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전략이 아닌 당권 투쟁의 맥락
[김민하 칼럼]
[미디어스=김민하 칼럼] 국민의힘에서 최근 일어나는 일은 이 집단이 통치 기능을 완벽히 상실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국민의힘은 한국의 대표적 보수정당으로서 우리 사회 통치 세력의 한 축을 담당해왔고 여전히 주류 중의 주류가 모이는 곳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전망을 충분히 할 수 있게 되었다.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향해 주장하는 것은 대부분 맞는 얘기다. 김문수 후보는 어찌됐든 국민의힘에서 정상적인 경선을 거쳐 선출된 인사이다. 한덕수 전 총리는 당 외의 인사로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본선 후보 등록은 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는 인사이다. 논리적으로만 보면 김문수 후보 입장에선 이런 인사와 단일화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
한덕수 전 총리는 김문수 후보가 자신과 단일화를 하기로 ‘22차례’나 공언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김문수 후보는 이에 대해서도 반론을 할 수 있다. 단일화를 하지 않겠다고 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서로 따로 후보 등록을 하고 일주일 정도 선거운동을 한 다음에 단일화를 하자는 게 김문수 후보의 주장이다.
물론 이 주장에는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 한덕수 전 총리가 그 ‘일주일’을 버텨내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거다. 대선 후보는 선거 초기 벽보, 공보물, 유세차 및 유세단 등을 꾸리기 위해 상당히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데, 무소속 후보는 이의 대부분을 사비로 감당할 수밖에 없다.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한덕수 전 총리로서는 결국 후보 등록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거고, 그러면 김문수 후보 입장에선 ‘자동으로 단일화 되는’ 효과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어쨌든 이 ‘노림수’에 대해 반격을 하고 싶으면 한덕수 전 총리가 비용 지출을 감수하고 후보 등록을 하겠다고 선언하면 된다. 그러나 한덕수 전 총리는 끝까지 단일화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후보 등록을 안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쪽에는 이쪽 나름대로 후보 등록 전 단일화 및 국민의힘 입당을 거쳐야 국민의힘의 돈과 자원을 쓸 수 있다는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계산은 너무나도 투명하게 노출되어 있는데, 그게 바로 약점이다. 따라서 김문수 후보는 세 가지 주장만 하면 된다. 첫째, 나는 단일화를 안 하겠다고 한 적 없다. 둘쨰, 한덕수 당신이 도대체 뭐냐(후보도 아니고 당이나 세력 소속도 아닌 사람과 지금 내가 왜 단일화 해야 하느냐는 취지)? 셋째, 한덕수 당신이 한 게 도대체 무엇이 있느냐(나는 경선을 치르면서 비용을 지출했고 국민의힘의 전신이 되는 정당에 나름대로 기여한 바도 많다는 취지)? 실제 김문수 후보가 공개 담판에서 내놓은 주장의 얼개는 이러한 논리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한덕수 전 총리는 전혀 협상다운 협상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껏 한다는 얘기가 단일화 협상은 국민의힘에 일임한다는 것인데, 오히려 이러한 비겁한 태도가 상황을 더 파국으로 몰고 가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김문수 후보 측의 ‘당무우선권’ 논리와 충돌하며, 결국 당 지도부와 김문수 후보의 치킨게임 국면을 형성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후보 간 협상이 되어야 할 문제가 당 지도부와 대선 후보 간 갈등으로 번지면서 ‘단일화’ 논란은 ‘후보 교체론’이 되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틀간 당원 및 국민 대상 여론조사를 실시해 김문수 후보와 한덕수 전 총리에 대한 선호를 묻고, 한덕수 전 총리를 선호하는 응답이 많으면 사실상 후보를 교체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김문수 후보로서는 법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면 이 사안의 결론은 둘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첫째는 당 지도부가 결국 김문수 후보를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일단 등록하는 것이다. 둘째는 법정 다툼의 결과로 국민의힘이 대선 후보 등록을 포기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그나마 이후 대응이 가능하다. 그러나 후자의 결론으로 치닫게 되면 현 지도부는 보수 정치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입장에선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이 사안을 따라가다 보면 큰 의문에 부딪치게 된다. 이렇게 해서 과연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될까? 이미 한덕수 전 총리 개인의 확장성부터가 의문인 상황이었다. 시너지 효과는 사실상 없을 것이다. 오히려 역효과를 우려해야 할 상황이다. 보수 지지자들도 ‘꼴보기 싫다’는 마음을 갖게 할 만한 장면이 연일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단일화 논의를 왜 하고 있는 것일까? 보수언론들까지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문제다. 결국 대선 전략이 아니라 당권 경쟁의 맥락이 아닌가? 당권 장악의 의지가 없는 인물을 대선 후보로 세워 기득권을 유지해보려던 친윤계 인사들이 그 중간 단계에서 당권을 다퉈보려는 또다른 인물들로부터 김문수 후보를 인터셉트(?) 당한 게 이 사태의 본질 아니냐는 거다.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어 놓고도 제대로 된 반성도, 혁신도 없는 사람들이 대선 대응에 있어서도 차기 당권과 지방선거를 비롯한 주요 선거 공천권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이런 집단에게 통치를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할 유권자가 얼마나 있을까? 그렇기 때문에 국민의힘은 더 이상 통치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지금 국민의힘은 정당도 아닌, 그저 모리배 집단에 불과한 것 같다. 이런 자들이 보수 정치의 대표주자인 양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매우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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