판중지법 추진은 득은 없고 실만 있는 일인 셈이다.
만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분명한 로드맵을 갖고 국민적 명분을 갖춰 사법개혁 전반을 추진했다면 일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그간 해온 방식은 사법개혁을 국민 다수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일이 아니라 ‘이재명 지키기’처럼 비춰지게 하는 것이었다.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재판중지법 등이 모두 마찬가지다. 여당은 “이재명 대통령을 지키자”는 식의 주장은 많이 했지만 사법개혁을 통해 실제 일반 시민들의 권익이 어떻게 증진되는지에 대해선 제대로 설명 및 설득을 해내지 못했다.
여당의 행보는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라는 맥락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선거 출마 대상자들은 이 맥락에서 충성경쟁의 방식으로 가속 페달을 밟고, 지도부는 사법부 등 개혁의 대상이라는 외부의 적을 상정해 공천 등 과정에서 분열을 막고자 하는 이유에서 이를 용인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국정 운영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에선, 아무리 지방선거가 중요하다고 해도 이런 식의 정치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시점이 온 것이다. 여당은 집권세력이라는 자각을 갖고 책임감 있는 정치를 해야 한다. ‘중도는 없다’는 식의 세계관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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