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결집과 김문수-이준석 단일화 논란, 무엇을 가리키나
[김민하 칼럼]
[미디어스 김민하 칼럼] 대통령 선거와 관련, 22일까지 공개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공통적인 흐름이 관찰된다. 보수층의 결집과 이에 따른 국민의힘 김문수,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지지율 상승이 그것이다. 부동층이 줄면서 나타난 현상인데, 예상됐던 흐름이고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동안 윤석열 전 대통령과 명확하게 선을 긋지도 못하던 국민의힘이 자기들이 선출한 후보마저도 강제로 교체하려고 하는 모습에 실망해 떠난 지지층이 ‘미워도 다시 한 번’이란 마인드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정서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첫째는 보수진영 전체의 ‘반-이재명’ 캠페인이다. 지난 TV토론을 기점으로 해서 보수진영의 ‘호텔경제학’, ‘120원 원가 커피’에 대한 공세가 거셌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지지자가 만들어 준 그림이라 기뻐서 활용해 보려고 한 것인데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오해를 불러 일으켜 유감이다’, ‘계곡에서 불법 영업을 하는 상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혹시 커피를 파는 자영업자들이 불쾌했다면 사과드린다’고 했다면 공격의 김은 빠졌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보수진영은 모처럼 ‘할 말이 생긴’ 모양새가 됐다. 내용이 맞든 틀리든, 선거 국면에서 뭐든 ‘할 말’이 있다는 것은 ‘우리 편’을 결집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보수층 결집에 이 논란이 기여한 바가 있다는 게 중요하다.
둘째는 이준석 후보가 TV 토론에서 선전했다고 보는 보수층의 시각이다. 이 역시 ‘할 말’이 생긴 것과 비슷한 맥락인데, 이준석 후보는 토론 당일엔 본인이 그다지 선전했다고 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토론의 내용을 평가해봐로, 허점을 효과적으로 찌르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말꼬리 잡기와 상대방 주장에 대한 예의 없는 일축으로 비춰질만한 대목이 많았다. 그러나 보수 유권자층의 관점에선 이재명 후보를 매섭게 혼내줬다는 이미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준석 후보의 토론 성과를 평가하면서 보수 유권자층 전체의 호응이 활성화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거다.
보수 진영의 대선 논의에서 이 흐름은 자연스럽게 단일화 논의 국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김문수 후보 측은 보수 유권자 층이 결집하면 이준석 후보 측에 단일화를 압박하는 데 긍정적 효과가 더해지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지지율 상승 국면에 지지층이 결집해있다면 승리를 위해 결단하라는 식의 메시지에 힘이 실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정작 이준석 후보는 이날 단일화 거부를 선언했다. 기자회견을 자청한 자리에서 배수의 진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는 이준석 후보의 계산법이 김문수 후보와는 다르기 때문에 나온 행보로 봐야 한다. 이준석 후보는 ‘동탄 모델’을 언급해왔다. ‘동탄 모델’은 소수 제3후보로 출발해 공중전에 기반한 선거 전략을 무기로 2등 후보를 제끼고 이 사실 자체로 동력을 확보해 1등 후보를 무너뜨리는 방식의 전략이다.
이런 관점을 최근 상황에 대입해서 정리해본다면 ‘이준석 게임’의 얼개는 이런 형태일 것이다. 첫째, 1회차 TV 토론 때까지 보수 유권자층이 ‘대안’이라고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의 지지를 확보한다. 10%대 이하 지지율에선 ‘대안’으로 인식되지 않을 것이다. ‘대안’으로 인식되면 보수층 내에서 이준석 후보에 기대를 거는 흐름이 강화되기 시작할 것이다. 둘째, 2차 토론을 거치면서 김문수 후보와 겨뤄볼만한 지지율을 확보한다. 만일 보수 유권자층 내에서 김문수 후보와 이준석 후보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지지율 격차가 좁혀진다면, 이때부터 판단 기준은 당선 가능성이 아닌 후보에 대한 질적 평가가 이뤄지게 될 것이다. 셋째, 3차 토론을 끝내는 시점에서는 김문수 후보를 제치고 보수 후보 가운데 유일한 ‘대안’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1대 1 구도를 형성한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다시 한 번 쓴다. 현실성은 별개의 문제다. 이런 게임이라고 주장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런 상황에 이준석 후보 측은 22일 공개된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1차 목표가 달성됐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여기서 걸림돌이 되는 게 국민의힘과 김문수 후보 측이 펴는 단일화론이다. ‘이준석은 어차피 단일화 대상’이라는 인식이 있으면 2차 목표인 ‘김문수 후보와 겨뤄볼만한 대상’이라는 지위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이준석 후보의 단일화 거부 기자회견은 이런 맥락에서 준비된 이벤트라고 봐야 한다. 토론을 앞두고 단일화를 거부함으로써 ‘이준석은 어차피 단일화 대상’이라는 압박을 ‘탈압박’하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 선언은 앞서 ‘이준석 게임’의 2차 목표 달성을 위한 것이며, 이 목표에 미달하였을 때에도 단일화를 거부할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영역에 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단일화 유인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기에 현재로서는 어떤 경우에도 보수 후보 단일화 가능성은 높다고 말할 수 없다. 두 가지 조건이란 첫째로 보수 후보 지지율 합계가 이재명 후보 지지율을 상회할 것, 둘째로 단일화를 실제로 했을 때 김문수 지지층이 이준석 후보를, 또는 이준석 지지층이 김문수 후보를 거의 온전히 지지할 수 있을 것 등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두 가지 조건 모두 충족되지 않는다. 보수 지지층이 결집 중이니 첫 번째 조건은 앞으로 충족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더라도, 두 번째 조건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우리는 직관적으로도 알 수 있다.
두 번째 조건이 달성되려면 역시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로 지금보다도 훨씬 강력한 반-이재명 캠페인이 보수 진영 전체를 단결시켜야 한다. 지금처럼 보수 일부가 이재명 후보로 누수되기까지 하는 상태라면 내부의 차이는 극복되지 않는다. 둘째로 국민의힘과 김문수 후보가 윤석열 전 대통령이나 김건희 여사 등으로부터 절연하는 등의 조치가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으로선 국민의힘과 김문수 후보가 아무리 주장을 해도 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유권자는 많지 않다. 이미 늦었고 실기했기 때문이다.
결국 격차는 줄어도 구도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지금 그렇다는 것이지 남은 기간 내내 그럴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보수 진영의 조건은 어느 정도 고착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추가 변수를 제공할 수 있는 주체는 상대 진영, 즉 더불어민주당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후보가 유리한 조건에 안주하지 말고 다양한 상황에 대비해 최선의 전략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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