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M&A 통한 자본시장 선진화, 이제는 국가적 과제다
[기고] 자본시장 고도화를 위한 구조 개혁의 절박성
[미디어스=권오석 칼럼] 최근 자본시장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대주주 양도소득세 기준을 10억 원으로 하향’하는 문제를 두고 불거진 논쟁은 우리 사회가 자본시장에 대해 여전히 협소한 시각에 머물러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단순히 ‘부자 감세’ 혹은 ‘부자 증세’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혀, 자본시장 고도화라는 본질적 논점을 도외시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는 다음 두 가지에 있다. 첫째, 기업의 유보이익이 배당을 통해 국민소득으로 환류되는 선순환 구조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둘째,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통한 시장 감시 및 경영 혁신 기능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현재의 제도는 대주주 중심의 지배구조를 견고히 보호하고 있을 뿐,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효율성 제고에는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한계
우리 자본시장은 ‘저평가·비효율·불투명’이라는 3중 구조적 한계에 빠져 있다. 코스피 상장사 다수는 순자산가치(NAV) 대비 시가총액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심각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겪고 있다. 이는 기업들이 과도한 내부 유보금에도 불구하고 배당은 인색하며, 경영권 방어 수단은 과도하게 촘촘히 보호돼 있어 외부 투자자의 감시 기능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적대적 M&A는 제도적으로 원천 차단돼 있으며, 대주주는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 경영권을 공고히 하는 반면 주주는 실질적인 보상을 받지 못한다. 경영에 실패하더라도 경영권은 안전하게 보장되는 이 기형적 구조는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의 국제적 기준
선진 자본시장과 비교해도 한국의 배당정책은 후진적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미국, 영국, 일본 등은 평균 배당성향이 45~60%에 이르고 자사주 매입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한국은 배당성향이 약 22%에 그치며 자사주 매입 역시 제한적이다. 이는 국민의 금융자산이 생활비로 활용되는 구조를 저해하고, 가계소득의 자본시장 유입을 어렵게 만든다. 한국에서 부동산이 유일한 자산증식 수단으로 여겨지는 배경에는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 부족과 금융소득의 편중된 과세체계가 자리 잡고 있다.
제도개혁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
지금 필요한 것은 일회성 규제 완화가 아니라, 구조적 제도 개혁이다. 자본시장법 제147조의 ‘3% 룰’은 5% 이상으로 조정하거나 공시 유예제 도입을 통해 경영권 감시 기능을 복원해야 한다. 또한 자사주의 의결권은 제한하고 일정 기간 내 소각을 의무화하며, 포이즌필 등 방어장치는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통해 제한적으로만 인정되어야 한다. 나아가 ROE(자기자본이익률)가 일정 수준을 상회하는 기업에는 최소 30% 이상의 배당을 의무화하는 제도 도입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유보금이 배당으로 환원되면, 가계의 현금흐름 증가 → 소비 여력 확대 → 세수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이는 단순한 자본시장 활성화를 넘어 국민 경제의 총체적 효율성 제고로 연결된다.
세제개혁과 금융소득 인프라 확장
또한, 금융자산의 활용도를 제고하기 위해 부동산 중심의 세제 혜택을 조정하고, 금융소득 분리과세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 장기주식 보유자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는 국민의 투자 행태를 실물자산 중심에서 '금융자산' 중심으로 전환시키는 실질적 유인책이 될 수 있다. 이는 노후 소득 확보와 자산 포트폴리오의 균형화라는 차원에서도 정책적으로 중요하다.
외국인 자본 유치와 서학개미 유턴 전략
투명한 배당정책과 합리적 지배구조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필수적 고려 요소이다. 적대적 M&A의 제한은 외국인 직접투자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서학개미’로 대표되는 국내 투자자금은 여전히 해외시장에 머물러 있다. 국내 자본시장에 투자할 유인이 미흡한 구조에서는 해외자금 유턴도 기대할 수 없다.
배당과 M&A는 ‘국민소득 증대의 지름길’
자본시장의 신뢰와 효율성은 더 이상 투자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는 국민 자산구조의 개선, 노후소득 보장, 소비여력 확대, 국가 세수 증대 등 거시경제 전반에 파급효과를 가지는 핵심적 요소다. 배당과 M&A는 이러한 경제 구조 개선을 실현하는 주요 수단이며, 이는 곧 ‘국가 경쟁력 제고’의 문제로 직결된다.
국회와 정부는 이제 자본시장에 대한 편견과 정치적 계산을 넘어, 구조적 개혁을 통한 신뢰 회복과 국제 경쟁력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입법은 결국 국민 모두의 손해로 귀결될 것이다. 자본시장의 선진화는 선택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진짜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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