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KBS의 정치적 독립, 결국엔 구성원 의지에 달려"
[이영광의 ‘언론을 묻는다’] 김의철 전 KBS 사장 “공영방송 KBS는 민주주의 지키는 핵심 공론장 역할 해야”
[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지난달 21일 이재명 대통령이 김의철 전 KBS 사장 해임처분 취소 소송 항소를 취하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해임·해촉한 남영진 전 KBS 이사장과 김유진 전 방송통신심의위원과의 법적 분쟁을 종결했다. 남 전 이사장과 김 전 사장 해임은 윤석열 정부 KBS 장악의 시작과 끝으로 평가된다.
지난 1월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는 김 전 사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해임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판결했다.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의 항소 취하에 따라 1심 법원의 '해임 무효' 선고가 확정됐다. 김의철 전 KBS 사장의 소회를 들어보고자 지난 24일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김 전 사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해임처분 취소 소송이 2년여 만에 종결됐습니다. 지난 1월 1심 판결이 나왔을 때와 또 다른 심경일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2023년 9월 해임 때부터 재판에서 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난 1월 실제로 1심에서 이기니까 큰 고비는 넘겼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항소를 했잖아요. 마침내 정권이 바뀌고 이재명 정부에서 항소를 취하하니까 기나긴 굴레에서 벗어나왔다는 생각에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어요.
해임 이후 KBS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잘 아실 겁니다. ‘윤 대통령 술친구’ 낙하산 인사라고 불리는 박민 사장이 취임 첫날 반발에도 불구하고 사과방송을 시작으로 땡윤방송 논란, 세월호 다큐 불방, 광복절 기미가요 방송 사태 등 엄청난 일들이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KBS는 신뢰를 잃고 국민들에게서 멀어졌습니다.
그동안 KBS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가더라고요. 해임 당시 재판부가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서 제가 계속 사장으로 일했더라면, 보도·제작·편성의 자율성이 보장돼서 이 정도까지는 망가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여러 가지로 아쉽고 안타까웠습니다.”
항소 취하의 의미는 뭘까요?
“윤석열 정부가 방송장악 과정의 하나로서 가장 큰 공영방송 KBS 사장을 해임했던 거잖아요. 그래서 새로 탄생한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하나하나 바로잡아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앞서 남영진 전 KBS 이사장에 대한 해임무효 소송에서 상고를 포기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봐요. 이재명 정부는 앞으로 이런 일들은 하지 않을 것이고 공영방송의 독립성, 공정성을 보장해야겠다 이런 스스로의 다짐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사례가 반복돼왔는데 다시 정권 교체됐을 때 똑같이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제도적인 장치 마련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권력이 들어서든 공영방송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한 거죠.”
대법원 확정판결과 항소 취하로 1심 판결이 확정되는 건 차이가 있을까요?
“대법원 확정판결이나 항소 취하나 법률적으로는 다르지 않은데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은 있어요. 1심에서 저에 대한 6가지 해임 사유 모두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손을 들어줬지만, 절차적으로는 특별히 문제가 없었다고 판결했어요. 저는 만약 항소심이 이루어지면 절차까지도 문제가 있었다는 판결이 나오길 기대했습니다.
예를 들면 남영진 이사장 해임이 무효가 됐잖아요. 저를 해임시키기 위해서 먼저 남영진 이사장과 윤석년 이사를 강제로 해임했죠. 윤석년 이사는 계류 중이지만 남영진 이사장 부분은 해임 무효 판결이 났습니다. 그러니까 절차적으로도 명백히 잘못한 거예요. 때문에 항소심 진행 과정에서 그런 내용을 보강해서 절차상의 문제도 있다는 걸 입증해 보고 싶었는데 그 부분을 입증할 기회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아쉽기는 해요.”
윤석열 정부에서 KBS 사장 1년 넘게 했는데 어땠나요?
“사장 지원 과정에서 제가 시민자문단 발표 때나 경영계획서에 가장 강조해서 썼던 게 KBS의 독립성 문제입니다. 취임 당시가 대통령 선거 국면이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누가 정권을 잡든 KBS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사장 취임식 때 당시 평가에 참여한 시민자문단을 초청해 ‘KBS 독립선언’을 발표하기도 했어요. 대국민 약속인 거죠.
취임 이후 5개월 만에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지만 저의 의지는 추호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윤석열 정부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였겠죠. 당시 집권당은 KBS 보도에 공정성 문제가 있다고 틈만 나면 외곽단체를 동원해 공격해왔는데 꿋꿋이 버텼어요. 그리고 감사원 등 모든 권력기관을 동원했지만 쫓아낼 만한 비리가 안 나오니까 결국은 수신료 분리징수라는 카드를 꺼내들어 구성원들을 흔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윤석열 정부의 KBS 사장으로서 일했던 과정을 개인적으로 규정하면 공영방송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직접적인 압박도 있었나요?
“시민단체의 성명서, 기자회견 통해서 ‘김의철 물러가라’나 ‘KBS 사장 사퇴하라’란 얘기들을 굉장히 많이 했지만, 정부 관계자든 국민의힘 관계자든 직접적으로 ‘당신 물러나라’라고 연락한 경우는 없었어요. 다만 일부 정치 세력들이 제가 사는 집 주변에 저의 퇴진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수개월 동안 잔뜩 걸어 놓는 바람에 가족들과 동네 주민들에게 미안하기는 했죠.”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항소 취하가 KBS 상황에 영향 있을까요?
“이 문제는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해요. 영향이 없을 수 없겠죠. 왜냐하면 남영진 이사장과 저의 해임이 무효라고 판결이 났잖아요. 때문에 박민 사장이나 그 이후에 박장범 사장 체제 출범은 정당성을 상실하게 됐습니다. 그분들 취임 이후 KBS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일들은 너무나 잘 아실테고요. 최근 방송법 개정 움직임이 있는데 그런 상황과 맞물려서 남 전 이사장과 저에 대한 해임 무효가 KBS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어요.”
박장범 사장은 사장님 임기 종료 이후 임명됐으니 본인은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물론 형식적인 논리로는 그렇게 볼 수 있죠. 그런데 정당성 관련해서 말씀드리는 거잖아요. 박민 사장 같은 경우는 저를 부당 해임시키고 나서 보궐로 저의 잔여 임기를 채웠고, 박장범 사장은 그 이후 임기를 시작했는데 그게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도 있어요. 박장범 사장이 박민 사장 시절에 여러 가지 논란을 일으켰는데 상징적으로 나오는 게 이른바 파우치 대담이죠. 그 대담은 KBS 신뢰를 훼손한 상징적인 언어가 돼버렸습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전혀 영향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지금의 KBS를 어떻게 보고 있나요?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나 언론진흥재단 등 수십 년 동안 조사하고 있는 기관에서 발표한 지표가 있잖아요. 제가 부당하게 해임된 이후 KBS의 신뢰도, 공정성, 영향력 같은 부분에서 계속 지수가 낮아져서 전직 사장으로서 매우 안타깝게 보고 있죠.”
7일 방송3법이 국회 과방위를 통과했는데 이 과정은 어떻게 보셨어요?
“방송법의 목표 자체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이잖아요. 이번 개정안에 사장 선임 절차라든지 이사회 추천 방식,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편성위원회 설치 등 상당히 진전된 내용이 많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과정에서 여러 가지 논란이 있는 것은 잘 알고 있고, 개인적으로도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큰 틀에서 한 발 진전된 법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송3법이 통과되면 그에 따라서 KBS 이사회 구성, 또 사장 선임이 진행될 것 같아요. 그런 부분을 감안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 긍정적이지 않나 생각하고 있어요.”
방송3법으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이 가능할까요?
“저는 제도가 정치적 독립을 보장해 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예를 들면 민주적인 정부가 들어섰을 때 같은 제도를 운용했지만 당시 KBS는 압도적으로 국민들 신뢰를 받았어요. 그런데 권위주의 정부에서는 같은 제도로 이사와 사장 뽑았으나 신뢰도와 영향력이 굉장히 하락돼서 공영방송이 흔들리면서 민주주의 위기를 가져왔죠. 즉 제도는 공영방송 정치적 독립의 초석이 되지만 결국은 운용하는 사람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또 내부적으로는 공영방송 구성원들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공영방송 구성원들은 정치 권력이나 자본 권력의 간섭을 배제하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하고, 그런 압력 같은 게 들어왔을 때 집단 지성을 발휘해서 극복해내야 합니다.”
기존 법에는 이사회 구성할 때 국회 추천 몫이 없었는데 개정안에는 들어갔잖아요. 그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게 정치적 후견주의로 뭉뚱그려서 비판받는 지점이에요. 비판하신 분들은 ‘지금까지 이른바 KBS 같은 경우 7 대 4로 선임되었지만, 법에는 없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이번에 국회 추천 비율을 넣으면서 오히려 후퇴했다’란 얘기를 하시는 분도 계셔요. 그렇게 했을 때 형식 논리상의 반박할 여지는 다르고요.
결국 ‘추천권’의 문제인데 그건 백가쟁명이에요. 국회도 선출된 권력으로 대의제 기관이잖아요. 그래서 어느 정도 일정한 비율을 가져가는 것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걱정되는 여러 지점들이 있는데 그런 이슈들은 법안을 적용해 나가면서 구성원들이나 관련 당사자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KBS 사장 출신이니 말씀드리자면 KBS는 정말 중요한 대한민국 대표 공영 미디어입니다. KBS는 수십 년 영욕의 세월을 겪으면서 사회적 제도의 일부가 됐다고 생각해요. 공영방송 KBS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핵심 공론장 역할을 해야 합니다. KBS가 잘하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또한 KBS는 대한민국 문화 정체성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글로벌 시대가 강조되는 지금, 외국에 나가보면 KBS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느낄 수 있어요.
주권자인 시청자들이 그동안 KBS가 보인 행태에 대해 많이 실망하셨겠지만 미우나 고우나 공영방송의 맏형입니다. 그러니 국민들께서도 KBS 정상화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구성원들을 많이 응원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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