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의 문화적 전유와 무지에 대한 책임

[culture critic] 걸그룹 '키스오브라이프' 생일 라이브 방송

2025-04-19     윤광은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이달 초 걸그룹 ‘키스오브라이프’ 멤버 쥴리의 생일 라이브 방송이 해외에서 논란이 됐다. 흑인 래퍼들처럼 꾸미고 파티를 하는 콘셉트의 방송이었는데, 이것이 미국 흑인 커뮤니티 문화를 가져다 쓴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른바 문화적 전유에 관한 논란이다. 문화적 전유는 특정 문화권에서 다른 문화권의 요소를 차용하는 것으로 주로 다수자 집단이 소수자의 문화를 재현하는 맥락에서 문제가 되고는 한다.

왜 다른 문화를 따라 하는 것이 문제가 될까. 오히려 그 문화를 존중하는 것일 수도 있고, 더 많은 사람이 문화를 나누면서 문화가 풍부해지는 길은 아닐까. 실제로 그런 입장에서 이 논점을 파악하는 의견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논란이 문화적 아이콘이 전파되는 것과는 다르고, 해당 문화 구성원들의 정체성과 이어진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걸그룹 키스오브라이프 [S2엔터테인먼트 제공]

박스 티와 뉴에라 모자, 체인 목걸이 같은 힙합 패션은 어느 나라에서나 쓰이고 그런 걸로 말이 나오는 경우도 본 적이 없다. 키스오브라이프는 흑인 래퍼들의 말투와 억양을 따라 하고 어두운 빛깔로 얼굴을 화장하기도 했다. 고정관념을 통해 형성된 특정한 문화권에 있는 인종의 정체성을 흉내 낸 것이다. 당사자들로선 자신들이 희화화된다고 느낄 수 있다. 문화적 전유 같은 개념을 사유하지 않더라도, 문제가 훨씬 직관적이고 인종적인 이슈에 걸쳐 있다.

키스오브라이프 멤버들에게 나쁜 의도가 있었을 리는 없다. 사과문도 두 차례에 걸쳐 올라왔고 논란이 일단락됐다. 얘기를 더 키우며 따지고 들 것은 없다. 눈여겨볼 건 이번 일이 유사한 논란의 반복과 닿아있다는 사실이다. 문화적 전유란 개념이 한국의 언론지상에 오른 것은 케이팝이 세계화된 시기와 맞물린다. 십여 년은 지난, 뿌리 깊은 논점이다. 대표적인 것만 거론해도 마마무의 ‘블랙 페이스’ 논란, 오마이걸 유아 뮤직비디오의 북아메리카 원주민 이미지 차용, 블랙핑크 뮤직비디오의 힌두교 신상 소품 등이 있다. 노라조는 2010년에 나온 노래 ‘카레’가 인도 문화를 희화화했다는 비판이 뒤늦게 일어 사과를 했었다.

블랙핑크 뮤직비디오 '하우 유 라이크 댓' 편집 전과 후 (힌두교 신 가네샤의 모습이 있는 블랙핑크의 뮤비(왼쪽)와 삭제된 후의 장면) [네티즌 트위터 캡처]

이건 더 큰 관점에서 봐야 하는 현상이다. 타 문화권에서 금기시되는 코드에 대한 인지와 조심스러운 접근이다. 문화적 전유 역시 그 안에 포함되는 쟁점이다. 예컨대, 문화적 전유는 아니지만 저 BTS 멤버들 역시 나치 군복 모자를 쓰고 찍은 화보가 지탄을 받고, 집단 자살 사건을 벌인 해외 사이비 교주의 육성을 노래에 샘플링해 사과한 적이 있다. 사례가 누적되면서 케이팝 기획사들도 학습 효과를 겪고 예방에 주의를 기울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물론 재작년 뉴진스의 ‘스시랜드’ 발언이 있었던 것처럼 잠재적 논란이 불식된 것은 아니고, 케이팝은 이런 문제에 관해 아직도 배워 가는 단계에 있다. 다만, 블랙 페이스 같은 노골적인 인종차별이 이뤄지는 경우는 이제 없는 것 같다. 한 번 항의를 빚은 문화권에 관한 사례가 재연되는 일도 드물다.

키스오브라이프는 최근 해외 팬덤이 늘어난 ‘라이징 스타’ 임에도, 소속사 S2엔터테인먼트가 규모가 작은 회사라서 사건이 빚어진 것 같다. 미국 흑인 커뮤니티의 문화적 요소를 재현하는 건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 익히 알려진 편이다. 몇 년 전엔 박재범이 드레드 헤어를 했다가 비난을 받고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적이 있다. 그럼에도 기본적인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건 소위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이슈를 학습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이 사내에 부재하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그룹은 재작년 한 멤버가 연습생 시절 흑인 비하 표현(N워드)이 나오는 팝송을 커버한 영상으로 사과를 한 적이 있음에도 같은 논란이 벌어졌다. 생일 라이브 방송 같은 이벤트는 회사가 기획하거나 최소한 컨펌을 통해 이루어진다. 회사의 미흡한 역량을 아티스트들이 비난을 받으면서 책임을 진 성격이 있다.

이미지 출처=Pixabay.com

무지는 죄가 아니라 아직 앎을 얻지 못한 상태일 뿐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알아야 하는 상태에서 알려고 하지 않는 건 책임 회피다. 앎은 종종 평온한 관계를 위한 초석이 된다. 상대가 어떤 말과 행동을 싫어하는지, 만남에서 갖춰야 하는 예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의도치 않은 무례’를 피할 수 있다. 케이팝은 해외의 다른 문화권들과 일정한 관계를 맺은 지 오래다. 월드 투어로 거두는 매출을 자랑하기 이전에, 사과를 통해 무지를 수습하거나 배워가겠다는 빈말을 덧붙이는 것이 제대로 책임을 지는 행동인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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