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희 '허위조작정보 근절법' 애써 보지만 "누더기 법안"
최민희 “다시 노무현정신으로 무장해야 할 때" 김보라미 "한국 언론 생태계 뒤흔들 위험한 시도" 한겨레 "명예훼손죄 개선은 또 왜 나중인가"
[미디어스=고성욱 기자]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위 위원장으로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을 주도하고 있는 최민희 과방위원장이 허위조작정보를 암세포에 빗대는 글을 올렸다.
그러나 법조·언론계에서 민주당의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악법이라며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 허위사실 명예훼손 친고죄 전환, 플랫폼 기업의 임시조치 폐지 등이 우선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최 위원장은 28일 오전 SNS에 <노벨생리의학상과 노무현정신, 그리고 깨시민!>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조절 T 세포’와 그 일부 기능억제를 활용한 극암 치료약 개발에 큰 관심이 갔다”고 했다. 최 위원장은 “어떤 조건에서는 교활한 암세포들이 내 몸 세포로 위장하고 조절 T세포를 유혹한다”며 “암세포에 세뇌당한 조절 T세포는 면역세포들로부터 암세포를 방어해주고 암세포는 자라게 된다. 세뇌당한 조절 T 세포의 혼미를 막아 면역세포들이 암세포만을 공격하게 만든다면 어떨까”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최 위원장은 “언론정상화 운동을 하면서 늘 ‘악의적 허위조작정보는 사회적 가치관을 병들게 하는 암세포’라고 생각했다”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크게는 효과가 없었다. 그리고 결론은 하나, 내가 우리가 판단력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최 위원장은 “허위조작정보에 휘둘리지 않도록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다시 노무현정신으로 무장해야 할 때다. 깨시민으로서 우리가 똑똑한 조절T 세포의 역할을 하자”고 주장했다.
지난 20일 민주당 언론개혁특위는 허위조작정보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를 통한 최대 1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민주당은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정의를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가 허위인 정보’ ‘오인하도록 변형·조작된 내용을 포함한 정보’ ‘타인을 해하게 될 것이 분명한 정보’ 등으로 명시했다. 민주당은 ‘타인을 해할 의도’(악의)가 있는 허위조작정보에 대해 5배의 배액 배상제를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악의성' 추정 요건은 ▲법원의 명령에도 자료 제출을 하지 않을 경우 ▲사실 확인을 위한 충분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 ▲고의로 타인을 해할 의도가 인정되는 경우 등이다.
법조·언론계에서 민주당의 허위조작근절법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악법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김보라미 법률사무소 디케 변호사는 28일 한겨레 칼럼 <여당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누구를 위한 개악인가>에서 ‘바이든 날리면’ 외교부가 MBC를 상대로한 정정보도 1심에서 승소한 것을 거론하며 “(당시)언론과 정부 간 긴장은 극에 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약 징벌적 배상제까지 더해졌다면 어땠을까”라고 반문했다.
김 변호사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의 핵심은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징벌적 손배제와 국가 심의 확대 도입”이라며 “허위정보 근절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한국 언론 생태계를 뒤흔들 위험한 시도다. 이 징벌적 배상제의 도입으로 발생한 위축 효과로 인해, 언론사들은 법적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논쟁적 사안은 회피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표현의 자유는 진실한 발언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오류, 실수, 과장까지 포함해야 공론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헌법재판소는 미네르바 사건 ‘법 조항 적용’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허위사실의 표현으로 인한 논쟁이 발생하는 경우 문제 되는 사안에 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참여를 촉진할 수도 있으므로 반드시 공익을 해하거나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보충 의견을 달았다.
김 변호사는 민주당의 망법 개정안에서 ‘타인을 해할 의도 추정’ 부분이 가장 큰 문제라며서 “언론사 쪽으로 사실상 ‘악의 없음’ 입증 책임이 전환된다. 탐사보도는 불완전한 정보의 조각을 맞춰가는 과정이고, 제보자 보호를 위해 취재원을 공개할 수 없고, 상대방의 비협조로 완벽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입증 책임의 전환은 언론 자유의 근본적인 침해에 연관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망법은 애초에 언론사를 대상으로 하는 법이 아니었다. 이 법에는 이미 수년간 독소 조항으로 평가되었던 임시조치 제도, 명예훼손 처벌 조항, 국가 심의 조항이 존재하고 있었고, 이제 다시 이 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제, 과징금 제도까지 도입해 전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누더기 입법을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민주당의 망법 개정안은 국가 심의의 확대와 허위발언 자체의 처벌이라는 접근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침해적 조항으로 지적한 임시조치 제도와 명예훼손 형사처벌 조항을 폐지하고, 21세기에 걸맞게 빅테크 플랫폼 사업자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망법의 프레임이 전환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겨레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은 같은 날 칼럼 <명예훼손죄 개선은 또 왜 나중인가?>에서 윤석열 정부는 ‘명예훼손’죄를 적용해 비판 언론을 압박했다면서 “민주당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밀어붙이면서 ‘권력감시 보도 위축’ 논란이 일고 있지만, 사실 기자 처지에서 손배소보다 더 부담스러운 것이 형사처벌”이라고 말했다. 민사소송은 회사가 선임한 법률대리인을 통해 대응을 할 수 있지만 형사 사건은 기자가 직접 수사기관에 불려가 조사를 받아야 하고, 재판에 출석해야 하는 등의 압박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책무실장은 “한국에선 특히 정당이나 그 지지 세력이 ‘입막음용’ 고발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의 이런 상황은 국제사회에서도 종종 비판의 대상이 되곤 한다”고 말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지난해 ‘2023년 세계 언론자유지수’를 발표하면서 “한국에서는 일부 언론사들이 명예훼손 혐의로 정부로부터 기소 위협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책무실장은 “주요 선진국들은 명예훼손죄를 폐지하거나 매우 제한적으로만 적용하는 추세다. 특히 사실 적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면서 “민주당은 미국을 사례로 들며 징벌적 배상제 도입의 당위성을 강변하지만, 미국에선 명예훼손을 형사처벌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책무실장은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할 생각이라면, 국제 인권기준에 맞게 명예훼손 법제를 개선해야 한다. 그래야 ‘표현의 자유와 피해 구제의 조화’라는 설명이 진정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책무실장은 징벌적 손배제에 앞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와 허위사실 명예훼손죄의 친고죄 전환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 책무실장은 “윤석열 정권 시절 대부분의 명예훼손 수사는 보수 단체 등 제3자의 고발로 시작됐다. 친고죄로만 바뀌어도 남용 가능성을 많이 줄일 수 있다. 처벌에서 징역형은 제외하고, 공인이나 공적 사안에 대해서는 폭넓게 면책을 보장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이 책무실장은 민주당은 징벌적 배상제 골자의 망법 개정안을 연내에 통과시킨다는 방침이라면서 “그러면서도 명예훼손 조항 개정에 대해선 ‘추가 개혁 과제’로 미뤄뒀다. 징벌적 배상제는 시점을 못박아놓고 밀어붙어야 할 정도로 시급하고, 표현의 자유 보호는 덜 중요하다는 건가”라고 비판했다. 이 책무실장은 “더욱이 명예훼손 법제 개선은 징벌적 배상제와 달리 언론계와 시민사회에서 충분히 합의가 이뤄진 사안이다. 이미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도 있다. 그런데 왜 나중인가”라고 반문했다.
언론현업단체들은 2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주당의 허위조작근절법에 대해 “언론뿐 아니라 공익 제보자도 위축시키는 법안”이라며 사회적 논의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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