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번역' AI서비스에 번역가들 반발…“번역의 섬세함은 인간 몫”
영국 AI번역 회사 '글로브스크라이브' 소설 1권 번역 비용 100달러…24시간 내 결과물 수령 "AI가 인간 번역의 섬세함 능가한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
[미디어스=노하연 기자]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소설 번역 서비스가 등장하자 번역가와 번역가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지난 8일 가디언은 AI를 활용한 소설 전문 번역 서비스 ‘글로브스크라이브'(GlobeScribe.ai)가 영국 현지에 출시됐다고 보도했다. 이 서비스는 100달러(약 14만원)를 지불하면 소설 한 권 전체를 AI로 번역하는 서비스로, 소설 분량이나 난이도에 관계없이 동일한 가격이 책정된다. 결과물은 24시간 내 받아볼 수 있다.
글로브스크라이브는 AI번역 기술의 품질을 검증하기 위해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했다. 테스트에 참여한 원어민들은 해당 서비스를 활용한 번역본과 실제 번역본을 구분하지 못했다. 글로브스크라이브는 “피드백 결과, 독자들이 두 버전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 지속적으로 나타났다”며 “AI 번역버전이 원문과 어조, 충실도 측면에서 더 유사하게 느끼기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학 번역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영국 작가협회(Society of Authors) 산하 이안 자일스 번역가협회장은 “글로브스크라이브는 소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접근성을 확대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의 접근 방식은 문학이 문화 간 공명하도록 만드는 그 사람들, 즉 번역가들을 소외시킨다”며 “AI가 인간 번역가의 섬세한 작업과 대등하거나 심지어 능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일”이라고 했다.
영미권에서 일본 베스트셀러 ‘버터’를 비롯해 여러 일본 문학을 번역한 폴리 바튼 번역가도 비판에 나섰다. 그는 “최고의 문학 번역은 단순한 정확성,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에 대한 문자 그대로의 충실함 그 이상을 제공한다”며 “훌륭한 번역은 책이 탄생한 맥락을 잘 이해하고, 속도감, 분위기, 감정의 음색, 리듬, 그리고 독서 경험의 충만함과 풍부함을 결정짓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요소들까지 모두 재현한다”고 했다.
올해 인터내셔널 부커상 수상자인 디파 바스티 번역가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만큼이나 문화적 맥락 속에 숨겨져 있거나 함축되어 있는 의미들도 많다”며 “이러한 단어들을 번역하려면 가시적인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모두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바스티는 바누 무슈타크의 ‘하트 램프’를 칸나다어에서 영어로 번역해 올해 부커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칸나다어는 인도의 카르나타카 주와 인접 지역에서 사용되는 언어다.
번역가들의 반발은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2024년 1월 한 달간 영국 작가협회가 1만 2천 500명의 작가·일러스트레이터·번역가 회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86%가 “AI가 창작물의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번역가 36%가 ‘AI로 인해 이미 일자리를 잃었다’고 응답했으며, 번역가 43%는 ‘AI로 인해 작업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줄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글로브스크라이브의 공동 창립자인 베시 리블리, 프레드 프리먼은 가디언에 “AI가 예술에 미칠 영향에 대해 업계가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이러한 도구는 앞으로도 계속 사용될 것이며,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것이 인간 번역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성과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보조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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