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뜬금없는 수신료 인상 드라이브 '3·4·5'

박장범, 내부 회의서 "3천원으로, 44년만에, 5백원 인상" KBS "대내적으로 500원이라도 올려야 한다는 취지 말한 것" 내부 구성원들 "계엄·파우치 논란에 미래 수신료 논의 망치나"

2025-06-24     송창한 기자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박장범 KBS 사장이 TV수신료를 월 2500원에서 3000원으로 500원 인상하는 안을 임직원들에게 발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 사장은 수신료 인상 슬로건으로 '3천원으로, 44년 만에, 5백원 인상한다'는 의미의 '3·4·5'를 내걸었다. 또 AI를 활용한 '수신료 인상 테마송' 등 홍보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KBS는 미디어스에 박 사장의 발언은 내부 임직원들에게 '500원이라도 올려야 한다는 취지'로 말한 것일 뿐 실제 인상폭은 정해진 게 없다고 했다. KBS는 수신료 인상 추진 의지를 밝힐 예정으로 인상안은 구체적 근거를 통해 향후 만들어갈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KBS 내부에서는 '미래를 망치는 성급한 수신료 인상 추진'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사회적 합의를 갖춰 추진해도 정치적 논쟁에 휩싸이기 쉬운 수신료 인상 이슈를 별다른 근거 없이 즉흥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장범 KBS 사장 (사진=KBS)

미디어스 취재 결과, 박 사장은 23일 경영수지 점검 회의에서 수신료 인상 폭을 구체적 수치로 거론했다.박 사장의 수신료 인상 슬로건은 '3·4·5'다. 이날 박 사장과 임직원들은 수신료 현실화를 위한 AI 테마송을 만들어 함께 청취했다. KBS는 지난 3월 3일 공사 창립 52주년을 기념해 2025년을 'AI 방송 원년'으로 선포했다. AI 테마곡은 수신료 현실화 홍보와 더불어 AI 방송 전환을 강조하는 의미라고 한다. KBS는 이번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면서 수신료를 배분받는 EBS와 협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연합뉴스는 <KBS, 수신료 인상 재추진한다… "45년째 동결, 현실화 필요">에서 "오는 24일 시청자위원회 전국대회에서 이러한 인상안을 공개하고, 추후 이사회에서 안건을 심의할 예정이다. 정확한 인상액은 미정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KBS는 연합뉴스에 "수신료가 1981년부터 동결돼 있다"며 "수신료 인상보다는 현실화라고 표현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미디어스는 KBS에 박 사장이 수신료를 월 3000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천명한 게 맞는지, 500원 인상의 근거는 무엇인지 문의했다. 수신료 인상안은 KBS 이사회와 방송통신위원회를 거쳐 국회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 국민적 동의와 이해관계 해소가 필요한 사안으로 2007년 이후 네 차례에 걸쳐 폐기됐다. 지난 2021년 월 3840원 수신료 인상을 추진한 KBS는 국민참여 공론조사 결과, 수신료 수입에 따른 경영수지 변화, 공적책무 수행과 예산집행안 등을 제시하고 국민과 정치권 설득에 나섰다. 

지난달 15일 박장범 KBS 사장이 수신료 통합징수법 통과를 지지해준 시청자위에 감사패를 전달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KBS)

KBS 관계자는 "경영수지 회의에서 박장범 사장이 직원들에게 한 말이지만 지극히 대내적으로 '500원이라도 올려야 한다'는 취지"라며 "KBS가 인상안을 정한 게 없다. 인상안은 물가상승률, 다른 나라와의 비교 등 구체적인 데이터와 근거를 갖고 만들어야 한다"고 한발 뺐다. 

KBS 관계자는 '수신료 현실화 AI 테마송'에 관해서도 "사내 여론 환기 차원에서 만든 것으로 그것 역시 사용할 계획이 없다"며 "대외적으로 확정된 안이 아니다. (박 사장이)사내에서 직원들에게 발표한 사안이고, 공식적인 안은 따로 만들어서 추후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KBS 내부에서는 박 사장이 수신료 현실화의 미래를 망치는 성급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 KBS 관계자는 "앞으로의 수신료 논의 자체를 엉망으로 만드는 내용"이라며 "KBS의 미래를 망치는 일이다. 앞으로 수신료 인상과 공적재원에 관한 논의를 할 때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은 행위"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KBS가 내란 사태 때 무엇을 했느냐는 사회적 비판에 더해 비상계엄 당일 관련 의혹까지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신료 인상을 이야기하냐"면서 "수신료 인상의 제도적 절차도 모호해 지난 네 번의 인상 시도에서 국회가 한 번도 승인을 한 적이 없지 않나. 지금 수신료 인상안을 올리면 정치적으로 논란만 제기될 텐데, 지난 네 번의 시도에서 반복된 문제의 근본적인 이유를 평가하지 않고 그냥 즉흥적으로 이렇게 이야기하면 무지하거나 나쁜 의도가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또 다른 KBS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는 게 얼마나 힘든 과정인가. KBS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다"며 "어느 정도 우호적인 여론이 있을 때 조심스럽게 추진하는 것이 맞는데, 더구나 박 사장은 '파우치'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 않나"라고 했다. 

그는 "심지어 500원 인상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2500원이 3000원이 된다고 하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진다는 것인가. 과거 3800원 인상안을 만들 때에도 모든 근거들을 제시했다"며 "지금 수신료 인상안을 발표한다면 과연 누구에게 좋은 것인가. 국민들도, 여당도, 내부 직원들도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할 텐데 왜 이런 일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10월부터 시행해야 하는 수신료 통합징수에 매진하고, 콘텐츠 경쟁력을 끌어올려도 모자랄 판국에 무슨 수신료 인상인가"라며 "어느 정도 기반이 갖춰져야 KBS가 주도권을 갖고 인상을 추진해볼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KBS 사옥 (사진=미디어스)

한편, KBS는 수신료 통합징수법 국회 처리에 보답하는 의미로 오는 24일 '시청자위원 전국대회'를 개최한다. 전국 18개 지역과 본사 시청자위원, 시청자위원 가족·지인 등 250여 명이 서울로 모인다. 참석자 교통비, 출장뷔페 식대, 선물비 등 1억 원 가까이 소요될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행사는 열린음악회, 국악공연, 캘리그라피 공연, 공동선언문 등으로 구성됐다. 

지난 18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성명을 내어 "수신료 통합고지는 시청자위원뿐 아니라 KBS의 모든 구성원이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되살려낸 소중한 성과"라며 "그럼에도 박장범은 자신의 공치사와 일부 시청자위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국민이 낸 수신료를 쓴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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