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의 독립성·자율성 보장을 위한 입법 방안 제언
[기고]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
[미디어스 안정상 칼럼] 공영방송이 공적 가치, 공적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장 선임, 이사 구성과 같은 지배구조에 대한 올바른 법·제도를 구비하여 어떠한 안팎의 압력이나 간섭에도 흔들리지 않는 독립성을 견고히 하고 내부의 자율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즉 공영방송이 공영방송다운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고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오로지 국민을 위한 방송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민주적 절차에 의한 지배구조 형성을 통해 독립성과 자율성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지난 21대 국회 후반기와 22대 국회 개원 직후에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법안 처리가 시도되었으나 대통령의 재의 요구(거부권 행사)로 다시 국회에 돌아와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해 부결된 바 있다.
최근 들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13인의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법안에 대해 공청회를 개최하고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해당법안은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로서 일명 ‘방송4법’이라 불리고 있다. 방송4법 개정 추진에 즈음하여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사장 선임 우선주의로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제출되었던 법안들은 이사회 구성을 위한 ‘이사’ 선임 방식에 대한 논의를 우선시 하고, 후차적으로 이사회가 특별다수제 등의 방식으로 ‘사장’을 선임한다는 발상에 매몰되어 왔다.
그러나 정작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훼손은 정권의 낙하산 사장 임명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이사회는 들러리에 불과했다. 따라서 민주적 절차를 통한 공영방송 사장 선임에 대한 입법 방안 마련을 우선 순위에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청자 중심의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장 선임 절차와 기준을 제대로 마련하게 된다면 이사 선임의 비중은 현격하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사장 선임을 우선 순위에 두고 법 개정을 추진하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정치적 후견주의를 배제하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그동안 여·야 정치권이 관행적으로 공영방송 이사 추천·선임에 개입해 왔고, 여권 측 다수의 이사로 구성된 이사회의 형식적인 선임 절차를 통해 대통령실이 내려 보내는 낙하산 사장을 앉히는 식의 강력한 정치적 후견주의가 작용해 왔다.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국회 여야 추천 몫이 절반 또는 그 이상의 비율을 차지한다면 이는 법적으로 정치적 후견주의를 강화시켜 주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공영방송 이사회는 정파적 이해관계에 매몰되어 정치적 논란의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 후견주의 비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회의 이사 추천은 배제하거나 피추천인 수를 총원의 5분의1 이하로 줄이는 것이 합당하다.
셋째, 이사회 의결절차를 통한 사장 선임이 갖는 부작용을 직시해야 한다.
현재 제출되어 있는 법안 중 대부분의 법안은 추천일(안건상정) 30일 이내에 2회 이상 특별다수제(재적이사 3분의2 이상 찬성)로 임명제청할 사장 후보자를 선임하지 못하면 마지막으로 결선투표(일반 다수결)로 최종 후보자를 임명제청한다.
그런데 개정안에 따른 이사회 구성 방식대로라면 국회 여야 추천 이사의 수가 비등하여 특별다수제(13명 중 최소 9명, 15명 중 최소 10명 찬성)로는 최종 후보자를 선정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에, 결국 결선투표에서 단순 다수득표자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이때 이사의 수가 1인이라도 많은 특정 진영은 30일 동안 형식적으로 두 차례의 특별다수결 절차에 응하여 후보자 결정의 실패를 기다렸다가 결선투표를 통해 단순 다수결로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을 뽑아 최종 임명제청하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진영논리에 따라 사장이 정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무늬만 다를 뿐 결과는 다수의 이사를 보유한 특정 정치세력에 의해 낙하산 사장을 뽑는 ‘현재’와 다를 바 없게 된다. 한마디로 법 개정의 의미가 없다는 의미다.
넷째, ‘공영방송 사장은 시청자인 국민의 손으로 뽑는다’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사장 선임 방식이 긴요하다.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구성되는 사장추천위원회(사장추천시청자평가위원회)에서 각 후보자에 대해 충분히 검증한 후 평가한 점수 70%와 이사회에서 평가한 점수 30%를 합산하여 최고득점자를 최종 사장 후보자로 임명제청하는 방식이 시청자인 국민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이 방식이 최소한 “공영방송 사장은 시청자인 ‘국민’의 손으로 뽑는다”는 가치를 구현한다는 의미가 있고, 오로지 평가점수에 의하여 사장 후보자가 결정되기 때문에 이사회 구성에 따른 진영논리가 작용하기 힘들어 사장 선임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본다.
다섯째, 공영방송의 공공·공익성 실현에 필수적인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장 및 이사 선임 개선과 함께 부수적인 법적 장치 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
즉 방송의 보도·제작·편성의 자율성 보장을 위한 편성위원회 설치와 편성위원회의 편성규약 제·개정권 부여, 이사 및 집행기관(사장·감사·부사장 등)의 직무상 독립과 신분보장, 이사회 운영의 투명화, 이사회의 사장 ‘면직(免職)’ 제청 요건의 엄격화, 공정·공평한 시청자위원회 구성 요건 등의 규정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법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현재와 다를 바 없는 결과를 초래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빠르게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공영방송을 정권의 전유물로 전락시키는 것을 합법화시켜 줄 수 있는 시간을 앞당겨 주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망각해선 안 될 것이다.
정권과 정부가 변경되더라도 어떠한 정치권력이나 정치집단의 개입이나 간섭으로부터 철저하게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확보되고, 공영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되돌려 놓기 위한 올바른 법 개정이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다.
입법부인 국회는 스스로 정치적 후견주의를 배제하거나 최소화하여 공영방송을 운영하고 관리·감독하는 사장, 이사 선임이 민주적 절차와 방식에 따라 이뤄질 수 있는 법·제도적 장치를 조속히 마련하는 것이 언론개혁의 초석(楚石)이라는 점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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