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에 갇힌 플랫폼 노동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2025-06-18     김홍열 덕성여대 겸임교수/정보사회학 박사

[미디어스=김홍열 칼럼] 시민단체인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장인 10명 중 7명은 플랫폼 노동자도 법정 최저임금을 적용받아야 한다고 나왔다. 조사는 올 2월에 진행되었지만, 지금 다시 설문지를 돌린다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직장갑질119가 조사를 기획한 의도는 2026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최저임금위원회 논의 안건에, 법정 최저임금 대상에서 벗어나 있는 프리랜서,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을 포함시키기 위해서다. 이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에서 명시된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제외됐다.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한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 여기에 근로조건이 명시된 근로계약서가 있어야 한다. 프리랜서, 특수고용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모두 이 규정에서 정의한 근로자성에 부합되지 않는 측면이 있어 계속 논란이 되어 왔다. 이 중 플랫폼 노동의 경우 다른 두 경우보다 더 논쟁적이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플랫폼 노동은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만든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다. 이전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인 디지털 플랫폼을 만든 기업들은 계속 성장하고 있고 시장의 규모도 커지고 있지만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은 기업 성장과는 다르게 가고 있다. 

배달앱 (출처=연합뉴스)

디지털 플랫폼은 구매자와 판매자를 연결해 주는 네트워크 서비스다. 배달 서비스가 필요한 식당과 고객을 연결해 주는 배달 앱이 그 한 사례다. 대리운전 기사와 가사 도우미, 컴퓨터 단순 작업자 등을 연결해 주는 앱들도 포함된다. 플랫폼 노동자는 구매자와 판매자를 물리적으로 연결해 주고 대가를 받는다. 서비스 요금은 플랫폼 기업, 서비스 구매자, 판매자 등이 결정하며 가격이 적절하지 않거나, 기타 조건 등이 맞지 않을 때는 거부할 수 있다. 플랫폼 노동자가 서비스 제공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플랫폼 노동은 노동자의 주체적 결정이 가능한 노동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근로자와 달리 플랫폼 노동자는 시간과 공간을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노동하고 싶은 시간을 선택할 수 있고, 노동의 공간 역시 사용자의 구속에서 벗어나 본인이 결정할 수 있다. 프리랜서나 특수고용 노동자와 달리 이런 면에서 더 자유롭기 때문에 근로자성 논란의 중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노동의 자율성을 위해서는 중요한 전제가 두 개 있다. 첫 번째는 플랫폼이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공정하게 플랫폼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신청한 사람에게 일이 주어지거나 또는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 기준이 있어야 한다. 

17일 서울 강남구에서 배달하는 라이더들 모습. (서울=연합뉴스)

두 번째는 플랫폼 접속 여부를 본인이 자발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일을 하고 싶으면 일을 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으면 플랫폼 노동은 노동이 아니라 가벼운 아르바이트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상황은 절대 가볍지 않다. 일부 가벼운 용돈벌이로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플랫폼 노동은 생업을 위한 하나의 직업이다. 2024년 현재 플랫폼 노동자 수는 약 88만 3천 명으로 추정되는데  30대(28.7%)와 40대(26.9%)가 55.6%고 50대와 20대도 각각 20.2%와 13.8%로 나타났다. 플랫폼 노동자 대부분이 적정노동 연령대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첫 번째 조건이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경쟁은 불가피해서 플랫폼이 공정하다면 어느 정도 합리적 경쟁은 인정할 수 있다. 문제는 플랫폼 운영 방식 즉, 네트워킹의 알고리즘을 기업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은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알고리즘 조작을 통해 특정 플랫폼 노동자들을 배제하거나 불이익을 준다. 대부분의 플랫폼 기업은 특정 분야에서 사실상 독점의 지위를 누리기 때문에 플랫폼 노동자들은 왜곡된 알고리즘에 순응하는 것 외에 다른 솔루션을 찾기 힘들다. 이로 인한 문제는 소비자 피해, 플랫폼 종사자 권익 침해, 시장 경쟁 저해, 사회 불평등 심화 등으로 이어진다. 

'모두를 위한 최저임금 운동본부'와 양대노총 조합원들이 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 요구안을 발표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디지털 네트워크는 민주적으로 보이지만,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모든 사회적 관계가 노동과 자본과의 관계로 환원된다. 플랫폼 노동 역시 이 프레임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기존의 노동보다 오히려 치밀하게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다. 이익 극대화에 도움이 안 되는 플랫폼 노동자는 알고리즘에 의해 배제된다. 플랫폼 노동의 회복을 위해서 최소한의 합의가 필요한 이유다.

다행히 지난 10일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이 플랫폼 노동자를 포함한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의 실태 파악을 위한 조사를 고용노동부에 공식 권고했고 조사 결과는 '2027년도 최저임금 심의'에 반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차제에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한 근로자의 재정의까지 이어지길 바란다. 어떤 종류의 노동이든 일하는 사람들은 최저 기준 이상의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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