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규칙이 정하는 공영방송 이사 추천단체…악용 가능성은
민주당 과방위 '방송3법 단일안' 전체회의 통과 '방통위 규칙', 추천권 갖는 미디어학계·법조계 선정 정연주 "수구기득권 세력이 집권할 경우 디테일의 악마는…" "규칙 아닌 방송법에서 선정 기준 구체화해야" 류희림 방심위 체제 선거방송심의위 형해화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밝힌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의 원칙은 '어떤 권력이 집권해도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방송법'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추진하는 '방송3법 단일안'의 공영방송 이사 추천 주체는 정치권을 제외하더라도 정부여당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주체들이 포함되어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규칙으로 정하는 단체들의 이사 추천이 정권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7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민희) 전체회의에서 방송3법이 민주당 주도로 통과했다. 방송3법은 KBS·MBC·EBS 지배구조 추천 주체를 다양화해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취지를 표방하고 있다. 그동안 여야는 법적 근거 없이 공영방송 이사회를 7대4(KBS), 6대3(방송문화진흥회, EBS) 구도로 추천해왔다.
민주당 과방위의 방송3법 단일안은 공영방송 이사 수를 KBS 이사회 15인, 방문진·EBS 이사회 13인으로 확대하고 정치권의 공영방송 이사 추천 비율을 40% 보장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폐기된 방송3법의 정치권 공영방송 이사 추천 비율은 25%가 되지 않는다. 방송3법에 따르면공영방송에 사장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 제도가 도입된다. 사추위 규모를 100명 이상으로 설정할 것, 사추위가 추천하는 사장 후보는 '3인 이하 복수'일 것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사추위가 추천한 사장 후보는 이사회가 특별다수제(5분의 3이상 찬성)를 통해 선출한다.
방송3법 단일안에서 정치권 추천 이사는 국회 교섭단체 몫이다. 의석수 비율로 계산해 여야 몫을 나눈다. 현재 민주당은 167석, 국민의힘은 107석이다. KBS 이사회 기준으로 민주당은 4인, 국민의힘은 2인의 이사를 추천하게 된다.
나머지 이사는 공영방송 시청자위원회와 임직원, 방통위 규칙으로 정하는 3개 미디어학회와 2개 변호사단체가 추천한다. 즉 '방통위 규칙'으로 정하는 단체들의 공영방송 이사 추천이 정부여당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 방통위는 5인 합의제 기구다. 방통위원은 대통령 2인, 여당 1인, 야당 2인 추천으로 구성된다. 여권 우위의 방통위가 어떤 학회와 변호사단체를 공영방송 이사 추천 주체로 둘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정하게 되는 것이다. 여권 입맛에 맞는 학회·단체를 정하기 위한 방통위 규칙 개정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대표적 사례로 윤석열 정부 당시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심의위)를 들 수 있다. 선방심의위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 기간 방송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설치하는 한시적 심의기구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 국회 교섭단체, 중앙선관위, 대한변호사협회, 방송사 대표(방송사단체), 방송학계, 언론인단체, 시민단체 등이 9인의 위원을 추천해 선방심의위를 구성한다.
지난 22대 총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위촉한 류희림 방통심의위원장은 선방심의위를 구성하면서 TV조선이 TV조선 출신 인사를 추천하고, 신생 학회인 한국미디어정책학회가 인사를 추천하도록 했다. 류희림 위원장은 그동안 언론인권센터, 언론개혁시민연대, YWCA, 여성민우회 등이 추천해 온 시민단체 몫을 보수단체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에 넘겼다. 공언련은 자기 단체 이사장이자 TV조선 시청자위원으로 활동한 권재홍 전 MBC 부사장을 추천했다. 국민의힘은 공언련 운영위원인 최철호 전 KBS PD를 추천했다. 최 전 PD는 현재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이다.
정연주 전 방통심의위원장은 지난 4일 공개된 뉴스타파 인터뷰에서 민주당 과방위의 방송3법 단일안에 대해 "한국처럼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하나의 방편은 될 수 있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또 수구기득권 세력이 집권할 경우, (이사를)뽑는 단체들이 희한하게 작동하게 된다"고 말했다.
정 전 위원장은 "예를 들어 선방심의위원이 선발되는 과정과 카테고리는 상당히 합리적이고 모범적이다. 이것이 류희림 체제에서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렸다"며 "운영 면에서 아주 극단적으로 바꿀 수 있더라. 만약 논의되고 있는 방송3법에서 (추천)카테고리만 정해져 있다면 윤석열, 이진숙, 류희림 같은 체제가 방통위와 방통심의위를 구성했을 때 선방심의위 같은 기구는 자동적으로 희한한 구성이 된다"고 했다. 정 전 위원장은 제도적 변화만큼이나 사람과 문화, 관행이 바뀌어야 언론개혁이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방통위 규칙으로 공영방송 이사 추천 주체를 결정할 게 아니라 모법을 통해 선정 기준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 교수(전 민주당 방송정보통신 수석전문위원)은 지난 2일 '방송3법 단일안에 대한 검토 보고서'에서 "추천권을 부여할 학회 기준, 즉 상위 3개 학회(한국언론학회·한국방송학회·한국언론정보학회)로 자동 지정될 수 있도록 '창립일 이후 연간 활동기간, 년간 주요 활동내역, 회비 납부 회원수 등' 기준을 모법에 명시하고, 모법 시행에 필요한 부대사항만 시행령·규칙으로 정하도록 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고 방통위 규칙에 맡겨 두면 학회의 이사 추천은 정치적 영향력에 종속되고 말 것"이라고 우려했다.
안 교수는 시청자위원회의 공영방송 이사 추천의 경우에도 시청자위 구성에 관한 규정부터 방송법에서 구체화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공영방송 시청자위원회는 방통위 규칙과 각 공영방송사 시청자위 운영내규에 따라 선정되는데 각 방송사 사장의 입김에 의해 위원이 선임된다는 논란이 지속되어 왔다. 안 교수는 "시청자위에 이사 추천권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방송법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과 절차에 의해 시청자위원을 선임하기 위한 자격요건, 결격사유, 추천기준 및 절차, 사장의 개입 방지 등의 규정을 두기 위한 법적 근거를 명시해야 한다"며 "이에 대한 세부적 내용은 시행령에 위임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 순위"라고 했다.
안 교수는 법조계의 공영방송 이사 추천은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변호사 단체들이 무슨 명분으로 추천권을 가지고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한 것인지에 대한 이유가 불분명하다"면서 "나쁜 정부가 등장하게 되면 ‘학회’ 선정과 마찬가지로 방통위 규칙이 정한 기준으로 정권의 입맛에 맞는 변호사단체에 이사 추천권을 부여하고, 추천된 이사는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정부여당의 하수인이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최근 박장범 KBS 사장 측근으로 분류되는 현직 KBS 직원을 내란 특검보로 추천해 논란을 빚었다. (관련기사▶내란 특검보 추천에 KBS 내부 "내란 수사 제대로 되겠나"…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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