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조희대 청문회
[김민하 칼럼]
[미디어스=김민하 칼럼] 국민의힘의 최근 모습은 할 말을 잃게 한다. 장동혁 대표는 장외투쟁 과정에서 ‘이재명 독재’를 끝내자는 등 온갖 과격한 메시지의 발신에 앞장섰다. 그리고서는 당내 단합을 모색하겠다며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나 고개를 숙였다. 김문수 전 장관은 대표적인 ‘아스팔트 우파’ 출신이다. 당내 일각에서 “김문수는 만나면서 왜 한동훈은 만나지 않느냐”는 비판도 나오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의아한 것은 윤석열과의 절연과 불법 비상계엄 선포 사태와의 선긋기를 주장하던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최근 행보도 국민의힘 주류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당대회 국면 이후 당내 비판 노선을 사실상 포기한 그는 본래부터의 주특기인 ‘이재명 때리기’에 몰두하고 있다.
물론 야당 주요 인사가 대통령에 대한 비판에 몰두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그 방식이다. 한동훈 전 대표의 메시지는 사안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방해한다. 배임죄 폐지 논의는 이재명 대통령 면소 판결을 위한 것이고, 북핵 문제에 대한 3단계 접근은 대북송금 사건으로 인해 약점을 잡힌 이유로 나오는 온건론에 불과하다는 식의 접근이 대표적이다.
이런 논리는 ‘한동훈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전형적인데, 이런 메시지에 기댄 정치로 얻을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건 지금까지의 과정을 통해 이미 확인됐다. 그럼에도 한동훈 전 대표가 이런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당내 비판에 몰두하다가 ‘배신자’로 지목돼 결국 주류에서 튕겨져 나간 유승민 전 의원이나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같은 전철을 밟을 수는 없다는 계산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짚어볼 만한 것은 이들의 보잘것 없는 다양한 계산에 의한 움직임의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게 여당의 면밀한 고려 없는 행보라는 것이다. 최근 한참 논란이 된 조희대 대법원장을 겨냥한 사퇴론이 대표적이다.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론은 부승찬, 서영교 의원 등이 제기한 ‘4인 회동설’을 소재로 크게 불타 올랐지만 명확한 근거가 제시되지 않으면서 곧 혼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보수진영 전반은 이를 계기로 나름대로의 대공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집권세력이 사법부를 흔들고 장악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 내며 특검을 활용해 야당을 없앤 후 (중국-북한식)사회주의 개헌을 하려는 것이라는 등의 음모론이 제기되었다. 내란전담재판부는 인민재판이며 나치즘이라는 주장이 ‘헌법학자’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일도 벌어졌다. 반격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여당은 퇴로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여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4인회동설’이 아닌 애초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선거법 재판 문제와 지귀연 판사의 윤석열 구속취소 결정이 문제라는 ‘본질설’로 초점을 이동시킨 것은 이런 이유이다.
그런데 여당 소속 법사위원들이 조희대 대법원장 청문회를 실시하기로 의결하면서 여당 지도부의 스텝은 꼬이기 시작했다. 만일 ‘4인회동설’ 등의 맥락이 없었다면 이러한 방식의 청문회도 나름 전략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앞서 ‘4인회동설’ 등의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청문회는 결정적 증거나 증인이 제시되어야만 하는 이벤트로 인식될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지금까지의 상황은 그러한 일이 가능하리라고 보기는 아무래도 어렵다. 그렇다면 청문회 이후 ‘맹탕’, ‘망신주기’, ‘흔들기’ 등의 평가가 다시 나올 수밖에 없다. 늪을 빠져나가기는커녕 더 깊숙히 빠져드는 형국이 돼버리는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여당 소속 법사위원들의 이러한 행보는 당 지도부와 사전 논의된 바 없는 내용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건 강경이냐 온건이냐의 문제조차도 아니다. 당 조직이 전략적 안목과 규율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언론은 논의를 주도한 ‘강경파’ 인사들이 지방선거 출마 예정자들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법사위원장인 추미애 의원과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 서영교 의원 등이 모두 이에 해당된다. 각 개인의 지방선거 전략에 당 전체가 끌려다닌다면, 전략도 없고 규율도 없는 조직이라는 뜻이다.
특검 수사를 받고 있으면서 윤석열과 절연할 의지도 없는 국민의힘이 이런 일을 기회로 국민의 신뢰 회복 기회를 갖는 일은 없으리라 본다. 그러나 ‘중국-북한-전체주의-독재-운동권-진보-여성주의-차별금지법’ 등을 하나로 묶어 민주당 정권과 등치시키고 내로남불이니 위선이니 하며 비판하는 전략을 5년 내내 하면 먹힌다는 것을 보수세력은 이미 문재인 정권을 통해 학습했다. 이미 당한 수에 두 번 당할 필요는 없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집권 여당이 통치 책임을 인식하고 그에 맞게 처신하면 된다. 당 지도부가 중심을 잡고 이러한 일을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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