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존재이유 묻게 하는 이진숙의 '개정 방송법' 비난
'경영진-종사자 동수 편성위 의무화' 문제삼아 '노조가 경영진' 주장… 편성위원, '방통위 규칙'으로 정해 재허가·승인 방송사를 제조업체에 비유, 경영권 침해 강변 공적 책무 부여받는 방송사 인·허가 제도 무시 노조가 프로그램 검열?…윤 정부 당시 제작 자율성 침해는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개정 방송법의 편성위원회 의무화를 비난하고 나섰다. 경영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이 방통위원장은 '노조 권력으로부터의 자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정부 당시 방송 제작 자율성 침해는 빈번했다. 정권 입맛에 맞는 공영방송 사장이 구성원들의 제작 자율성을 훼손, 정권 비판 프로그램을 결방·축소시키는 사태를 방지하자는 게 이번 편성위 의무화의 취지다. 또한 법 적용 대상 방송사는 단순 민간기업이 아니라 방통위의 재허가·승인을 통해 고도의 공적책무가 부여된다.
12일 오후 이 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방송법1. 편성위원회 편>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지난 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방송법에 대한 방통위원장의 반대 의견이다.
이 위원장은 "비유하자면 편성위는 사실상 노사의 '공동경영진'이다. 편성위 법제화로 노조는 단숨에 '경영진'으로 편입된다"며 "사장은 편성위의 '일원'으로 지위가 격화되면서 인사권을 포함한 그의 경영권도 축소된다"고 주장했다.
공포를 앞둔 개정 방송법은 지상파·종편·보도전문채널 방송사업자가 10명의 위원으로 편성위를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편성위를 구성하지 않은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도록 했다. 편성위는 ▲편성규약 제·개정 ▲방송사 편성규약 준수 사항 ▲취재·보도·제작·편성 자율성 보장 사항 ▲시청자위원회 위원 추천 사항 ▲그밖에 편성규약에서 정하는 사항을 심의·의결한다.
10명의 편성위원은 ▲방송사업자가 구성원 중 추천하는 사람 5명 ▲취재·보도·제작·편성 부문 종사자 대표가 추천하는 사람 5명으로 구성된다. 각 부문 종사자의 범위와 종사자 대표의 자격요건은 '방통위 규칙'으로 정해진다.
이 위원장은 "공영방송이라고 불리는 대부분의 방송사에서는 대표 교섭 노조가 민노총 산하 언론노조이다.(중략)그런데 이 편성위를 앞으로 전 방송사에 설치해야 한다"며 "소위 공영방송사에 설치하는 것도 무리라는 생각이 드는데, 민영방송사까지 편성위를 설치하도록 하여 경영권의 상당 부분을 노조에 내줘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한 마디로, 방송법은 편성위라는 무소불위의 위원회를 만들어 이전의 경영진을 무력화시키는 대신 노조 대표를 단숨에 사실상의 경영진으로 승격·편입시키도록 만들었다"며 "노사가 프로그램에 대해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면 협동조합식으로 각자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가겠지만 노사동일체로 운영되는 일부 회사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소모적인 부작용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노조가 경영진으로 편입된다'는 이 위원장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노사 동수 편성위'라는 말은 사측과 종사자측 인원이 동수라는 의미로 '노조'가 편성위원 구성에 관여하게 되는지 여부는 방통위 규칙에 달려있다.
더구나 현재 3개의 노조가 존재하는 KBS의 경우 종사자 대표성을 부여할 수 있는 교섭대표 노조가 없다. TV조선의 경우에는 노조가 없다. KBS·TV조선 외 다른 지상파·종편의 편성위원 선출 기준은 제각각이다. 방통위가 마련할 종사자측 편성위원 기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또 이 위원장은 "대한민국에서 방송국은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송출하는 곳이며, 그래서 완성된 프로그램을 '완제품'이라고 한다"며 "방송사도 말하자면 제조업체인 셈"이라고 했다. '기업'인 방송사의 경영권에 노동자가 왜 개입하냐는 얘기다.
하지만 지상파·종편·보도전문채널 방송사업자는 방송법과 방통위설치법에 의거한 인·허가 사업자로, 일반적인 민간기업이나 제조업체가 아니다. 국가로부터 주파수라는 공공재를 제공받아 사업을 영위하거나 제도적 특혜를 받고 여론영향력을 키운 방송사들에게 고도의 공적 책무를 부여하고 관리·감독하는 게 방통위의 존재 이유다.
이 위원장은 "편성책임자는 프로그램에 관한 운명을 결정하는 사람이며 동시에 방송사의 운명을 결정하는 사람"이라며 "그런데 앞으로는 각 방송사의 편성책임자는 사장이 아니라 사실상 편성위에 의해 임명된다고 할 수 있다. 방송3법의 핵심은 편성위이며 노사 동수로 구성되는 편성위가 방송사 프로그램에 대해 전권에 가까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도록 법제화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위원장은 "사장이 가지는 주요 권한이 인사권과 예산권인데, 가장 중요한 인사권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것이 편성위 노측 대표, 즉 노조가 되는 것"이라며 "편성위는 사실상 각 방송사의 경영진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특정 시사프로그램이 편성위 노측 대표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제동이 걸려 방송되지 못할 수도 있다"며 "특정 진행자가 노측 대표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진행자가 교체될 수도 있다. 그동안 각 부문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지던 일들이 편성위의 스크리닝(검토/검열?)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노사 동수 대표가 '공동경영'을 하도록 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정상인 것인가"라며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는다라는 워싱턴포스트의 슬로건이 떠오른다. 언론이 정치 권력, 자본 권력에서 자유스러워야 한다면 노동 권력으로부터도 자유스러워야 한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프로그램 결방·검열, 진행자 교체 사태가 사측에 의해 벌어졌다. 박민 전 사장 체제에서 KBS는 ▲주요 뉴스·시사프로그램 진행자 물갈이 ▲'주진우 라이브' '더 라이브' 폐지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 불방 ▲'역사저널 그날' 진행자 교체 외압 ▲'조그마한 파우치' 발언 ▲윤석열 정부 세일즈외교 홍보 다큐 편성 ▲이승만 미화 다큐 '기적의 시작' 편성 ▲광복절 기미가요 방송 파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박장범 사장 체제 KBS는 ▲'추적 60분-계엄의 기원' 편성 삭제 ▲'시사기획 창-대통령과 우두머리 혐의' 검열 ▲'시사기획 창-군:항명과 복종' 제작정보 유출 논란을 일으켰다.
윤석열 정부에서 한국은 2년 연속으로 언론자유 환경에 '문제 있는' 국가가 됐다. 국경없는기자회(RSF)가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2023년 47위, 2024년 62위, 2025년 61위를 기록했다. 올해 RSF는 "한국의 언론 매체들은 정치인, 정부 관료, 대기업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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