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성소수자 표현·집회 자유 금지 헌법 개정
‘성소수자 행사 금지’ ‘남성·여성 성별 제한’ 여당 발의안 통과…야당·시민단체 저지 실패 헝가리 정부 "성별은 생물학적 현실에 기반"
[미디어스=노하연 기자] 헝가리가 헌법을 개정해 성소수자(LGBTQ+)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남성, 여성 성별만 법적으로 인정하고 성소수자 단체의 공개 행사를 제한하도록 했다.
로이터 통신, ABC뉴스 등에 따르면 14일(현지시각) 헝가리 의회에서 헌법 개정안은 찬성 140표, 반대 21표로 의결 정족수(2/3)를 넘겼다. 헌법 개정안은 오르반 빅토르 총리가 이끄는 여당 피데스가 주도해 상정, 처리됐다.
개정된 헌법에 “아동의 신체적, 도덕적, 정신적 발달에 대한 권리가 다른 모든 권리보다 우선한다”고 명시됐다. 평화적 집회·표현의 자유보다 ‘아동 보호’가 우선된다는 점을 들어 성소수자 단체의 행사 금지를 정당화한다는 얘기다.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성소수자 권익 보호를 위한 부다페스트 ‘프라이드' 행진에 대해 아동에게 해롭다고 주장해왔다.
이번 헌법 개정은 지난 3월 헝가리 의회를 통과한 집회·시위 관련 법률 개정안의 연장선으로 부다페스트 프라이드 행진을 포함해 성소수자가 개최하는 모든 공개 행사가 금지된다. 헝가리 정부는 금지된 집회·행사에 참석한 사람을 안면 인식 도구로 식별하고, 최대 546달러(약 77만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한 개정 헌법은 ‘남성과 여성, 두 가지 성별만 인정한다’고 규정했다. 즉 트랜스젠더나 간성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는 ‘어머니는 여성, 아버지는 남성’이라는 조항을 신설한 2020년 개정 헌법을 확대한 것으로, 사실상 동성 커플의 양육권을 박탈했다.
개정 헌법은 또 유럽연합(EU) 이외 국가 국적과 헝가리 국적을 동시 보유한 이중국적자가 안보에 위해를 가했을 때 최대 10년간 시민권을 정지할 수 있도록 했다.
졸탄 코바치 정부 대변인은 개정안 투표 전 “이번 개정은 프라이드 행사 같은 것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하려는 조치”라며 “개인의 자기표현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법적 규범이 생물학적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과 야당 의원들은 표결을 막기 위해 의회 주차장 입구를 봉쇄, 저항한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 모멘텀의 다비드 베되 대표는 “오르반 총리와 피데스가 지난 15년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해체해왔고 2~3개월 동안 가속화됐다”며 “선거를 앞두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지 인권단체와 법조인들은 헝가리 정부가 아동 보호를 명분으로 LGBTQ+ 커뮤니티를 희생양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넬 되브렌테이 시민자유연맹(HCLU) 변호사는 ABC뉴스에 “아동 권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순수한 정치 선전”이라며 “성소수자를 국가 공동체뿐 아니라 인간 공동체에서도 배제하려는 것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프라이드 행사 주최 측은 웹사이트에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수년간 집권 여당의 표적이 되어 왔다’며 ‘성소수자 단체의 집회를 금지하려 한다면 다른 단체의 평화 시위도 금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고 적었다. 인권단체 헝가리헬싱키위원회와 시민자유연합, 국제 앰네스티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를 향해 헝가리를 유럽연합법 위반에 적용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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