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조 "권력자 손해배상 위자료 늘려주는 게 중요한가"

언론중재법 기자 간담회…정치·자본 권력의 징벌적 손배제 반대 "권력 아닌 시민 위해 고의·중과실 입증책임 전환 논의 가능" "언중위로 봉쇄소송 제어? 대다수 조정불성립으로 소송 갈 것"

2025-09-10     송창한 기자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최민희)가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권력자의 손해배상 청구 권리를 더 보장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음을 던졌다. 

언론노조는 시민의 언론보도 피해 구제를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에는 적극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언론노조는 이미 일반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전략적 봉쇄소송을 남발하는 정치·자본 권력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의 길을 열어주는 논의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1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전국언론노동조합 대회의실에서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가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기자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10일 언론노조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언론보도 피해 구제, 누구를 위한 개정인가? : 권력자 아닌 시민을 위한 개정을>이라는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언론노조는 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 정부기관, 정무직 공무원, 정무직 공무원 후보자, 대기업, 대기업 주요 주주와 임원 등 정치·자본 권력자는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주체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언론개혁특위는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 처리를 목표로 허위조작정보·보도에 대한 '배액 배상제'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아직 법안 형태로 나오지 않았다. 다만 지난 5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허위조작정보·보도의 기본 손해액을 3천만 원~5천만 원으로 정하고, 고의·중과실 정도에 따라 3~5배의 배액 배상을 적용하고, 인용·매개에 따른 파급력에 따라 할증을 붙이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검토되고 있다.

민주당 언론개혁특위는 정치·자본 권력을 배액 손해배상 청구 주체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방안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한 제어를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정치·자본 권력은 언론에 배액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무조건 언론중재위원회 조정 신청 절차부터 밟아야 하며 언론중재위가 각하·기각·직권조정 결정을 내릴 경우 이를 수용해야만 한다는 내용을 법안에 담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공공의 이해와 관련한 보도에 대해서는 중간판결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1일 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언론보도 피해자 보호 강화를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 방안 마련 토론회' (사진=미디어스)

하지만 언론노조는 언론보도에 대응할 수단을 이미 충분히 갖고 있는 정치·자본 권력에게 손해배상 청구 권리를 더 두텁게 부여하는 것은 언론의 권력 감시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언론노조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청담동 술자리 의혹'에 대해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해 8천 만 원의 배상 판결을 받은 사례 ▲쿠팡이 재취업 블랙리스트 운영 사실을 보도한 5개 언론사에 민·형사상 모든 조치를 취한 사례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광고·정부광고·후원을 통한 언론사 재정 흔들기 등을 거론했다. 

이호찬 언론노조 위원장은 '공인에 대한 허위조작보도로 침해되는 법익의 크기는 일반 시민에 비해 크기 때문에 배액 배상제가 필요하다'는 민주당 주장에 대해 "공인이 겪는 명예의 손실이 크다는 것에는 동의한다"면서 "그런데 공인에 대한 허위보도에 따른 사회적 피해까지 위자료에 포함시켜야 되나라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손해배상액을 늘려 권력자에 대한 허위보도에 따른 사회적 피해를 막는 것과 권력자들에 대한 언론의 감시·탐사보도가 위축되는 효과, 둘 중 우리에게 어떤 게 더 중요한 가치인가"라며 "대기업과 고위공직자의 위자료를 늘려주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언론의 권력감시 기능을 더 폭넓게 활성화시키는 것이 중요한가"라고 거듭 물었다.  

이 위원장은 민주당 언론개혁특위의 전략적 봉쇄소송 제어 방안이 실효성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위원장은 "중간판결은 실무에서 거의 작동한 적이 없는 제도로, 전략적 봉쇄소송을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지 입증된 적이 없다"며 "언론중재위 직권조정 결정을 무조건 수용하게 하겠다는 방안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언론중재위는 2~4주 내에 중재·조정을 위해 양측 주장을 듣는 조직이지 사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사회적 지위와 권위가 부여되지 않은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권력자가 (봉쇄)소송을 남발할 경우 언론중재위가 직권조정이나 기각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라며 "대다수가 조정불성립 결론이 나고, 소송으로 가게 될 것이다. 권력자의 소송 남발을 언론중재위가 막을 수 없다"고 했다.  

언론현업단체들이 지난 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언론중재법 개정, 속도전 반대한다'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사진=미디어스)

민주당은 '배액 배상제가 도입되면 권력의 봉쇄소송이 남발될 것이라는 주장은 논리적이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소송을 통해 얻을 것이 많아지면 당연히 소송을 더 적극적으로 할 의향이 생기지 않겠나"라며 "고의·중과실을 입증하기 위한 추정 조항도 들어가는데 일반 손해배상보다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가는 게 더 유리하게 된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도 많고, 본인(청구인)의 승소를 위한 입증책임 부담도 덜어지기 때문에 소송이 늘어날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라며 "지금도 권력자들은 언론보도가 나오면 일단 '허위·조작이다' '가짜뉴스다' 소송을 제기한다. 금전적·시간적 능력이 있는 권력자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더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정치·자본 권력을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주체에서 배제한다면, 일반 시민들이 청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의 경우 고의·중과실 입증 책임을 언론사로 전환하는 방안을 언론노조 역시 논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도원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은 "지금도 소송이 남발되고 있다. 이동관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YTN 후보자 검증보도에 대해 5억 원을 청구했다"며 "배액을 한다면 15억, 20억 원의 청구를 하게 된다. 다행히 기각됐지만 이런 소송이 남발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한 국회의원이 자기 아들이 사장인 건설사에 특혜를 줬다는 취지의 의혹 보도가 있었는데, 이게 허위 보도라며 2억 5천 만 원을 청구했다"며 "건설사 사장이 아들이 아니라 배우자여서 허위라고 소송을 냈다. 여기에 배액 배상이 도입된다면 소송이 남발될 것은 자명하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많은 시민들께서 징벌적 손해배상과 관련해 '언론이 배상 많이 해야지' 생각하는데, 이것이 '민사 소송'이라는 점을 잊고 계신 듯하다"며 "기본 손해액 5천만 원의 5배를 가정해 2억 5천만 원을 청구해야 한다면, 인지대만 100만 원에 패소 시 상대방 변호사 비용까지 물어야 하기 때문에 총 1천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게 된다. 돈 있는 사람들에게는 부담 안 될 수 있지만 평범한 시민들이 이런 제도를 쉽게 선택할 수 있을까"라고 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지난달 14일 국회에서 열린 언론개혁 특별위원회 출범식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된 23개 법안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미디어스)

조성은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으로 인해 언론과 기자의 취재 비닉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 부위원장은 "아직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이 어떻게 설계될지 분명하지 않지만 자료제출 요건이 있을 수 있다"며 "뉴스룸 편집국 입장에서 굉장한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서 자료를 제출하지 말아야 할지, 취재원 보호를 명목으로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을 때 법원이 그것을 합리적인 이유로 인정할지 안 할지 고민스러워진다"고 했다. 

조 부위원장은 "전반적인 언론 위축 효과로 작용할 수밖에 없고, 이것은 제보자 역시 마찬가지"라며 "'징벌적 손해배상이 걸리면 나의 신원이 노출될 수 있는데 어떻게 제보하지'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지금도 법원에 가면 허위사실 여부,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성이 있었는지 여부를 두고 양측의 입증 책임이 종합적으로 다뤄진다"며 "만약 '법원의 자료제출 명령을 어기면 고의·중과실이야' 세세하게 요건을 정한다면 언론의 취재원 보호 의무가 상당히 후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