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과 '유명인 죽이기'만 남은 사회
[culture critic] 대중성이 사라진 시대의 사회상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인터넷 여론을 둘러보고 있자면 요즘엔 많은 이가 관심을 갖는 화제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새삼스러운 이야기다. 매스미디어 시대가 저문 지 오래전이고, 그와 함께 대중성이란 개념이 퇴화하고 있다. 다만 그런 경향이 갈수록 깊어지는 것 같다. 예컨대 이슈 소비 성향이 강한 SNS와 인터넷 게시판에서도 사용자 성향과 플랫폼을 아우르는 공통된 이슈나 문화 콘텐츠는 확연히 줄어든 것 같다. 체감을 말하자면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해도 그렇다.
얼마 전까지 그런 공통된 화제를 이루던 주제가 있기는 했다. 걸그룹이다. 2022년부터 소위 ‘4세대’ 걸그룹이 동시다발적으로 데뷔했다. 원래부터 대중성에 강점이 있던 걸그룹은 시장의 부흥과 함께 다시 한번 우상이자 가십거리로 떠올랐다. 뉴진스처럼 레트로 트렌드를 이끄는 그룹은 10대에서 50대를 넘나들며 세대를 포섭할 수 있는 영향력을 확산했다. 말하자면, 걸그룹은 대중문화가 흩어져 가는 시대의 마지노선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활동 연차가 쌓이며 처음의 신선함을 잃었다. 트렌드는 식어 갔고 때마침 민희진과 하이브의 분쟁이 터졌다. 이 분쟁은 단기적으로는 거대한 이슈를 이루며 뉴스 창을 휩쓸었지만, 상호 폭로가 한없이 이어지며 사람들에게 피로감을 심었다. 분쟁의 장기화는 케이팝 신 전체의 이미지에 오점을 물들였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더 이상 아이돌 이야기를 떠들지 않는다. 작년과 올해 ‘5세대’를 자처하는 그룹들이 또 한 번 쏟아졌지만 흐름은 반등되지 않았다. 이미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는 데도 이렇다면 걸그룹이 다시금 대중성을 얻을 수 있을지 자체가 불투명하다. 그건 곧 어디서든 대화 소재가 될 수 있는 문화 분야가 공란이 되어간단 뜻이다.
이제 대중성을 발휘하는 주제는 두 가지 정도가 남은 것 같다. ‘국뽕’과 ‘유명인 죽이기’다. 올여름 발표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신드롬이라 부를 만큼 강력한 이슈를 형성했다. 알다시피 한국과 연관된 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초유의 성공을 기록한 것에 대한 열광이 낳은 사건이다. TV에서도 신문에서도 유튜브에서도 SNS에서도 남녀노소 모두가 <케데헌>이 빚은 ‘K’의 기적에 감격한다. 산개된 미디어 지형을 타고 사람들의 시야와 취향이 쪼개진 시대에 만인의 관심사를 통합할 수 있는 화제가 ‘국뽕’인 것이다.
한편 올 한 해 인터넷 세상 최고의 히트작은 ‘백종원’이다. 설날 ‘빽햄’ 사태에서 시작된 논란은 끝도 없이 ‘파묘’되는 사업상의 추문으로 이어졌다. 백종원이 미디어에서 보여준 ‘내로남불’에 대한 조롱은 아직까지 계속되며 유튜브와 인터넷 게시판의 리젠을 이룬다. 이건 백종원 개인의 과오를 떠나 동시대 군중의 집단적 유희로 자리 잡은 ‘유명인 죽이기’가 극단화된 증상이다. 최근 한 유튜버의 음주 운전이 적발된 기사에 달린 댓글은 이 현상을 생생하게 웅변한다. “너 아주 잘 걸렸다. 심심했는데.” 방송인이든 셀럽이든 사업가든 심지어 일반인이든, 누군가 논란이 터지길 기다리다 처형하는 것이 시대상이 되었달까.
공동체의 추억은 한 시대를 사는 다수 군중의 기억 속에서 구성된다. 90년대가 복고의 주문을 타고 되살아나 레트로로 정착한 것도 그때가 매스미디어, 대중성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통의 서사가 부재한 시대는 과연 무엇으로 기억되고 어떤 추억을 남길 수 있을까. 그것은 2020년대를 사는 사람들 사이에 뚜렷한 시대적 유대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신 이 시대의 하루하루를 채우는 건 케이컬처의 신화를 보고 외치는 ‘김구 선생’의 이름과 서로를 노려보는 시민들의 성난 얼굴이다. 국가의 영광은 거룩하게 빛나지만 국민의 일상은 사납게 메말라 간다. 이 간극과 역설은 단순히 대중성이 소멸한 결과만은 아니기에 뼈아프다. 양 극단 사이에 있는 건 거대한 존재에 자아를 의탁하거나 분노의 격류에 정신을 내맡기며 잊고 싶어 하는 저마다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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