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기술, 이제는 제도와 생태계다
[기고] 기술 보유국을 넘어 우주경제 선도국 도약의 필요조건
[미디어스=김병수 칼럼]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적으로 의미 있는 우주기술 성취를 이루었다.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세계 7번째로 자체 중형 발사체 발사국에 진입했으며, 재사용 발사체(KSLV-III) 개발도 본격화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로켓을 쏘아 올릴 수 있다’는 상징을 넘어 장기적으로 발사비용 절감과 산업적 경쟁력 강화라는 중요한 기반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위성 분야에서도 SAR(합성개구레이더) 위성을 탑재한 아리랑 5호, 정지궤도 환경위성 천리안 2-B호 등은 우리나라가 광학, 레이더, 환경감시 등 다양한 위성기술을 확보했음을 보여준다. 이렇듯 세계 7위권으로 평가받는 우리나라의 종합 우주기술력은 미국, EU 등 주요 우주선진국에 비해 비교적 짧은 기간에 이룬 성과라는 점에서 그 잠재적 성장가능성은 더 주목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 같은 성취에도 불구하고 결정적 한계가 존재한다. 바로 기술은 확보했지만 서비스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기술은 축적되었지만 국민 생활과 산업 전반을 변화시키는 Downstream 서비스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사례를 보면 그 차이가 뚜렷하다. 미국은 NASA가 ‘Commercial Crew Program’과 ‘COTS(Commercial Orbital Transportation Services)’ 프로그램을 통해 민간 기업에 발사체 수송 및 운영 권한을 과감히 넘겨주었다. 이 제도적 혁신은 SpaceX와 같은 기업이 단순한 기술 하청을 넘어 독자적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토대가 되었다. 즉 정부는 기술을 직접 수행하는 대신 제도와 시장을 열어주는 역할을 맡고, 민간은 이를 활용해 실제 서비스를 구현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유럽 역시 Copernicus와 Galileo 데이터를 민간에 무료로 개방함으로써 새로운 혁신을 촉발했다. Copernicus는 지구관측 데이터를, Galileo는 위성항법 데이터를 누구나 활용할 수 있게 하여 농업, 물류, 환경 모니터링, 재난 대응 등 수많은 민간 스타트업이 데이터 기반 서비스를 만들도록 유도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위성 데이터 개방’이 단순한 투명성을 넘어 민간 산업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위성 데이터 개방이 제한적이다. 일부 데이터는 연구 목적으로 제공되지만, 민간이 상업적으로 활용하기에는 불충분하며 접근 절차도 복잡하다. 더 큰 문제는 민간 기업이 새로운 서비스 모델을 실증하고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발사체, 위성 등의 기술이 축적되더라도 이 성과가 시장으로 연결되지 못해 Downstream 시장이 형성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기술은 축적되지만, 경제적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강화해야 하는 우주정책의 우선순위는 분명하다.
첫째, 국제 인증 및 표준 체계와의 연계 강화다. FAA(미국연방항공청), EASA(유럽항공안전청), ISO(국제표준화기구), ITU(국제전기통신연합) 등 글로벌 인증 및 협력 체계와 협력하지 못한다면, 우리 기업은 국내에서 기술을 개발해도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어렵다. 이는 단순히 발사체 안전성 검증 문제를 넘어, 우주물류, 위성통신, 내비게이션 서비스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글로벌 시장 진입의 장벽이 된다.
둘째, 데이터 개방과 민간 활용 확대가 절실하다. 공공이 보유한 위성 데이터를 연구용에 한정하지 않고 민간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스타트업과 기업들이 실제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서비스 모델을 설계할 수 있다.
셋째, 서비스 실증과 시장 진입 등에 대한 지원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기술개발 지원에 집중했지만, 앞으로는 서비스 모델을 실증하고 글로벌 시장에까지 진출할 수 있는 전 주기적 지원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기술개발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제도적 혁신과 생태계 구축이다. 만약 제도와 생태계가 따라오지 못한다면, 우리는 기술 보유국이라는 성취에 머무르고 말 것이다. 반대로, 지금 과감히 제도적 전환을 이루고 민간이 중심이 되는 생태계를 조성한다면, 기술 보유국을 넘어 서비스 강국, 우주경제 선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우주개발의 다음 장은 단순히 더 높은 곳까지 로켓을 쏘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 로켓의 성취를 국민 경제와 생활 속에서 어떻게 서비스화 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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