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미래는 디지털이다 

'혁신'을 통제하면 기회를 잃는다

2025-11-03     권오석 공인회계사/칼럼니스트

[미디어스=권오석 칼럼] 대한민국은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다. 초고속 통신망, 세계 최고 수준의 데이터 인프라, 그리고 창의적인 인재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모든 잠재력이 ‘디지털 금융’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는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세계는 이미 블록체인·핀테크·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새로운 금융 질서를 구축하고 있는데, 한국은 여전히 규제 논의만 이어가고 있다.

최근 미국의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코인베이스는 3분기 순이익 4억 달러를 기록했고, 서클은 시가총액 358억 달러로 중견은행 수준에 도달했다. 미국 연준은 아예 블록체인 결제망과 스테이블코인을 공식 의제로 삼고, GENIUS Act를 통해 비은행 기업에도 발행 자격을 부여했다. 금융 혁신을 ‘관리 가능한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스테이블코인 (PG) (연합뉴스)

반면 한국의 정책은 여전히 '통제' 중심이다.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을 화폐대용재로 규정하며, 비은행 발행은 금산분리 원칙 위반이라고 못 박았다. 한국은행 총재는 “달러 유출이 우려된다”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부정적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외환위기 트라우마에 갇힌 사고다. 지금의 스테이블코인은 과거의 ‘달러 페그’와 다르다. 블록체인 기반의 결제 기술은 실시간 회계투명성을 확보하며, 오히려 통화 안정성과 신뢰를 높이는 기술적 수단이 될 수 있다.

문제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다. 미국은 “위험을 제도권 안에서 관리하자”고 판단했고, 한국은 “위험하니 금지하자”고 접근했다. 이 차이가 국가 경쟁력을 갈라놓고 있다.

우리의 금융당국은 여전히 1990년대식 ‘금융 안정 프레임’에 머물러 있다. 새로운 산업이 나타날 때마다 ‘통제’와 ‘승인’부터 언급하고, 혁신은 ‘실험적’으로 제한한다. 규제 샌드박스는 혁신을 위한 제도이지만 실제로는 행정절차와 감독의 연장선상에 머무르고 있다. 금융위원회·기획재정부·한국은행 모두가 기존 질서 유지를 우선하며, 산업적 기회를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핀테크 산업은 젊은 공학자들과 창의적인 개발자들이 수익을 창출하고 세계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대표 산업이다. 한국은 전자결제, 송금, 인증, 블록체인, 보안 기술 등에서 이미 충분한 기술적 기반을 갖췄다. 문제는 '제도적 문'이다. 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젊은 세대는 싱가포르·두바이·뉴욕으로 떠날 것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 [연합뉴스 자료사진]

다행히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한 특별자치도는 이미 ‘핀테크 금융지구 지정’을 결의하며, 지역 단위에서 글로벌 금융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중앙정부의 규제를 피해 새로운 경제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다. 디지털 금융의 본질은 물리적 국경이 아니라 신뢰의 프로토콜이다. 기술과 제도가 결합하면, 지방도 세계 금융의 중심으로 도약할 수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파괴적 개혁’이다. 규제를 느슨하게 푸는 것이 아니라, 낡은 규제 철학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정부 관료와 기존 금융권의 이해 구조가 연결된 현 체계로는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킬 수 없다. 산업은 발전해도, 금융이 이를 지배하지 못하면 수익은 해외로 흘러간다.대한민국은 이미 반도체와 ICT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입증했다. 이제 금융이 그 잠재력을 묶어주는 고리가 되어야 한다.

핀테크 (PG) (연합뉴스)

한국형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민간 핀테크 기업의 자유로운 실험, 중앙은행의 기술협력 개방이 병행되어야 한다. 외환유출을 두려워하기보다, 글로벌 자금이 한국의 디지털 금융 플랫폼으로 들어오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의 금융은 더 이상 ‘제도’가 아니라 ‘속도’의 경쟁이다.세상이 블록체인 기반의 금융으로 옮겨가는 동안, 한국이 안정만을 이야기한다면 결국 안정 속의 쇠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금융의 디지털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금융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태도는 결국 산업의 발목을 잡는다. 이제는 “언제 허용할 것인가”가 아니라“어떻게 안전하게 관리하며 함께 성장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금융이 다시 경쟁력을 회복하려면,혁신을 가두는 대신 제도 속에서 길을 내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진정한 금융주권 회복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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