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본사가 없어지지 않는한 오요안나 추모 공간 존재"

[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2025-10-27     이영광 객원기자

[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지난 15일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유가족과 MBC가 합의문에 공동 서명했다. 오 씨가 사망한 지 13개월 만이다. 2021년 기상캐스터 공채로 MBC에 입사한 오 씨는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다 지난해 9월 15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날 합의문 조인식에서 MBC는 유가족에게 공식 사과하고 고인의 명예사원증을 전달했다.

지난 5월부터 재발방지 대책과 고인의 명예회복을 요구하며 시민사회단체들과 본격 투쟁에 나선 오 씨의 어머니 장연미 씨는 지난달 8일 MBC 사옥 앞에서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그리고 추석연휴 기간이었던 지난 5일 단식 농성 28일 만에 MBC와 잠정 합의했다. 협상 과정에서 유족 측 입장을 대리해온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과 16일 전화 연결해 이번 합의의 의미를 짚어보았다. 다음은 박 운영위원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숨진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 씨 어머니 장연미 씨가 1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고인의 명예사원증을 받은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MBC와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유가족의 합의문 조인식이 진행됐는데 유족 측 대리인으로서 조인식 마친 소회가 어떠세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겨울이 끝난 느낌입니다. (어머님) 단식 기간이 28일이었고, 잠정 합의가 이루어지고 조인식까지 합하면 천막 농성이 38일이었는데요. 개인적으로 한 300일은 지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어머니 건강이 악화되기 전에 합의가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는데, 한편 부족한 부분 때문에 속상한 감정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사망사건, 잘 모르는 분들 위해 설명 부탁드려요.

“오요안나 씨는 2021년에 MBC 기상캐스터 공채에 합격해 뉴스에서 일기예보를 진행하셨어요. 일 잘하고 성실해서 칭찬을 많이 받았고, 타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크게 주목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선배 기상 캐스터들의 괴롭힘 사건이 있었고, 그게 너무 힘들어서 사측에 호소했는데 MBC로부터 별다른 보호 조치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 건강이 점점 악화돼 여러 차례 자해를 시도하다 작년 9월 15일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후 고인의 어머니인 장연미 님이 눈물로 지내시다가 딸의 핸드폰 메모장, 카톡 녹음 등 유서를 발견하고 작년 12월에 저희 직장갑질119에 제보하셨습니다.”

제보 받고 어떻게 대응하셨나요?

“오요안나 님이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건 사망한 지 한참이 지나서였어요. 말씀드린 대로 유가족이 직장갑질119에 제보했는데, 유언이나 카톡 녹음 같은 자료가 보수 언론 통해 보도되고 그 과정에서 정치권에 의해 MBC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왜곡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5월에 다시 유족 측에서 방송비정규직 단체인 엔딩크레딧과 저희 직장갑질119에 이 문제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하셨어요. 저희도 중요한 사안이라고 생각해서 5월부터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했고요.”

박점규 직장갑질119 운영위원 (사진제공=직장갑질119)

5월부터요?

“맞습니다. 지난해 12월에 처음 제보가 들어왔는데, 이후 보수 언론에서 기사가 나가고 4월까지는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쟁점화시키면서 사건이 왜곡됐어요. 그러다가 5월에 유족 측에서 저희에게 다시 도움을 요청해서 직장갑질119와 엔딩크레딧이 시민사회단체를 모아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했던 거죠.”

당시 MBC 대응은 어땠나요?

“MBC는 당시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특히 고용노동부에서 근로자가 아니라고 했고 괴롭힘은 프리랜서 계약을 맺은 기상캐스터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니, MBC에 법적 책임은 없고 도의적 책임이 있다는 정도로 소극적으로 대응했어요.”

MBC가 직접 공개 채용했는데 왜 프리랜서인가요?

“기상캐스터 채용 공고를 보면 ‘프리랜서 공개 채용’이라고 쓰여 있어요. 언어도단 같은 건데, 프리랜서라면 자유롭게 활동하는 계약이니까 어느 방송사에서 기상 예보를 해도 되는 거잖아요. 근데 실제는 MBC 전속이었다는 말이죠. 고용의 책임을 지기 싫으니까 프리랜서 계약서를 쓴 거고, 그런 계약이라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으니 공개 채용을 진행한 거죠.”

(사진제공=직장갑질119)

MBC만 프리랜서로 계약하나요?

“아니요.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기상캐스터가 60명 가까이 되는데 모두가 프리랜서 계약을 맺고 일합니다. 예전에 MBC의 김동완 통보관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우리나라의 마지막 정규직 기상캐스터였어요.”

고용형태가 왜 바뀐 걸까요?

“직접 고용하면 임금도 많이 줘야 하고 고용도 정년까지 보장해야 하니 비용이 많이 들잖아요. 그런 직종들을 하나하나 다 프리랜서로, 비정규직으로 외주화시켰던 거죠. 지난 20년 동안 가장 기폭제가 됐던 사건이 외환위기였어요. 그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25년 가까이, 특히 방송사에서 몇몇 업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업무를 외주화하거나 다단계 하청화하거나 프리랜서로 계약하고 있습니다.

방송사가 노동법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싼값에 부려 먹을 수 있는 방송 프리랜서를 대거 만들기 시작했고, 그 악습이 오랫동안 지속돼 이번 사건에까지 이르게 된 거죠.”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인데 프리랜서 계약과 관련 있나요?

“그렇죠. 만약에 오요안나 씨가 김동완 통보관처럼 MBC의 정규직이었다면 당연히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았을 테니까요. 회사에 정식으로 선배 기상 캐스터의 괴롭힘 때문에 힘들다고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을 것이고, 그러면 MBC는 사건을 조사해서 가해자 징계 절차에 들어갔을 겁니다.

하지만 MBC는 오요안나 씨와 프리랜서로 계약했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거죠. 그러니까 오요안나 씨가 보호를 요청했을 때 ‘니들끼리 잘 풀어라’라고 방치한 거였어요. 만약에 정규직이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을 테고, 설령 벌어졌다 하더라도 MBC가 직접 조사하고 개입해서 보호에 나섰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억울한 죽음은 생기지 않았을 게 분명합니다.”

서울 상암동 MBC 본사 앞에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피켓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미디어스)

이번 합의의 의미는 뭘까요?

“첫 번째로는 MBC가 고 오요안나 씨를 노동자로 인정해서 명예사원증을 수여하고 방송사 역사상 처음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상설 추모공간을 MBC 본사 안에 만들기로 약속했거든요. 고인의 명예를 회복했다는 데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지금까지 프리랜서로 계약해 왔던 기상캐스터 직무를 정규직인 기상기후 전문가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단 점인데요. 앞서 말씀드렸듯, 외환위기 이후 모든 방송사에서 프리랜서로 전환됐던 이 직무가 다시 정규직으로 돌아오게 됐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나 기상캐스터는 젊은 프리랜서 여성으로만 고용해왔거든요. 그러니까 이번 합의가 이런 고용 관행에 변화의 물꼬를 열어서 정규직 전환의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떤 기사를 보면 추모공간을 2주기까지 유지한다던데, 아닌가요?

“연합뉴스에서 기사가 잘못 나갔고요. 그게 아니라 상설 추모공간을 마련하기로 했거든요. 그러니까 고 오요안나 씨가 MBC에 언제 와서 어떻게 일했는지가 적혀 있는 상징물 같은 걸 만들 거예요. MBC 상암동 본사가 없어지지 않는 한 고 오요안나의 기념 공간은 계속 존재하는 거죠.”

또 다른 의미가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에서 확인된 건 방송사가 프리랜서든 비정규직이든 용역이든, 어떤 고용 계약을 맺었든지간에 방송사 위해 일한 노동자를 반드시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거예요. MBC 사장이 나와서 국민과 유족 앞에 머리 숙여 사죄했다는 것은 그 책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죠. 이번 합의 자체가 타 방송사에도 영향을 미칠 굉장히 중요한 이정표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고 오요안나 1주기 분향소 (사진=미디어스)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은데.

“많습니다. 조인식 때 안형준 MBC 사장이 공개 사과는 했지만, 재발방지 대책에 대해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내용만 열거했을 뿐 획기적인 고용구조 개선 방안이나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안들은 하나도 발표하지 않았어요. 저는 MBC가 이렇게 소극적으로 대응할 일인가 싶어요. 공영방송으로서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의미 있는 보도를 해온 MBC가 내부 문제 해결에도 모범을 보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 저희의 요구안 중에서 제3의 전문기관에 MBC의 비정규직·프리랜서 실태를 조사한 후 그 조사 결과에 따라서 정규직 전환 등 고용구조 개선이나 처우 개선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MBC는 자체 조사하고 있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어요. 그 요구안을 관철하지 못한 게 매우 아쉽습니다.”

조인식 때 요안나 씨 어머니 반응은 어땠나요?

“어머님이 단식을 중단하신 지 열흘 정도 됐는데 건강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다행히 회복 중인 상황이었어요. 조인식에선 또 많이 우셨습니다. 특히 딸의 명예사원증이 담겨 있는 액자를 받으실 때 통곡하셨어요. 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엄마가 어렵게 산다고 아르바이트까지 해서라도 매달 생활비를 보내줬다고 해요. 그런 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는 게 너무 속상하셨겠죠. 또 이제라도 다행히 딸의 억울함을 풀어줬다는 안도의 눈물인 것도 같아요.”

어머니가 단식하셨을 때 지켜봤을 텐데 어떠셨어요?

“사실은 제가 여러 많은 유가족 투쟁을 지켜봤는데, 유가족이 자기 가족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직접 문제 해결하라고 촉구하면서 장기간 단식 농성한 건 세월호 유가족과 오요안나 어머님뿐이었어요. 왜냐하면 가족이 사망했을 때 그 유족이 투쟁하면 그 과정에서 대체로 문제가 해결됐거든요.

그러나 이번에는 MBC가 해결의 의지를 보이지 않아서 단식까지 하게 됐는데 개인 혼자서 그렇게 오래한 건 처음이에요. 더구나 어머니는 작년 9월에 딸을 잃고 나서 거의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했었거든요. 어머님 건강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합의가 돼서 단식을 중단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숨진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 씨 어머니 장연미 씨가 1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고인의 명예사원증을 받은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28일간 단식하셨는데 단식 기간 중 MBC는 어떤 반응이었나요?

“MBC 경영진도 어머님 건강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근데 합의가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MBC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 같은 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MBC 구성원들은 노동부가 고 오요안나 씨는 법적으로 프리랜서라고 했는데, 왜 MBC 노동자로 인정해 달라고 하느냐는 거예요.

그다음에 그동안 MBC 내에서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이 계셔서 보상금 한도도 있는데 어떻게 넘어서느냐는 등 협상을 어렵게 하는 걸림돌이 굉장히 많았거든요. 그런데 마지막에 협상의 물꼬가 트인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정적인 건 어머님의 건강 상태였어요. 서로 양보해서 타결하자고 했죠.”

‘무늬만 프리랜서’라 불리는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부족한 합의안이지만 이번에 가장 큰 변화는 프리랜서로 계약했던 기상캐스터 직무를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점입니다. KBS를 포함해서 모든 방송사가 기상캐스터를 젊은 여성 프리랜서로 채용해 운영하고 있는데, 이런 관행을 바꿀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MBC를 필두로 해서 공영방송인 KBS부터 기상캐스터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바로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방송 기상캐스터만이 아닙니다. 아침 방송에 나오는 리포터, 또 아나운서와 PD 등 정말로 많은 이들이 방송사에서 상시 지속적인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프리랜서 계약에 묶여 있어요. 이 노동자들에 대해서, 예산 문제 때문에 한 번에 정규직 전환을 할 수 없다면 단계적으로라도 고용구조를 개선해 나가는 게 공영방송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6일 서울 상암동 MBC 본사 앞 단식농성장에서 고 오요안나 어머니 장연미 씨(가운데)와 시민사회·정당 관계자들이 추석 거리차례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15일 기자회견 후 비정규직을 모두 없애라고 요구했는데 처우 개선 요구가 더 현실적이지 않나요?

“방송국뿐만은 아니지만 저는 ‘상시 지속적인 업무’는 정규직화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간헐적인 업무가 반드시 있어요. 특히 방송국에는 많습니다. 일시 간헐적인 업무가 불가피하다면 그런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도 충분하게 보상 받아야겠죠. 당연히 처우 개선을 통해 그분들이 일하면서 재정적 어려움이나 차별 혹은 괴롭힘에 노출되지 않고 인권이 보호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것 또한 방송국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현재 방송사에서 고용 불안과 차별에 시달리면서 일하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가 개선되길 바랍니다. 또 이번 합의가 ‘무늬만 프리랜서’인 노동자들이 보다 나은 근로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용기 낼 수 있는 시작점이 되길 바랍니다. 혼자서 싸우는 건 힘들지만 같이 싸우는 건 가능하거든요. 이분들이 용기를 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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