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3학회, 미디어 공공성·산업 해치는 정치권력에 "손떼라"

합의제 방통위 수명 다했다 판단 차기 정부에 '독임제 미디어 통합부처' 제안 공영방송 개편안 '정당·대통령 추천 이사 절반 이하로' 미디어 규제체계는 '대통령 직속 사회적 논의 기구에서'

2025-05-15     송창한 기자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3대 미디어학회가 차기 정부 미디어 거버넌스 모델로 '독임제'(장관 권한 행사 모델) 부처를 제안했다. 방송통신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문화체육관광부로 분산된 미디어 정책을 1개 독임제 부처로 통합하자는 제안이다. 미디어 학자들이 합의제 기구인 방통위의 수명이 끝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학자들은 미디어 공공성 강화와 산업 진흥을 위해서는 정치권력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합의안과 별개로 학자들 사이에서 우선적인 공영방송 과제를 해소해야 다른 과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KBS 본사를 서울에서 세종시로 이전하고, EBS 수신료 배분율을 대폭 늘려 수신료 인상의 명분을 만들어내자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15일 한국언론학회·한국방송학회·한국언론정보학회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새 정부의 미디어 정책 방향'을 주제로 특별 정책 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미디어스)

15일 한국언론학회·한국방송학회·한국언론정보학회는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새 정부의 미디어 정책 방향'을 주제로 특별 정책 세미나를 개최하고 미디어 정책 거버넌스, 공영방송 거버넌스, 미디어 규제체계 개편 방안을 내놓았다. 이날 세미나에서 제시된 안은 3학회가 미디어정책특별위원회를 구성해 4개월가량의 논의를 거쳐 합의한 내용이다. 3학회가 단일 정책안을 내놓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학회의 미디어 거버넌스 개편안은 '미디어·ICT 통합 독임제 부처+공영미디어위원회+대통령실(청와대) 수석실'로 정리된다. 방통위 정책 기능에 과기정통부 2차관 산하 유료방송·전파 정책 기능, 문체부의 콘텐츠 산업·영상광고 정책 기능을 더한 통합 독임제 부처(가칭 정보미디어부)를 두고, 해당 부처 안에 공영방송을 관할하는 공영미디어위원회를 설치하는 안이다. 

3학회는 공영미디어위원회를 9~11인의 상임·비상임 위원으로 구성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회 추천을 4인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실 수석실은 미디어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다. 미디어 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대통령실 차원의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3학회의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편안은 정당과 대통령이 추천·임명할 수 있는 이사의 수가 전체의 2분의1을 초과하지 않도록 제한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공영방송 사장 선출 과정에 시민참여 절차를 보장하도록 제도를 개선하자고 했다. 3학회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 이사회와 사장에 대한 친정부 인사 교체 시도 등 공영방송이 정치적 도구 또는 투쟁의 장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3학회는 공영방송의 자율성·독립성 보장 방안으로 ▲편성규약 위반 시 처벌 조항 ▲편성위원회 의무화 조항 ▲주요책임자에 대한 임명동의제 조항을 법에 신설하자고 했다. 

미디어 규제체계는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수평적 규제체계)를 원칙으로 사회적 논의 기구를 설치해 논의하자고 했다. 발제를 맡은 유홍식 중앙대 교수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 빠른 시일 내에 대통령실 또는 총리실 산하에 사회적 논의 기구를 설치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끌어 모아 미래지향적인 미디어 규제체계 개편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 3학회 '새 정부의 미디어 정책방향' 자료집

토론자로 참석한 이남표 경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선거를 앞두고 3학회가 통합적인 정책안을 만들어 제시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낮은 수준이지만 첫 협업의 결과물"이라며 "다른 입장이 있었음에도 일단 최대공약수를 만들어 합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빨리 해야 할 일은 어떻게 되든 미디어 정부 부처를 하나로 합치고, 그 다음 공영방송 거버넌스와 미디어 규제체계를 개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교수는 공영미디어위원회 방안에 대해 '게토화'를 우려했다. 이 교수는 "공영미디어위원회가 얼마나 효과적·자율적으로 공영방송 업무를 맡을 수 있을지 디테일이 필요하다"며 "정부 부처는 조직과 예산으로 힘을 쓴다. 갈등·쟁점이 있는 공영방송 관련 업무를 지금보다 더 많은 위원들이 모여 수행한다고 했을 때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정책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구석에 몰려 소규모 위원회로 전락, 잊혀지거나 예산도 거의 지원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은 정치권력의 미디어 개입을 최소화하고 빠른 시일 내에 미디어 거버넌스와 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산업 공공성·진흥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문위원은 "3개의 정책과제를 관통하는 행간은 '정치·정파성의 개입을 최소화해달라'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미디어 정책과 시장 환경이 정치·정파성에 의해 얼마나 피폐화되었는지에 대한 비판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문위원은 "거버넌스든, 공영방송이든, 규제체계든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라며 "남은 것은 실천적 문제"라고 했다. 

(사진=연합뉴스)

이 전문위원은 "미디어 거버넌스 논의가 2017년, 2022년, 올해까지 이 짧은 시간에 3번이나 있었다. 거버넌스 구조를 효과적으로 개선하지 못해 이 사달이 나고 미디어산업이 쇠락한 것"이라며 "2009년 통합방송법 연구반이 발족했고 매년 정책연구가 돌아갔지만 16년이 흐른 현재 규제체계 개선은 없었다"고 했다. 이 전문위원은 "공영방송도 마찬가지인데 2000년부터 21대 국회까지 발의된 방송법 개정안은 450건, 그 중 공영방송 관련은 38건"이라며 "2014년 KBS 사장에 인사청문회를 적용하는 것, 2025년 수신료 통합징수법 딱 두 개 통과됐다"고 지적했다. 

홍종윤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차기 정부가 공영방송 문제만큼은 반드시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미디어 시장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 편입돼 있는데, 가장 먼저 무너질 곳이 공영방송이라고 생각한다"며 "공영방송 섹터만은 반드시 혁신해야 한다"고 했다. 

홍 교수는 '공영방송 협약제도'를 주문했다. 공영방송 협약제도란 공영방송사가 공적 책무에 관해 정부와 일종의 '계약'을 맺고 이행 정도를 평가받는 제도를 말한다. 홍 교수는 공영방송 이사회를 '집행이사회'로 바꿔 각 협약 부문별로 실질적인 책임을 지도록 하고, 공영미디어위원회와 '시민평의회'의 평가를 받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홍 교수는 현 시청자위원회를 지역별·직능별·세대별 '시민평의회'로 확대해 공영방송의 협약 이행 정도를 평가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공영방송 3사 사옥

주재원 한동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와 수신료 인상 명분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기 위한 신뢰도 제고 방안이 필요하다며 KBS 본사를 세종시로 이전하고 기존 3%에 불과한 EBS 수신료 배분율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했다. 

주 교수는 "공영미디어 위상 회복을 위해서는 수신료 재원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국민 신뢰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수신료 정상화가 이뤄질 수 없다"며 "KBS 본사를 빼내서 세종시로 가져가는 파격적 시도를 통해 지역균형발전에 기여하는 공적미디어의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나아가 EBS 수신료 배분율을 파격적으로 높여 수신료 인상 명분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주 교수는 "공영방송의 존재 목적은 사회적 권력 불균형의 완화에 있다. 젠더, 계급의 문제는 지난 10~20년 완화되어 왔지만 지역 간 불균형만큼은 격차가 더 벌어졌다"며 "2011년 BBC가 런던 제작부서를 맨체스터로 이전했을 때 반발이 심했지만 결국 맨체스터에 미디어시티가 구축돼 1만 명이 넘는 일자리를 창출 중이다. 세종시에 공공미디어클러스터를 조성하는 파격적 정책과제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미디어스’를 만나보세요~ 구독하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