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원, AI 저작물 학습권 인정 판결
"작가 동의 없는 학습, 저작권 침해 아니다" "기존 저작물 재창조는 ‘공정 이용’ 해당” “ 책 불법 복제에 대해서는 배상해야”
[미디어스=노하연 기자] 작가의 동의 없이 인공지능 훈련에 저작물을 사용한 것은 ‘합법’이라는 미국 법원 판결이 나왔다. 책 내용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 아닌 ‘변형적 사용’으로 저작권 침해로 볼 수 없다는 이유다.
24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23일 윌리엄 앨섭 샌프란시스코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작가들이 AI 기업 앤트로픽(Anthropic)을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앤트로픽의 손을 들어줬다. 앤트로픽은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의 전직 임원들이 2021년 설립한 AI 기업으로, 생성형 AI 모델 ‘클로드’(Claude)를 개발했다.
지난해 여름 안드레아 바츠, 찰스 그레이버, 커크 월러스 존슨 작가는 앤트로픽이 자신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복제해 클로드를 훈련시켜 왔다며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각 작품에 담긴 인간 특유의 창의력과 표현력을 대규모로 착취해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I 훈련 목적의 창작물 사용은 ‘공정 이용’(fair use)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공정 이용은 저작물을 창작 목적에 한해 소유자 허락 없이 제한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원칙으로, 그동안 빅테크 기업들의 주요한 법적 방어 논리로 활용됐다. 앤트로픽은 클로드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 “매우 혁신적이기 때문에 ‘공정 이용’ 원칙의 창작 목적에 부합한다”고 주장해왔다.
앨섭 판사는 판결문에서 “AI 훈련으로 만들어진 모델이 원작의 창의적 요소나 작가 고유의 표현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아 저작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AI가 책을 읽고 배우는 방식은 새로운 창작을 위한 변형적(transformative) 사용”이라고 판시했다. 또 “작가 지망생이 책을 읽는 것처럼, 앤트로픽의 AI 모델도 기존 작품을 따라 하거나 대체하는 게 아니라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책 원문을 그대로 복제하지 않고 새로운 목적을 위해 활용했기에 ‘변형적’ 행위라는 얘기다. 앤트로픽은 종이책을 구매한 뒤 이를 디지털 파일로 변환해 클로드를 훈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앤트로픽이 AI 훈련에 활용한 책 700만여 권을 불법적으로 인터넷에서 다운로드한 점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했다. 앤트로픽은 인터넷에서 수집한 복제본을 온라인 보관소에 저장해왔다. 앨섭 판사는 “앤트로픽이 반드시 AI 훈련에 사용되지 않을 수도 있는 불법 복제된 책 사본을 저장함으로써 작가들의 권리를 침해했다”며 “합법적으로 구매하거나 접근가능한 원본 사본을 불법 사이트에서 다운받는 것이 ‘공정 이용’에 왜 필요했는지에 대한 합리적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앨섭 판사는 “앤트로픽이 인터넷에서 훔친(stole off) 책을 나중에 다시 구입했다고 해서 도난에 대한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법정 손해배상액 범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오는 12월 불법 복제물 도용 혐의 재판을 받으라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12월 별도 재판을 열고 앤트로픽이 지불해야 할 배상액을 결정할 계획이다.
앤트로픽의 변호인은 같은 날 미국 CBS에 보낸 서한에서 “법원이 ‘LLM(대규모 언어 학습 모델)을 훈련하는 작업’은 혁신적이라고 인정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정말 놀랍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생성형 AI의 저작권 침해 논쟁과 관련해 공정 이용 여부가 본격적으로 다뤄진 첫 사례로, 앤트로픽의 사례가 앞으로 이어질 비슷한 재판의 기준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이번 판결은 생성형 AI의 저작권 침해를 다룬 첫 번째 판결”이라고 강조했다. AP통신은 “이번 판결은 챗GPT를 만든 앤트로픽의 경쟁사 오픈AI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모회사인 메타를 상대로 산적해 있는 유사 소송의 선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포춘은 “앨섭의 판결은 다른 저작권 소송의 선례가 될 수 있지만 판결 중 상당수가 항소할 가능성이 높아 AI와 저작권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오픈AI와 메타, 퍼플렉시티를 비롯한 주요 테크 기업들은 책, 언론 기사 등을 AI훈련에 사용해 작가, 언론사, 음반사 등으로부터 유사한 저작권 침해 소송을 당한 상태다. 지난 11일 디즈니와 유니버설은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를 상대로 자사 캐릭터를 무단 복제했다며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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