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츠아이 메간의 커밍아웃, 케이팝의 윤리적 진보
[culture critic] 욕망과 윤리가 공존하는 케이팝의 구조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케이팝의 풍경은 보수적이다. 하지만 표면을 헤집고 들여다보면 균열과 꿈틀거림, 말하지 못하면서 말하는 목소리가 수런거린다.
퀴어는 케이팝의 태동과 함께 그 속에 깃든 이미지였다. 성별 이분법의 스테레오 타입과 배치되는 외양과 성격, 젠더 중립적 태도의 이질성을 품은 남녀 아이돌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꼭 그들의 성적 지향과 연관되거나 공식적으로 성적 지향을 밝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성별 경계를 미묘하게 교란하는 이미지는 케이팝 산업이 아이돌 콘셉트를 변주하거나 아슬아슬한 관계성을 연출하는 전략으로 채택돼 왔다. 그것은 소위 퀴어베이팅(성소수자 캐릭터나 관계성을 암시하면서 명확히 드러내지 않아 성소수자들의 관심만 끌거나 상업적으로 소비되는 마케팅 전략)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팬덤은 아이돌의 성적 지향이 공개되는 것을 금기로 여기면서도, 아이돌 간의 동성애적 관계성을 상상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향유한다. ‘알페스’(실존 인물을 소재로 허구의 동성애 관계를 다룬 팬픽)은 금기이자 관습이며, 산업이 묵인해 온 비공식적 통로다. 팬들은 ‘실제로는 아니지만’이라는 전제를 깔고 퀴어적 관계를 서사화한다. 서사는 현실이 되는 순간 부서진다. 팬들은 자신의 아이돌의 성적 지향이 입에 오르내리는 논란에 불편해하고, 산업은 침묵하거나 ‘정정 보도’를 한다. 욕망은 소비되지만 정체성은 은닉된다. 이처럼 K‑팝은 경계 위를 걸어왔다. 산업이 계산기를 두들긴 모호함이자 허용 가능한 수준의 ‘안전한 다양성’이었다.
그럼에도 문틈은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이돌 활동을 마친 후 자신의 정체성을 실질적으로 고백한 이들이 나타났다. 최근에는 현역 아이돌임에도 커밍아웃을 한 사례도 일어났다. 작년 4월 보이그룹 Just B의 배인은 LA 공연장에서 공식적으로 성적 지향을 밝혔다. 관객은 뜨겁게 호응했고 동료 멤버들은 지지했다. “stay bold, stay fierce, and always, always be your true self”라는 그의 메시지는 상상이 아니라 실존하는 정체성의 선언이었다.
하이브의 다국적 걸그룹 캣츠아이는 그 흐름에 물살을 더하고 있다. 이미 작년 3월 멤버 라라가 ‘하프 프룻케이크(half fruitcake)’, 다양한 성별에 이끌리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6일에는 또 다른 멤버 메간이 라라와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던 중 자신이 양성애자라고 말했다. 이로서 캣츠아이는 두 명의 성소수자가 있는 그룹이 됐고, 하이브에서 두 번의 커밍아웃이 일어났다. 라라와 메간의 케이스는 대형 기획사 최초의 커밍아웃이고, 그것이 가장 규모가 큰 케이팝 기획사라는 점이 특이사항이다. 암암리에 추측되거나 팬들의 상상에 맡겨졌던 정체성이 스스로의 언어로 말해졌다는 점에서 중요한 분기점이다.
이런 고백이 가능했던 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떳떳한 믿음일 것이다. 나아가서 구조적 조건을 보면 캣츠아이는 케이팝의 경계에 걸쳐 있는 그룹이다. 캣츠아이는 미국 현지화 그룹으로 LA에 거점을 두고 있다. 한국 사회가 아니라 북미 사회를 배경에 두고 있고, 한국의 문화적 보수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콘텍스트 위에 있다. 그로 인해 좀 더 과감하고 좀 더 틀을 깨는 시도를 양해받을 수 있다. 케이팝에서 일어난 초유의 사건은 케이팝의 중심과 가장 멀리 떨어진 테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것은 서구 시장의 문화적 분위기, 다양성에 대한 대중의 선호와 사회적 압력, 그리고 글로벌한 이미지 전략이 맞물려 만든 공간이다. 정체성의 가시화는 단지 말하는 것이 허용됐기 때문이 아니라 말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실현된 측면도 있다. 그것이 위선이라거나 공허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흔히 자본의 논리는 창조와 신념의 족쇄처럼 여겨지지만, 실은 문화와 예술의 진보를 끌어낸 역설적 사례가 익히 존재한다. 이번 일은 그것이 문화의 윤리적 진보까지 유도한 사례라고 기록할 수 있다. 케이팝의 중심이 글로벌 시장이 되면서, 케이팝은 외부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한국 사회보다 한 걸음 더 빨리 걸어가는 산업이 되었다. 이처럼 윤리적 담론을 실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내고 사회에 제시하는 상황까지 왔다.
물론 질문은 남는다. 캣츠아이의 커밍아웃은 전통적인 케이팝의 구조 안에서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이번 사례는 특정한 문화적 위치와 전략 아래서만 허용된 예외적 공간에 있을지도 모른다. 캣츠아이와 달리 한국에서 데뷔한 유명 아이돌들이 그들과 같은 고백을 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소수자의 정체성이 산업 시스템의 제도화된 창구를 통해 말해졌다는 사실은 사소하지 않다.
K‑팝은 보수적이면서 진보적인 산업이다. 그 모순된 흐름이 맞서는 압력 속에서 경계를 넓히고 환경에 맞춰 진화해 왔다. 그렇기에 소비자의 요구에 영합하는 한편 자신의 정체성을 쇄신할 수 있었다. 팬들이 품던 상상이 실재의 정체성으로 변모하고, 산업은 다시 한번 자신이 무엇인지 묻는 물음 앞에 서 있다. 케이팝은 욕망의 공장이며 윤리의 실험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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