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조작정보근절법, 윤석열 수신료분리징수 기시감" 왜?
[언론현업단체 기자간담회] "플랫폼 기업의 '삭제' 조치 기준 모호…권력의 포털 압박 전례 보면 악용" "공익 목적 내부 고발자도 위축될 것"... "민주당뿐 아니라 대통령실에도 부담"
[미디어스=고성욱 기자] 언론현업단체가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최민희)가 추진 중인 배액배상제 골자의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에 대해 “윤석열 정부의 수신료분리징수 시행령 개정 기시감이 든다”며 숙의를 촉구했다. 또 현업단체들은 "권력자 입장에서 보면 모든 제보가 자신을 해할 의도가 있는 것"이라며 "언론뿐 아니라 공익 제보자도 위축시키는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방송기자연합회 등 언론현업단체들이 27일 한국프레스센터 언론노조 대회의실에서 <권력감시 심각한 위축, 정보통신망법 개정>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지난 20일 민주당 언론개혁특위는 허위조작정보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를 통한 최대 1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공개했다. 민주당은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정의를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가 허위인 정보’ ‘오인하도록 변형·조작되 내용을 포함한 정보’ ‘타인을 해하게 될 것이 분명한 정보’ 등으로 명시했다.
민주당은 ‘타인을 해할 의도’(악의)가 있는 허위조작정보에 대해 5배의 배액 배상제를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허위조작정보의 발화자가 ‘공인’인 경우에도 손배제 적용 대상이 된다. 구체적으로 '악의성'에 대한 기준은 ▲법원의 명령에도 자료 제출을 하지 않을 경우 ▲사실 확인을 위한 충분한 조치를 하지 않은 경우 ▲고의로 타인을 해할 의도가 인정되는 경우 등이다. 또 플랫폼 사업자가 ‘신중한 판단’을 거쳐 불법정보·허위조작 정보에 대해 삭제·계정 정지·광고 수익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민주당은 권력자의 손배제 청구를 배제하지 않았다. 다만 전략적 봉쇄소송 방지 대책으로 ‘중간판결제’를 특칙으로 명시했다. 권력자가 징벌적 손배제를 청구했을 경우, 언론 등이 재판부에 전략적 봉쇄소송 여부를 먼저 판단해달라고 신청하는 절차다.
언론현업단체들은 이들 규정과 관련해 언론의 자유와 권력자 비판 보도를 위축시킬 것이라며 독소 조항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준형 언론노조 정책전문위원은 “민주당의 망법 개정안은 기존 불법 정보 규정에 더해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규정을 신설하고 있지만, 규정의 내용과 표제가 불일치한다”고 지적했다. ‘조작 행위의 여부’가 허위조작정보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현재 조항은 '악의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망법 개정안은 또 규제 대상의 정보의 범위를 과도하게 확대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문위원은 ‘플랫폼 신고 조치’와 관련해 규정이 모호해 자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며 “플랫폼은 정보 삭제, 차단, 계정 정지 등의 강력한 조치를 행할 수 있는데 ‘신중한 판단'이라는 모호항 내용만 담겨 있다. 그간 권력이 포털이라는 플랫폼에 대해 압력을 가하고, 굴복했던 예전의 사례를 비추어 봤을 때 언론 자유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언론개혁 특위 자문위원으로 참여 중인 이 전문위원은 ’방미통위의 과징금 조항‘에 대해 “특위 진행 과정에서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조항”이라며 “숙의가 없었던 만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종현 기자협회장은 “입법 과정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국회 절대 다수인 민주당이 이렇게 졸속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나”라며 “공론화 과정은 없었고 그야말로 속도전이었다. 오죽하면 민주당 의원들도 언론단체 관계자에게 ‘문제의식에 공감한다’고 하고 있는데, 특위 내의 언론단체·시민단체 들과 숙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협회장은 법안의 주요 사안을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한 점에 대해 윤석열 정부의 기시감이 든다며 “윤석열 정부에서 시행령을 고쳐, 수신료 분리징수에 나섰다. 그때 민주당과 언론단체들이 얼마나 많이 비판했나, 민주당이 입법 과정에서 똑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협회장은 “망법 개정안은 민주당 내부, 대통령실에도 부담이 될 것이다. 최대 5배의 배액배상제, 최초 발화자에 동일한 책임 등 법익의 균형성을 갖추지 못한 입법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속도전을 멈추고, 숙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장은 “언론중재법에서 망법으로 개정 논의가 옮겨가면서 규제에 대한 그물은 넓어지고, 보호돼야 할 표현의 자유는 좁아졌다”며 “법은 디테일이 중요하고 명확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박 연합회장은 ‘자료 제출을 하지 않을 경우' 조항과 관련해 “언론의 제보자·취재원 보호를 악의성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라며 “공익을 위해 진실을 말하려는 내부 고발자들이 위축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박 연합회장은 ‘사실 확인을 위한 충분한 조치’ 조항에 대해 “현장 기자들이 제일 어리둥절하는 부분”이라며 “당연히 사실 확인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맞는데, ‘충분한’ 조치를 도대체 누가 규정할 것인지 의문이다. 보도에 불만은 품은 자들은 이 조항으로 어떻게든 문제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연합회장은 ‘중간판결제 특칙’이 권력자의 전략적 봉쇄소송을 막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박 연합회장은 “대기업은 자본력을 이용해 소송을 거는 것만으로도 불리한 보도를 억제할 수 있다”며 “언론이 일단 부당하다고 생각해 비용을 들여 소송에 대비해도, 법적공방에 몰두해야 한다. 중간판결이 나와도 마찬가지다. 이 특칙은 태풍 앞에 우산을 준 격”이라고 했다.
김재영 PD연합회장은 ‘타인을 해할 의도 추정’ 조항에 대해 “권력자 입장에서 보면 모든 제보가 자신을 해할 의도가 있는 것”이라며 “황우석 박사 논문 조작 의혹의 제보자가 함께했던 연구원이었는데, 당시 황우석 박사가 ‘나를 해할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다. 주관적이고 자의적인 조항 하나만으로, 부당한 권력에 맞서려는 제보자들은 물론 그 제보를 받은 기자나 PD들의 보도 의지도 많이 위축시킬 것”이라고 했다. 김재영 협회장은 “이 법의 적용 대상은 너무나 광범위해 좋은 보도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시민들이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호찬 언론노조 위원장은 “언론만 이 법의 제한을 받는 게 아니라 유튜브·SNS에도 적용되는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그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한다”며 “민주당은 이 법에 적용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히 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일부 보도에서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발로 ‘이미 언론 단체와 소통을 통해 대부분의 쟁점을 해소한 상황인데, 쟁점 하나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칠 수 없지 않나’라고 주장하는데, 9월 말 언론노조 등이 자문위원으로 논의에 참여할 때까지만 해도 특위 내에 많은 이견이 존재했고, 방미통위 과징금은 자문위원들과 한 번도 논의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쟁점이 해소됐다는 것은 거짓”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추석 전 정청래 대표와 면담을 통해 속도전 중단을 요구한 뒤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났지만 숙의 과정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극우 유튜버나 스카이데일리와 같은 허위 보도를 타깃으로 법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이해했는데, 묻고 싶다. 이번 개정안으로 과연 요건이 엄격해졌는지, 정상적인 언론 활동은 적용받지 않는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 언론의 권력감시기능 약화 방지 방안이 담겼는지”라며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이기 때문에 허위조작 정보의 정의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민주당이 법안 강행 의지를 보인다면 향후 대응에 대한 계획이 있나’라는 질문에 “최민희 위원장도 이 법안을 발표하며 시민사회와 충분히 논의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일부 조항을 개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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