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관련 입법에 부치는 기대와 우려
[기고] 김희경 공공미디어연구소 수석전문위원
[미디어스=김희경 칼럼] 지난 8월 5일 방송법 개정안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8월 1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하 과방위원장)이 ‘방송3법’ 대안을 본회의에 부의한 지 4일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해당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숙제처럼 인식됐던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등 이른바 방송3법에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추가되며 22대에선 ‘방송4법’ 개정안으로 통칭된 바 있다.
해당 법안들의 공통 목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언론으로서 방송의 독립이다. 공영방송이 정권에 따라 보도의 방향과 지침을 달리하지 않고 독립적인 언론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이사 수와 구성, 사장 추천 방식 등을 수정하고 보완한 것이다. 국회에서 이사진을 추천하고, 이사진이 사장을 추천, 대통령이 사장을 임명하는 구조에서 공영방송 보도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요동치는 구조적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법을 통과시킨 민주당은 만인을 만족시킬 수 있는 법은 존재하지 않지만 만인의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었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통과된 방송법을 비롯 방송3법 개정안이 만인의 불만을 최소화할 수 있는 법안이 되었는지는 재고의 여지가 있으며, 방송3법 개정안에 공들인 노력만큼 쇠퇴하는 미디어 시장에 대한 정책안을 국회가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우선 이사 추천 방식이다. 국회 몫을 40% 축소한 것은 이사 전원이 정치적 종속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기존 법에서 진일보한 것은 분명하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거부권이 행사된 방송3법은 국회 추천 몫이 30% 미만이었다는 점에서 후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양한 사회적 입장이 반영되도록 한다는 차원에서 이사 수를 확대했지만 시청자위원회와 학회, 변호사 단체가 사회적 입장을 반영하는 대표성을 띠는지는 미지수다. 이들 기관과 추천인의 방식도 규칙을 통해 객관화했지만 단체의 장과 위원장과의 친소 정도에 의해 이사 후보가 결정되는 일을 방지할 길이 없다.
성별, 연령, 지역별 기준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100인의 사장 추천은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갑론을박이 많다. 보다 공정한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조사기관이 나서야 하겠지만 조사기관을 선정하는 것부터 난맥상이다. 조사기관 역시 공정하지 않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공정하게 100인을 추천한다 하더라도 기존에 잘 알려졌거나 정치적 성향이 확실한 경우, 해당 후보가 추천이 되거나 혹은 비추천될 확률도 높다. 더욱이 기존 발의안과 달리 최종안에서는 사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조항이 빠졌으며, EBS의 임명권자 또한 대통령으로 바꾸지 않고 기존처럼 방통위원장으로 유지되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논란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는 어떠한가. 필자도 세미나를 통해 지적한 바와 같이 임명동의제의 시작점이자 발단이 되었던 SBS는 물론 사주의 영향력에 더 없이 취약한 지역민영방송과 종편이 제외된 것은 이번 개정안의 가장 큰 허점으로 지적된다. 지역MBC는 본사와 함께 추진해 오던 정책과 분리되는 결과가 초래됐다. 법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지켜지던 임명동의제가 안해도 되는 것으로 강제되었고, 허가제라는 높은 수준의 규제를 받는 방송사가 승인제라는 보다 낮은 보도채널보다 더 약한 규제를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법적 모순이 발생하게 되었다. YTN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졸속 처방이 빚은 참극이다.
방송3법만 그러한가. 방송3법 이후 언론개혁의 속도를 가하기 위해 지난 8월 14일 민주당은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하고 기존 방통위 재편을 추석 전에 끝낸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방통위와 방심위 조직 개편,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이 주요 의제가 되었다. 해당 개편안은 지난 7월 28일 민주당론으로 발의한 ‘시청각미디어통신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안’에서 구현되는데, 기존 ‘방통위설치법’을 대체하는 ‘시청각미디어통신위원회’를 정부 부처로 신설하고 방송, 통신, OTT, 디지털 플랫폼에 관한 규제와 진흥, 이용자 보호 기능을 일괄 수행하도록 하는 안이다. 이를 위해 현재 과기부 2차관에 배당된 유료방송과 홈쇼핑 업무를 가져오고, 주무 부처와 규제가 없는 OTT를 본격적인 규제의 틀 안에 가져온다는 방침이다.
분명히 규제와 진흥을 동시에 담당하는 정부 부처라고 했으나 왜 여전히 위원회의 이름을 가져오는지 의문이다. 합의제가 생명인 위원회에서 속도전이 생명인 진흥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진흥은 본디 가만히 놔두는 것에서 시작되고, 정량화되고 계량화된 평가를 하기 어려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밑 빠진 독에 물붓기 식’의 막대한 예산이 요구되지만 아직까지 예산을 어느 정도 규모로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결국 위원회라는 명칭을 통해 규제만을 시전하는 기존의 문제가 답습되는 건 아닌지 업계와 학자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규제는 정량화되고 계량되기 쉬운 척도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기관평가를 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최근 해당 제정안을 발의한 김현 의원이 관련 공공기관에 10년 치 연구과제 제출을 요구했다는 내용이 공공연하게 논란이 되면서 새로운 설치법이 진흥보다 규제에 힘을 싣는 건 아닌지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한편, ‘시청각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 제정안에서는 해당 기관 위원장을 국회 인사청문·탄핵소추 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방심위가 행정심판에서 여러 번 민간기구가 아니라 정부기관이라는 판결을 받았음에도 위원회와 학자들이 방심위를 독립 민간기구로 칭하는 것은 심의기관의 독립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이나 통신 모두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심의기구의 독립은 곧 모든 표현물의 독립을 의미한다. 류희림 전 위원장이 희대의 폭거를 행했다손 치더라도 제2의 류희림을 방지하기 위해 위원장을 인사청문이나 탄핵 심판의 대상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방송과 통신이 정치적인 목적의 희생양이 된다는 것을 허용하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미디어 거버넌스 조직 개편도 그렇다. 정부조직 개편안이 국정기획위원회에서도 마무리되지 못하고 '미디어혁신 범국민협의체'에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지만 최소한의 전문가가 모인 위원회에서도 마무리되지 못한 내용이 범국민 협의체에서 어떻게 결론지어질지 의문이다. 설치법에서 거론된 내용 외에 정부조직 개편과 관련된 논의는 전무하다. 어떤 기준으로 진흥과 규제의 대상 범위를 규정할 것인지, 진흥 예산은 기존 방송통신발전기금만 사용하는지 아니면 정보통신진흥기금까지 가져올 수 있는지, 진흥과 규제의 범위에 따라 하부 기관들은 어떻게 재편되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의는 전무하다.
미디어 관련 정부조직 개편은 향후 미디어 시장 재편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미디어 시장의 모든 플레이어가 넷플릭스에 명줄을 내걸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넷플릭스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이고, 이를 AI 플랫폼이 대체할 것이다. 누가 플랫폼의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미디어 시장은 재편되지만 그 주도권은 글로벌 시장을 이미 선점한 미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통상 압력은 비정상적인 트럼프 시대의 돌발적 변수가 아니라 상존하는 위험 요소가 될 것이다. 미디어 시장 전체를 조망하고 미시적인 정책과 제도를 수정하는 일은 결국 정부조직 개편으로 수렴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 국회는 언론개혁의 미명 하에 어떤 미디어 정책도 디테일하게 검토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언론개혁특별위원회는 말 그대로 언론개혁만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방송3법 개정과 설치법 제정안은 관련 전문가나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별도의 의견수렴 없이 형식적인 공청회 등의 절차를 통해 주먹구구식으로 처리되고 있다.
미디어 정책 개선이 정치권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이유는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가 입법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처리되고 있는 법안들이 민의를 반영했는지의 확인은 둘째로 치더라도 미디어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만 가지고 정치적인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속도전을 펼치는 현재의 상황은 정권이 바뀐 이후 또 다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미디어 업계는 향후 5년이 매우 중요하다. 뭐든지 할 수 있는 거대 여당이 속도전을 강행하더라도 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세부적인 사안을 놓치지 않길 바랄 뿐이다. 5년 후가 없는 언론 개혁이 아니라 50년을 바라보는 미디어 정책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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