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3법 선택적 임명동의제에 속터지는 지역방송 기자들
[토론회]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왜 필요한가 지역MBC·민영·지역중소 방송사 적용대상 제외 지역민방, 대주주 신제품·행사·활동 홍보 보도 "사주에 저항하는 기자, 간부 인사 배제…공정성 지켜지나" "자본권력 입김 끊어낼 수 있는 장치가 언론개혁 핵심"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사주의 부당한 간섭에 저항하고 떳떳한 기사를 쓰겠다는 선배들이 보직 간부 인사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회사 이익에 반하는 기자는 보도국을 책임질 사람이 아니라는 판단인데,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이런 그릇된 인식이 일반화되고 있다. 무섭다." -박영훈 전국언론노동조합 TBC지부장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를 통과한 방송3법에 대해 자본권력의 개입을 제어할 장치가 부재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번 방송3법 개정에서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가 공영방송과 보도전문채널 5곳에만 적용돼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전문가들과 방송현업 노동자들은 권력의 보도·제작 개입에 가장 취약한 방송사는 민영방송이라며 공정방송 실현을 위해 보도기능이 있는 모든 방송사에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를 법제화할 것을 촉구했다.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훈기·이정헌 의원 주최로 <방송3법 그 이후 :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왜 필요한가?>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방송3법은 오는 8월 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8월 4일 국회 본회의 처리가 확실시된다. 지난 7일 국회 과방위를 통과한 방송3법은 '한국방송공사, 방송문화진흥회가 최다출자자인 방송사업자, 한국교육방송공사, 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에 대해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를 도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적용 대상은 KBS·MBC·EBS·YTN·연합뉴스TV 5개 방송사다.
SBS, 지역MBC, 지역민방, 종합편성채널은 적용되지 않는다. 공영·민영, 재허가·재승인 기준으로 일관성을 찾기 어렵다. 민영방송·재승인 대상인 YTN은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적용 대상이다. 민영방송·재승인 대상인 종편은 적용되지 않는다. 공영방송·재허가 대상인 MBC는 적용 대상이다. 하지만 공영방송·재허가 대상인 지역MBC는 제도 적용 대상이 아니다. 민영방송·재허가 대상인 SBS·지역민방 역시 적용 대상이 아니다.
민영방송사업자들은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가 민간기업의 경영권(인사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토론회 사회를 맡은 최영묵 성공회대 미디어콘텐츠융합학부 교수는 "민영방송의 사적 영역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는 말이 안 된다는 논리를 펴 왔다"면서 "방송에 대해 늘 얘기해 온 것은 전파의 공공성, 라이선스(허가·승인), 영향력"이라고 말했다. 공공재인 전파를 이용해 정부로부터 허가·승인을 받는 방송산업의 특수성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최 교수는 "민영·공영은 재원 외에는 별 차이가 없는데, 지상파를 놓고 볼 때 정부 규제가 없다는 것은 정부가 책임을 안 지겠다는 의미다. '지역민방은 그냥 알아서 살아라' '공적역할 하려면 하고 하기 싫으면 말아라' 하면 다 망할 것"이라며 "우리 지역·민영방송의 정체성을 새로 확인하고 이후 어떤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면서 사회적 책무를 다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김소형 민주당 방송·콘텐츠특위 미디어공공성분과장(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초빙교수)은 "민영방송 소유주에 의한 방송 사유화 행태를 방지하고 방송 편성과 제작 자율성 침해를 방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의 법제화가 필요하다"며 "최소한 보도부문의 책임자 임명 시 구성원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임명동의제는 대주주의 언론 간섭을 견제함으로써 보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하도록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라고 했다.
김 분과장은 SBS, KBS, YTN에서 노사 단체협약에 따라 제도화된 임명동의제·방송편성규약이 후퇴·훼손된 사례를 거론하며 "무단협 사태가 발생하고 사측이 임명동의제를 폐기하려 할 때 이를 실질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법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분과장은 "방송 보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강화하기 위해서는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가 의무화될 필요가 있다"며 "법적 형평성 측면에서도 그 적용 대상은 보도 기능을 하는 민영·지역 방송과 종편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김희경 민주당 방송·콘텐츠특위 지역·중소방송활성화분과장(공공미디어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현재 지역방송에 다양한 형태의 보도책임자 평가제도가 수립되어 있지만 법적 강제력 부재로 실효성이 낮아 사주의 전횡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 분과장은 지역방송에서 ▲보도·편성·기술국장 임면동의제(CJB) ▲보도·편성책임자 상항평가제(KNN·TBC·KBC·UBC·JIBS) ▲보도·편성책임자 중간평가제(JTV·G1) 등이 운영되고 있다면서도 "지역 민방 사주는 지역 정치권, 건설자본, 지자체 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비판보도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다수 발생한다. 지역환경감시 기능보다 대주주 관련 취재를 우선순위로 하는 사례도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했다.
김 분과장은 "지역민방의 대주주 보도는 대주주 개인과 계열사의 단순 홍보나 이해관계 반영을 넘어 계열사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대한 홍보는 물론 경쟁사에 대한 과감한 비방보도도 서슴지 않는다"며 "대주주의 방송 개입으로 이어지며 방송편성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했다.
김 분과장이 2017년 1월~2021년 8월까지 5년 8개월 동안 9개 지역민방 보도를 전수조사한 결과, KNN·TBC·KBC·CJB·G1·JIBS 등에서 대주주 보도가 다수 발견됐다. KNN은 넥센타이어의 신제품·실적·행사·사주활동을 보도했고, TBC는 귀뚜라미그룹 사주활동을 보도했다. KBC는 호반그룹의 실적·사주활동 보도와 검찰수사 반박 보도를 했다. CJB는 모기업 아파트 분양 홍보 보도를, G1은 SG건설 아파트 광고 보도를, JIBS는 대주주 사업체 홍보 보도를 했다.
김 분과장은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의 법제화는 방송 공공성과 독립성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다. 단순한 법안 적용 범위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민주주의와 언론 다양성의 핵심으로 인식되어야 한다"며 "과방위는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를 민영방송·지역중소방송으로 확대하는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김 분과장은 이밖에 ▲'임명동의제'를 '임면동의제'로 개정할 것 ▲재허가·재승인 과정에 임명동의제·편성위원회·편성규약에 대한 평가와 가·감점을 부여할 것 ▲각 방송사 편성권 침해 논란 사례보고서를 발간할 것을 제안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언론현업 종사자들은 사측의 입김에서 보도·제작 자율성을 담보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기호 언론노조 SBS본부장은 "SBS는 2017년 보도·제작·편성 부문에 사장까지 임명동의제를 통해 뽑는 방안을 마련했다. 노사 간 평화와 공존의 시기에는 잘 지켜졌다"며 "2021년 4월 갑자기 회사가 일방적으로 단체협약을 해지해버렸고 그 안에 들어있는 임명동의제도 사려져버렸다. 당시 노조위원장이 대주주 보도 개입 사례로 고소·고발을 이어가자 회사는 '더 이상 (단협을)할 수 없다'고 해버렸다"고 말했다.
조 본부장은 "갈등과 반목의 시기에는 (단협을 통한)임명동의제는 종잇장이다. 회사가 언제든지 파기할 수 있다"며 "모든 방송사는 민영병원이냐 공영병원이냐 태어난 곳이 다를 뿐, 공공성을 지닌 공정보도를 하는 게 임무인 곳이다. 민영방송에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법제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조 본부장은 "임명동의제는 기자들 밥그릇을 위한 것이 아니다. 시청자·청취자를 위한 것"이라며 "이념갈등에서 벗어나 공정방송, 공정보도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훈 언론노조 TBC지부장은 대주주의 방송 간섭과 지역민방의 생존위기가 맞물려 일선 기자들이 양심을 지켜나가기 어려운 환경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박 지부장은 "지역민방 공정성을 흔드는 트리거는 '돈'이다. 기존 광고수익만으로는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수익우선주의가 팽배해 있다"며 "협찬 행사 보도가 전파를 타기까지 최소한의 게이트키핑도 없다. 그래도 양심 있는 기자는 '리포트가 아니라 단신으로 처리하겠다', 하루하루 그런 고민이 있다"고 했다.
박 지부장은 "이런 상황에서 지역민방의 최소한의 보도 독립성을 담보하는 일선 참모 자리가 보도책임자이다. 어떤 분들이 보도국장으로 임명될까"라며 "후배들과 호흡하며 사주의 부당한 간섭에 저항하는, 떳떳한 기사만 쓰겠다는 선배들이 보직 간부 인사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회사 이익에 반하는 기자는 보도국을 책임질 사람이 아니라는 게 회사의 판단"이라고 했다. 박 지부장은 "구성원들 사이에서 이런 그릇된 인식이 보편일반화되고 있다. 무섭다"며 "간부가 될 것인가 현장기자가 될 것인가, 회사 말 잘 들을 것인가 끝까지 양심을 지키고 기사를 쓸 것인가, 고민하는 기자들이 있다"고 했다.
박 지부장은 "방송3법은 뉴스공급자 측면에서 잣대를 잡아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대구경북의 경우 TBC 시청률이 서울 메이저 언론사 메인뉴스보다 더 높을 때가 많다"며 "지역민의 삶과 연결되는 보도, 지자체의 주요정책과 지역 경제·사건사고 뉴스를 한다. 공영방송이냐 아니냐는 기준은 뉴스 공급자의 시각이지 정작 오늘 TBC '8뉴스'를 본 시청자들 입장은 (방송3법 논의에서)감안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윤범기 언론노조 MBN지부장은 "방송3법, 방송4법이 언론개혁의 모든 것일 수는 없다. KBS·MBC·EBS·방통위 운영에 관한 법리"라며 "누가 사장으로 와도 기자들과 구성원들이 부당한 지시가 내려오면 이에 저항할 수 있는 민주적 제도를 만드는 게 언론개혁의 핵심"이라고 했다.
MBN은 노사 단체협약을 통해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를 시행하고 있다. 윤 지부장은 "기자 뒤에 데스크, 데스크 뒤에 경영진, 경영진 뒤에 광고주가 있다. 광고주의 압력이 기자에게까지 다가오는 구조"라며 "이 압력을 중간에서 커팅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게 민주적 견제장치"라고 했다. 윤 지부장은 "왜 건설사가 언론사를 사들이고 있겠나. 당연히 자기 사업할 때 홍보게시판으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걸 견제하는 장치가 없으면 한국 언론은 그 방향(사주·광고주)으로 쭉 가게 된다. 그동안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는 게 언론개혁의 핵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자본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제도화가 중요할 것"이라고 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방송3법의 입법 절차와 내용에 모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7월 1일 처음 이 법안이 공개됐다. 여러분이 지적하는 이런 합리적 문제제기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바로 법안심사소위에서 처리돼 일주일 만에 상임위를 통과했다"며 "방송개혁에 찬성하는 진영에서조차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을 주도하는 분들은 법안공개 이후 '더 이상의 논의는 없다' 논의의 문을 닫아버렸다. 이런 입법 절차를 과연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더구나 지금 제기되는 문제(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는 선후 형평성의 문제가 아니라 법률 체계상 모든 방송사업자 적용 여부를 동시에 논의해 처리해야 하는 사항"이라며 "보도전문채널의 경우 법 시행 후 3개월 부칙조항(3개월 이내에 임명동의제를 시행해 보도책임자를 선임)이 있는데, 법에 따라 인사교체가 이뤄져 소송이 제기되면 차별적 규제가 문제의 소지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갖고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현행 방송법을 개정하는 방식의 입법논의가 아니라 미디어법 체계 전반을 사회적 협의를 통해 마련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지상파·지역방송이 공적 책무를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 다른 제도적 기반들을 충분히 세우고, 그것에 조응하는 제작자율성 방안을 찾는 것이 맞는 논의의 방식"이라며 "현재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낡은 법을 그대로 두고 법적의무를 하나 더 쌓는다고 해서 지상파·지역방송이 직면한 본질적 위기를 해소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이제부터라도 논의의 규모와 범위를 더 확대해서 방송의 공공성과 산업의 위기를 함께 극복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만드는 것이 더욱 시급하다"며 "민주적 입법 절차와 사회적 논의의 로드맵을 만드는 데 지금 우리의 힘을 모으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훨씬 신속하게 성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이라고 했다.
OBS 기자 출신인 이훈기 의원은 "저도 현업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임명동의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방송3법은 공영방송 논의에 집중되어 있어 다른 논의를 하지 못했다"며 "빨리 방송3법이 처리되고 이후 여러 논의를 해야한 다고 생각한다.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는 방송3법이 (국회 본회의를)통과하면 제가 대표발의를 할 것이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JTV·중앙일보·JTBC 기자 출신인 이정헌 의원은 "저와 이훈기 의원은 여러분이 미흡하다고 생각하는 방송3법의 문제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방송3법이 과방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할 때에도 분명하게 (문제점을)말했다"며 "재개정을 통해 보도기능을 가진 모든 방송사의 보도책임자뿐만 아니라 제작·편성책임자까지 임명동의제를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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