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센터 직원의 탄식과 AI의 발전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미디어스 김홍열 칼럼] “AI가 콜센터 상담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습니다.” 지난 7월 4일, 대전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 '대전 시민 300여명 만난다'에서 대전지역 콜센터 직원이 한 말이다. 챗봇과 AI 응대 시스템이 빠르게 도입되면서 머지 않은 시간에 상담자들의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는 상담사들이 AI 시스템과 경쟁하듯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일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으며, 감정 노동까지도 AI와 비교되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대통령은 그 발언을 끝까지 경청했고, 현장의 시민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이 장면은 AI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불안과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낸 상징적 순간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 시기, 정반대의 분위기를 전하는 뉴스도 등장했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대표 통신사들이 앞다투어 AI 고객센터를 신성장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들 기업은 음성 인식과 음성 합성, 텍스트 분석, 감정 분석 기술 등을 결합한 AI 상담 시스템을 통해 고객 대응의 혁신을 꾀하고 있다. KT는 AI 보이스봇 지니가 187종 업무의 1만 2,000개 질의응답을 24시간 상담한다. 상담 후에도 고객의 민원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KT가 자체 개발한 ‘AI 상담 어시스트’가 전문 상담사를 위한 자료를 제공한다. SK텔레콤은 자체 개발한 거대언어모델(LLM)을 AI 고객센터에 적용하고 있다. 적용 결과 통화 후 분류 등 후속 작업에서 AI의 정확성이 인간 상담원의 약 89% 수준으로 올라왔다고 밝혔다.
AI 고객센터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매우 크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드마켓에 따르면 글로벌 AI 고객센터 시장은 연평균 25% 이상 성장하고 있으며, 국내 시장 역시 2020년 4,214만 달러에서 연평균 23.7%로 성장해 2030년에 3억 5,088만 달러로 전망된다. 통신사들은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구독형 클라우드 서비스와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며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금융사, 보험사, 공공기관은 물론 중소기업까지 AI 상담 기술 도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이미 일부 대기업은 상담 인력 절반 이상을 AI 시스템으로 대체한 사례도 등장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AI는 인건비를 줄이고 운영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도구로, 무시할 수 없는 유혹이다.
이렇게 기술이 일자리에 영향을 미친 것은 지금만의 일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기술은 항상 사람의 일을 새로 만들면서 기존의 직업을 대체했다. 전등이 나오자, 촛불 장사들이 사라졌고, 자동차가 보급되자 마차 업계는 몰락했다. ATM이 등장하면서 은행 창구는 줄어들었고, 무인 계산대가 마트를 변화시켰다. 이러한 사례는 끝도 없이 열거할 수 있다. 지금의 AI도 그 연속선상에 있는 기술일 뿐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변화의 속도가 과거보다 훨씬 더 빠르다는 점이고, 그로 인해 준비되지 않은 노동자들이 더 큰 불안에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콜센터는 그 중심에 놓여 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직업의 역사에서 콜센터가 퇴장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콜센터라는 직업 자체도 과거 기술 변화 속에서 새롭게 등장한 일자리라는 점이다. 예전에는 대부분의 민원이 창구를 통한 직접 대면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자동 전화 교환기와 자동 착신 분배기가 등장하면서 다수의 상담원이 전화를 받을 수 있는 대규모 전화 콜센터가 등장했다. 콜센터는 기존 창구 업무를 대체하는 새로운 노동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생겨난 직업이 이제는 또다시 AI라는 새로운 기술에 의해 대체 위기를 맞고 있다. 기술은 이렇게 기존의 일을 없애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힘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사회가 그 변화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그에 따라 제도와 정책을 정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변화에 적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중장년층이나 반복적인 업무에 익숙한 노동자들에게는 기술 전환이 곧 생존의 문제로 다가온다. 이럴 때일수록 중요한 것은 기술 도입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게 되는 이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하는 사회적 책임이다. 재교육, 직무 전환, 고용 안전망은 단순한 보완책이 아니라 기술 발전을 가능하게 만드는 인프라다. 기술 혁신을 수용하기 위해서라도 국가와 사회는 피해를 보는 사람들을 책임져야 한다. 기술의 발전을 말하는 동시에, 발전 와중에 소외되는 이들의 삶을 어떻게 함께 끌어안을지에 대한 답도 같이 나와야 한다. 이 둘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콜센터 직원의 탄식과 AI의 발전’이라는 표현은 상징적이다. 이 두 가지는 당분간 계속 충돌할 수밖에 없고, 그런 갈등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산업혁명 당시에도 기계가 일자리를 뺏는다는 공포는 있었고, 정보화 시대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결국 역사는 기술의 발전을 막지 못했고, 사회는 그것을 수용하면서 진화해 왔다. 기술은 멈추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루느냐이다. 기술을 막으려 하기보다는, 기술이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적극 수용하고, 그 결과물이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쓰이도록 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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