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학자 "왜 정당 추천 공영방송 이사 40%인가"
"왜 EBS는 방통위·교육부 관여 열어두었나" "이사 추천 단체 자의적 선별 어떻게 막을 수 있나" 국힘 '공영방송 장악' 비판에 "번지수 잘못 짚어" "법안 디테일에 대한 다른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언론학자가 더불어민주당이 방송3법을 추진하면서 귀 기울여야 할 목소리는 '공영방송 장악 시도'라는 엉뚱한 비판이 아니라 정치권의 이사 추천 비율 40%, 방통위·교육부에 종속된 EBS 지배구조 등 세부사항에 대한 이견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7일 열린 국회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방송3법이 민주당 주도로 통과했다. 방송3법은 KBS·MBC·EBS 지배구조 추천 주체를 다양화해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취지를 표방하고 있다. 그동안 여야는 법적 근거 없이 공영방송 이사회를 7대4(KBS), 6대3(방송문화진흥회, EBS) 구도로 추천해왔다.
11일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는 한겨레 칼럼 <방송3법 논의를 이해하는 법>에서 "막상 방송3법 처리 가능성이 커지니, 그에 대한 각종 논란과 이견의 목소리들도 높아지며 가뜩이나 쉽지 않은 이 논의에 혼란을 한층 더하고 있다"며 "법 개정에 대한 논의 구도의 갈피를 제대로 못 잡은 엉뚱한 논평과 언론 기사들도 종종 보인다"고 했다.
홍 교수는 엉뚱한 비판의 대표 사례로 국민의힘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 비판과 일부 진보 진영 내에서 나오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는 주장을 꼽았다. 홍 교수는 "이런 비판이 별로 귀담아들을 만한 가치가 있지는 않을 듯싶다"며 "정부·여당이 정말 공영방송을 장악하려고 한다면, 관련 법을 지금 그대로 두고 바꾸지 않는 게 가장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방송장악 의도가 있다면 현행 제도 아래에서 공영방송 이사회를 여권 우위로 재편해 사장을 교체하면 그만이라는 얘기다. 홍 교수는 "국민의힘에서 이야기하는 '공영방송 장악'이라는 비판은 얼마나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인지 곧바로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홍 교수는 "이와 별개로, 일부 진보 진영 내에서는 법 개정을 통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제도 개선의 불필요성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도 있다"며 "이는 대략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는 방식의 주장인데, 어차피 공영방송의 이사 구성을 다원화하여도 정당을 대신해서 추천하는 학계나 시청자단체, 법조계 등도 이미 정치적이기 때문에 공영방송이 정치적으로 완전히 독립되기는 불가능하니까 제도를 바꾸는 데 너무 힘 빼지 말자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홍 교수는 "일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이런 주장도 이미 예전에 논파된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이야기"라며 "당연히 우리 사회에서 정치로부터 완벽히 분리된 영역은 없고 이를 담보할 완벽한 제도도 없겠지만 그래도 정치적 영향력이 방송에 덜 미치게 할 수 있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제도를 찾으려 그동안 수많은 논의가 있었고 그 논의의 자산들이 지금까지 축적되어서 지금의 공영방송 이사 다원화 방안까지 이어져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엉뚱한 비판들보다 진짜 귀를 기울여야 하는 목소리는 현재 개정안의 세부 사항과 추진 방식에 대한 여러 의견"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왜 정당 추천 이사 수를 그동안 주장되었던 전체 30%가 아니라 40%로 남겨놓았는지, 그리고 왜 EBS에 대해서는 여전히 방통위와 교육부 등의 행정부 관여를 열어두었는지, 그리고 추천 단체의 자의적 선별을 어떻게 안정적으로 막을 수 있는지 등의 디테일에 대해서는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이번 정부에서 공영방송을 국민께 돌려드린다고 한 약속에 대한 신뢰만 흔들리지 않는다면, 아직 우린 옆을 돌아보고 함께 논의하고 다듬을 시간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방위를 통과한 방송3법은 공영방송 이사 수를 KBS 이사회 15인, 방문진·EBS 이사회 13인으로 확대하고 정치권의 공영방송 이사 추천 비율을 40% 보장했다. 나머지 이사는 공영방송 시청자위원회와 임직원, 방통위 규칙으로 정하는 3개 미디어학회와 2개 변호사단체가 추천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폐기된 방송3법의 정치권 공영방송 이사 추천 비율은 25%가 되지 않는다. 방송3법에 따르면 공영방송에 사장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 제도가 도입된다. 사추위가 추천한 사장 후보는 이사회가 특별다수제(5분의 3이상 찬성)를 통해 최종 선출한다.
방송3법에서 정치권 추천 이사는 국회 교섭단체 몫이다. 의석수 비율로 계산해 여야 몫을 나눈다. 현재 민주당은 167석, 국민의힘은 107석이다. KBS 이사회 기준으로 민주당은 4인, 국민의힘은 2인의 이사를 추천하게 된다. 방통위 규칙으로 정하는 미디어학회·변호사단체 추천 공영방송 이사 수는 4인이다. KBS 이사회로 계산해보면 전체 이사 15인 중 민주당 추천 4인, 이재명 정부 방통위가 선정한 학회·단체 추천 4인이 임명될 수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EBS지부·지역민영방송노조는 "민주당 방송3법은 갈라치기"라는 내용의 호소문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방송3법은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를 일부 방송사에 한정했다. 적용 대상은 KBS, MBC, EBS, YTN, 연합뉴스TV이다.
공·민영 기준으로 정리해보면 일관성을 찾기 어렵다. 사영화된 YTN은 적용 대상이지만 재허가·승인 대상인 SBS·지역민방·종편에는 적용 대상에서 배제됐다. 공영방송 MBC의 경우에도 서울 MBC 본사만 적용돼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언론노조 산하 16개 지역 MBC노조는 "성과에 목마른 언론노조, 속도에 매몰된 정치권이 야합해 헌신짝처럼 지역 공영방송을 버렸다"고 비판했다. EBS는 방통위가 행사해 온 사장 임명권이 그대로 유지됐고 교육부, 교육단체의 이사 추천권이 보장돼 지배구조 개선점을 찾기 어렵다.
지난 8일 한겨레 이종규 저널리즘책무실장은 칼럼 <방송3법, ‘디테일의 악마’까지 살피길>에서 방송3법이 제대로 시행된다면 여야의 공영방송 쟁탈전 끝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면서도 정치적 후견주의를 덜어낼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실장은 "공영방송 이사 중 국회 추천 몫이 너무 많다는 비판이 있다.(중략)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된 애초 민주당 법안(21명 중 5명)보다 훨씬 국회 추천 비중이 크다"며 "정치적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정치권 이사’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이사회가 정파적 대결의 장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 실장은 "공영방송 이사 4명을 추천할 미디어 관련 학회와 변호사단체를 방통위 규칙으로 정하게 한 점도 우려스럽다. 사실상 방통위에 추천 단체 선정 권한을 준 셈인데, 정권의 의중에 따라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방송심의의 흑역사를 남긴 류희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시절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위원 추천 단체 선정 권한이 오남용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또 이 실장은 "방송3법에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 설치 의무화, 편성규약 위반 시 처벌,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등의 조항을 신설한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며 "다만 SBS 등 민영 지상파 방송사와 종편을 보도책임자 임명동의제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고 했다. 이 실장은 이 대통령 공약에 '공영방송 이사·사장 자격요건 강화' '공영방송 임원의 직무상 독립과 정치 중립 의무 강화'가 포함돼 있다며 "방송3법에는 이런 내용이 빠져 있다.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정치 낭인'들이 공영방송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하려면 이런 내용도 법에 담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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