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피지컬AI, 지방에서 시작하는 기술주권의 반격
[기고] 다시, 균형과 상생의 경제를 말할 시간
[미디어스=권오석 칼럼] 대한민국은 지금 기술혁신의 거대한 파고 위에 서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인간의 언어를 대체하고, 제조와 물리적 활동을 수행하는 ‘피지컬 AI’가 산업 지형을 다시 쓰고 있다. 이 거대한 전환 속에서, 수도권도, 대기업도 아닌 전북이라는 지방의 한편에서 들려온 소식은 작지만 묵직하다.
전북도가 확보한 피지컬 AI 실증 인프라 예산, 국비 229억 포함 총 382억 원. 이는 지방이 다시 기술혁신의 무대에 서려는 첫걸음이다.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기술과 자본, 기회는 한국 사회의 만성적 구조병이다. 강남에 몰린 인공지능 스타트업, 판교에 집중된 빅테크, 여의도와 세종이 독점한 예산권과 정책 결정권. 그 뒤편에서 지방은 지난 수십 년간 '균형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실질적 소외와 단절을 감내해 왔다. 새만금이라는 이름은 들어봤지만, 그곳이 몇 번 다시 시작했는지, 무엇이 좌초됐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제 전북은 ‘피지컬 AI’라는 마지막 기회를 붙들고자 한다. 첨단 반도체, 자율주행, 농기계 로봇, 드론, 재난 구조 시스템 같은 AI의 실물적 구현이 가능한 기술 기반을 만들고, 이를 지역 산업과 접목하려는 시도가 시작된 것이다. 늦었지만, 절박하다.
하지만 이 도전이 성공하려면 먼저 왜 한국이 글로벌 AI 혁신에서 뒤처지는지를 직시해야 한다.
뒤처진 기술주권, 수도권 중심의 비효율이 만든 결과
한국은 AI 선진국이라 불리지만, 실상은 허상에 가깝다.
첫째, 비용과 인프라의 불균형이다.
한국은 전국적으로 5G가 깔렸다는 상징은 있지만, 군산이나 정읍에는 초저지연 AI 실증환경이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과 중국은 산업용 AI망과 전용 GPU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지만, 우리는 실증조차 어렵다.
둘째, 자금 생태계의 단절이다. 지방엔 AI 벤처 펀드가 없다. 정부 보증이나 창업 대출이 전부다. 서울의 스타트업은 수백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지만, 전북에선 사업계획서조차 읽히지 않는다.
셋째, 인재 유입의 장애물이다. 글로벌 연구자는 한국에 오지 않는다. 비자제도가 복잡하고, 생활 만족도는 낮고, 연구의 자율성도 부족하다. 세계는 과학자를 유치하기 위해 세금, 주거, 교육, 문화적 포용을 경쟁하듯 제공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외국인이 한국말 못하면 불편할 텐데요”라는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피지컬 AI, 새로운 균형발전의 시험대
전북의 시도는 단순한 기술개발이 아니라, ‘국가 균형성장의 실험장’이자 ‘기술주권의 방어선’이 되어야 한다. 지방에서 시작해 세계로 나가는 구조가 작동하려면, 피지컬 AI 실증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음 세 가지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1. 새만금에 실질적 자율이 보장된 ‘AI 규제프리 경제특구’ 조성
2. 전주 국민연금을 ‘제3의 미래금융허브’로 탈바꿈
3. 사람 중심의 생태계 조성 – 한국형 국제학교, 문화예술기반 커뮤니티, 외국인 친화적 정주환경
기술도시를 넘는 ‘사람의 도시’로
전북이 바뀌면 한국이 바뀐다. 피지컬 AI는 그 출발선이다. 하지만 진짜 혁신은 기술 자체보다 기술을 중심으로 사람과 지역, 제도와 삶을 다시 연결하는 것에 있다. 기술이 수도권의 독점이 아니라 전국의 공공재가 되고, 지방에서 일어나도 세계적 성과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가능하려면 지금의 정책 구조와 철학이 송두리째 바뀌어야 한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과 의료, 디지털 인프라를 보유하고도 이를 ‘삶의 질’로 승화시키지 못한 나라다. 이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에 둔 국가 설계가 필요하다. 그 시작은 전북일 수 있다. 피지컬 AI가 바꾸는 것은 기계의 움직임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진짜 전환의 길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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