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Imagine이 만들어지기까지

[고브릭의 실눈뜨기]

2025-07-21     고브릭

[미디어스=고브릭의 실눈뜨기]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K’의 물량 공세가 압도적으로 쏟아지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후 <케데헌>)에 대한 감상을 요약하면 그렇다. 컵라면과 분식, 국밥으로 이어지는 K-푸드. 한옥마을, 낙산공원, 남산으로 절정을 맺는 K-풍경. 한의원과 목욕탕에서 펼쳐지는 K-문화까지. 이동진 평론가가 말한 것처럼 어묵볶음 위에 고명으로 올라간 부추 두 줄기까지 재현된 <케데헌> K-고증은 하나같이 놀라운 수준이다.

작호도의 호랑이와 까치처럼 민화에서 자주 보던 익숙한 이미지이지만 정작 우리가 만들고 소비하는 대중문화에서는 제자리를 찾지 못했던 아이템까지 발굴해 활용한 측면에서는 한국에 관한 관심과 존중에 대신 감사를 표하고 싶을 정도다. 한국에 대한 몰이해를 가뿐히 뛰어넘어 무지에 가까웠던 불성실한 재현과 묘사를 보며 분노하고 자조하던 세월이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대자본의 힘으로 보상받는 날이 왔다. K-시민이라면 이제 마음 편히 성불해도 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 이미지

흠집과 두려움을 내보여선 안 된다

<케데헌>은 제목부터 그렇듯 케이팝과 데몬헌터라는 키워드가 전면에 등장한다. 어쩌다 이질적인 두 요소가 섞이게 됐을까. 감독 메기 강의 인터뷰에 따르면 시작은 데몬헌터였고 케이팝이 나중에 따라붙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악귀를 물리친다면 누가 어울릴지 고민하다가 케이팝이 떠오른 것이다. BTS의 유례없는 성공 덕분에 해외에서 케이팝을 보는 시선이 감독이 떠올린 알고리즘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분석은 이미 여러 차례 보도됐다.

인정하기는 싫으나 뼛속까지 유교보이의 입장에선 차마 공적으로 언급하기도 부끄러운 촉촉 타령이 차트 1위에 오르내린다. 꿈과 희망을 노래하고 밝고 건실한 청년이란 이미지를 주는 슈퍼스타가 영미 팝계에는 드물다. 부모들이 안심할 수 있는 아이돌로 케이팝이 자리 잡고 있고 <케데헌>도 그렇게 형성된 글로벌한 이미지를 적응 차용한 듯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루미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서사 역시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 

완벽한 인간이란 없음을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그것을 스타, 특히 케이팝 아이돌에게 적용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다. 무대에서 완벽한 춤과 노래를 선보여야 하는 건 물론이고 일상에서도 흐트러짐 없이 타의 모범이 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롤모델’로서의 장점이 아티스트 개인에게는 엄청난 부담이라는 것도 여러 아티스트들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 이미지

<케데헌>에서는 개인이 갖고 있는 결함이 타인이 기대하고 스스로가 수행하려는 사회적 역할에 걸림돌이 될 때의 고민과 방황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게다가 그 문제가 자신이 선택한 결과가 아니라 타고나거나 바꿀 수 없는(혹은 불가능에 가까운) 문제인 경우 마주하는 좌절감에 공감할 사람들도 많아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케이팝 아이돌이 겪는 문제지만 세계의 누구든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 감정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는 고증만으로 다다를 수 없는 영역이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루미가 멤버들에게 정체를 들키고 좌절한 뒤 스승인 셀린을 찾아갔을 때의 모습이다. 당연히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제자를 위로하고 깨달음을 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셀린은 ‘흠집과 두려움을 내보여선 안 된다’는 과거의 가르침을 반복한다. 루미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달라’고 애원하지만, 셀린은 황금 혼문만 만들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며 불완전한 점을 숨기고 비밀을 지킬 것을 당부한다.

예측할 수 없던 전개에 루미도 예상할 수 없게 대응한다. 자신이 지켜야할 혼문이 두려움과 결점을 숨겨야 한다면 없어지는 게 낫고, 다시 새로 만들면 된다는 선택이다. 혼문은 악귀로부터 현실 세계를 지키는 보호막의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한계를 그어버리는 장벽이기도 하다. 타인과의 소통이 불안과 두려움 낳을 수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려 노력하는 과정이 진짜 나를 만든다. 루미가 Golden을 부를 수 없던 건 그녀의 정체 탓이 아니라 두려움을 피해 숨으려던 태도 탓이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 스틸 이미지

케이팝의 Imagine

“사랑이 핏속에서 즐겁게 춤을 추는데 어디에서 태어났건, 누구의 자식이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디스 워튼, 『여름』중에서

소녀시대 본인들은 물론 대한민국의 누구도 예상치 못했지만 '다시 만난 세계'는 탄핵정국을 계기로 당당히 2000년대를 상징하는 민중가요로 자리 잡았다. 펀치라인은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마"라는 가사다. 탄핵 과정에도 갑자기 천재지변이 일어난다거나, 벼락이나 급살을 맞거나, 미국이 개입해서 중재하는 등 특별한 기적이란 없었다. 특별한 기적이 없다는 사실은 모든 사건에는 그 사건에 따른 저마다의 복잡한 기승전결이 있다는 뜻이다.

넷플릭스 영화 글로벌 1위를 넘어 Golden, Your Idol, How It's Done 등의 수록곡이 차트를 폭격하고 있는 <케데헌>의 성공은 기적 같은 일이 아니다. 오빠 부대라는 태초를 지나 빠순이라는 멸칭을 뛰어넘어 '빛의 혁명'이라는 이름을 갖기까지. 케이팝 아이돌을 사랑해온 팬들은 사회와 집단의 압력에 짓눌렸지만, 목소리를 내고 다른 이들과 사랑을 나누려는 용기를 하루아침에 기적처럼 만들어내진 않았다. 아티스트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매 순간 다하던 진심이 결국 특별한 기적 대신 우리를 구하고 케이팝의 Imagine이 울려 퍼질 기승전결을 완성했다.

Oh, I'm done hidin' now I'm shinin' like I'm born to be

숨는 건 끝이야, 난 이제 빛나고 있어, 내가 태어날 적부터 그랬듯이

Oh, our time, no fears, no lies

우리의 시간이야, 두려움도 거짓도 없어

That's who we're born to be

그게 우리가 태어난 이유야

- <케이팝 데몬 헌터스> OST ‘Golden’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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