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독립·균형 외교의 시대로
[기고] 대한민국, 능동적 외교국가로 도약해야 할 때
[미디어스 =오춘성 칼럼] 세계 질서가 대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 미중 간의 기술 패권 경쟁, 유럽의 안보 재정비, 러시아와 동남아 간의 공급망 재편 전략 등 글로벌 질서는 빠르게 재편 중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대한민국은 더 이상 단순한 수용자나 변방국이 아니다. 지정학적·산업적 중심축으로 부상하며, 전략적 조정자이자 협력의 허브 국가로서의 역할이 요청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대외 의존도가 여전히 높고, 일부 외교 현안에서는 자율성과 협상력이 제한되고 있다. 때로는 동맹을 이유로 과도한 양보를 요구받고, 때로는 전략적 모호성 속에서 외교적 균형을 놓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자주적 사고’와 ‘기술 주권’, ‘외교 균형’을 축으로 새로운 외교 패러다임을 수립해야 할 시점이다.
외교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면, 먼저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해야 한다. 미국은 공급망 재편의 핵심 파트너로서 한국의 기술력과 자본력을 활용하려 하지만, 일부 협정은 사전 협의 부족과 불균형 분담 구조로 비판받고 있다. 중국은 문화·경제적 교류에는 적극적이지만, 안보와 기술 주권 문제에서는 날 선 입장을 고수한다. 일본과는 여전히 과거사와 기술경쟁 구도가 병존하고 있으며, 러시아와는 에너지 협력 가능성이 존재하나 국제 제재 환경의 장벽이 높다. EU는 디지털 윤리와 탄소 중립, AI 규범 형성에서 공동의 규범 파트너로서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이런 복합적 외교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이 택해야 할 방향은 ‘진영을 넘어선 실용주의 외교’, 곧 ‘중용의 외교전략’이다. 이는 감정이나 이념이 아닌, 원칙과 실리를 바탕으로 한 균형 외교다. 한미 동맹은 존중하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자율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중국과는 경제 협력의 틀을 확대하되 기술과 안보에서는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유럽연합과는 디지털 및 윤리 규범에서 공동 협치 체계를 구축하고, 글로벌 남방권 국가들과는 상호호혜적 투자와 공급망 모델을 설계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이미 이러한 외교 전략을 뒷받침할 ‘전략적 협상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1위의 메모리 반도체, 조선 기술, 2차전지 생산 인프라, 독자적 방산 기술력과 K-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소프트파워는 우리 외교의 든든한 배경이다. 여기에 고학력 디지털 인재 풀, 지정학적 요충지로서의 가치, 국산화 확대 가능성은 향후 협상의 레버리지를 제공한다.
이러한 전략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선 국회도 더는 방관자가 되어선 안 된다. 국회는 헌법상 국민 주권을 위임받은 기관으로서 외교에 있어도 공동 주체로 기능해야 한다. 외교특위를 통한 사전 협정 심사, 국산 기술 채택에 대한 세제 감면 입법, 국제 의원 외교단을 통한 다자외교 활성화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다.
더 나아가 산업주권, 국방 자립, 규범 주도, 문화외교 등 전방위적 실행전략이 요구된다. 국산화율 목표를 높이고, K-방산의 부가가치를 높이며, K-민주주의와 K-교육을 세계로 확산시키는 문화 외교는 모두 미래의 자주적 국가로 나아가는 초석이 된다.
대한민국 외교는 이제 수동적 모델에서 벗어나야 한다. 강대국에 기대는 과거의 외교 패턴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외교는 더 이상 ‘강자의 의지에 휘둘리는 장’이 아니라, ‘지혜로운 중견국이 질서를 설계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협력의 중심이자, 균형의 설계자로 자리매김할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자주국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자율과 협력, 균형과 존중. 이것이 대한민국 외교의 새로운 시대정신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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