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정부 K-뉴딜의 그림자, 그리고 지금의 기시감

[기고]

2025-06-23     김협 전 성균관대 정보통신대학원 교수

[미디어스=김협 칼럼] 6월 20일 이재명 대통령이 G7 정상회의에서 귀국하자마자 울산에서 열린 ‘AI 글로벌 협력기업 간담회’에 참석했다. 1시간 남짓한 이 간담회는 이 대통령의 발언뿐만 아니라 좌석 배치, 발언 순서, 참석 인물까지 고스란히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었고, 그 장면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도배하듯 퍼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울산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 출범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 세리머니에 참여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 대통령, 아마존웹서비스(AWS) 프라사드 칼야나라만 인프라 총괄 대표,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김두겸 울산광역시장(연합뉴스)

누가 대통령의 옆자리를 디자인하는가

간담회에서 가장 눈에 띈 장면은 단연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존재감이었다. 공식 행사임에도 대통령의 바로 옆자리에서 마치 주최 측 인사처럼 대화를 주도하고, 발언의 순서와 방식까지 최 회장을 중심으로 짜여진 듯 보였다. 행사의 전반적 기획이 정부의 것이 아니라 한 기업을 위해 맞춤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현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대한민국 디지털 전략의 민낯은 아닐까.

간담회의 핵심 메시지는 ‘AI 반도체 GPU 5조 원 구매’였다. 이 발표는 언뜻 보기에 정부와 민간이 손잡고 미래산업을 육성하는 협력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의 눈에는 AI 전략이라는 명분 아래 재벌 총수가 업계와 학계를 대리하여 정부에 청구서를 던지는 장면으로 비칠 수 있다. 진정한 AI 강국은 몇조 원짜리 GPU 도입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AI 인재 양성과 생태계 구축은 최소 5~10년이 소요되는 국가적 축적의 결과물이다. 그 점에서 오늘 간담회는 정책이 아니라 쇼였다.

N 없는 국가전략, 무엇을 남기려는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을 때 큰 기대를 걸었다. K-뉴딜, DNA(Data, Network, AI), 국가 AI 전략, K-반도체, 세계 최초 5G 상용화 등 당시 발표된 IT 기반 산업 전략들은 거창했지만, 얼마나 기대에 부응했는지 의문스러운 측면이 분명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전략 안에는 적어도 Network, 즉 통신 인프라에 대한 이해와 고려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정부의 공약에는 그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지금 정부는 2030년 6G 상용화를 통신 관련 공약으로 제시했는데, 나는 이 공약을 이렇게 읽었다. “우리는 임기 내 통신 또는 Network 관련되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 그 어떤 중간 전략이나 단계적 투자 계획 없이 미래의 불확실한 기술 하나에만 걸어두는 것, 그것은 곧 현재를 방기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라쿠텐은 3만원인데, 우리는 왜 8~9만원인가.

현재 한국의 5G 서비스는 여전히 통신 품질 논란과 과도한 요금제 논란을 반복하고 있다. 옆 나라 중국은 이미 5G를 첨단산업과 지역 균형 발전의 핵심 인프라로 활용 중이고, 일본의 제4통신사인 라쿠텐(Rakuten)은 우리나라에서 8~9만 원에 제공되는 5G 무제한 요금제를 3만 원에 제공하고 있다. 한국은 수시로 LTE로 바뀌는 5G인데 말이다. 이 차이는 단순히 가격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통신 인프라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기본적 이해의 문제다. 

5G 주파수ㆍ이동통신3사 (PG) (연합뉴스)

누구의 마음에 들고 싶은가

재벌총수가 대통령의 옆에 선다. 유튜브에는 그 장면이 고스란히 노출된다. 기자, 교수, 공무원 등 사회의 ‘지도층’이라 불리는 사람들조차 과연 누구의 마음에 들고 싶어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5년 임기 정권과 재벌 총수와의 사이에서 말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정책은 사라지고, 인상과 장면만 남는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한 디지털 전략의 문제는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권력과 자본이 밀착한 구조, 그리고 국가전략이 공공을 떠나 ‘기획 연출’의 대상이 되어버린 현실에 대한 구조적 경고다.

결국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 정책의 가장 큰 결함은, DNA 전략에서 'N'을 제거해버린 데 있다. Network, 즉 통신 인프라는 모든 첨단산업의 기반이다. 그것 없이는 AI도, 반도체도, 바이오도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 위에 AI를 세우려는가? 과거의 정책이 아쉬웠다면, 지금은 그 정책조차 없다. 이 공백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악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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