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파괴 스스로 증명한 한덕수

[김민하 칼럼]

2025-04-08     김민하 저술가

[미디어스=김민하 칼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태를 보며 든 생각이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4월 18일 퇴임하는 문형배,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임으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여러 측면에서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행동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첫째로 권한 행사 자체의 문제다.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은 대통령 추천 몫의 헌법재판관이다. 따라서 후임 역시 대통령이 추천해야 한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는 현상유지라는 소극적 차원에 그치는 것이 바람직 하다는 게 다수설이다. 대통령 추천 몫의 헌법재판관을 권한대행이 추천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지금까지 다수의 헌법학자들이 부정적 해석을 내놓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따라 이전의 대통령 권한대행도 국회 선출이나 대법원장 추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한 일은 있어도 대통령 추천 헌법재판관을 임명한 일은 없다. 그런 차원에서 한덕수 권한대행의 행위는 월권적이다.

둘째로 인물의 문제이다. 이완규 법제처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특히 가까운 사이로 ‘호위무사’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지난해 12월 3일 불법적 비상계엄이 선포됐다가 해제된 직후인 4일 밤 대통령 안가에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 이상민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과 함께 회동을 한 당사자이다.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행적을 보면 이들의 행적에 의심스러운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지난 1월 23일 한국일보 보도에 의하면 계엄이 선포됐다 해제된 12월 4일 점심 윤석열 전 대통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이후 김용현 전 장관은 휴대폰과 노트북 등에 대한 증거인멸을 부하에게 지시했다. 공교롭게도 바로 이날 정권 핵심부의 법 전문가들에 의한 안가 회동이 이뤄진 것이다.

대통령 안가는 권력 핵심의 허가가 있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다. 여기 모인 사람들이 무엇을 논의했는지 밝히는 것은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의 전후 사정을 알아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이완규 법제처장은 지난해 12월 17일 국회에 출석해 12월 3일 이후 휴대폰을 교체했다고 실토했다. “불편한 오해를 받기 싫었다”는 말도 안 되는 해명은 무엇도 설명해주지 못한다. 이런 인물을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하는 걸 누가 용납하겠는가?

셋째로 맥락의 문제이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이완규 헌법재판관설’은 이미 정치권에 나돌던 소문이라고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상이었다는 거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는 ‘유훈통치’라는 말까지 쓰고 있다.

이완규 법제처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의심되는 것은 윤석열 정권 시기 집권 세력의 구상이 더 구체적이었을 가능성이다. 지난달 31일 국민의힘은 한덕수 권한대행과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 후임을 지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1일 두 재판관 후임 2명과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함께 임명해 9인 체제를 완성한 상태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론을 신중하게 내려야 한다는 ‘법조계’의 의견을 소개했다. 사실상 훈수를 둔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의 논의 수준을 예상해보면 사실상 누구를 임명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집권 세력 내에서는 이미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조선일보 보도에 의하면 이완규 법제처장은 한덕수, 최상목 권한대행 체제에서 정부의 실질적 법률 고문 역할을 했다고 한다. “두 대행에게 민주당 등이 단독 처리한 법안들에 대한 재의 요구권(거부권) 행사와 관련해 조언했고, 최 전 대행에게는 헌재가 한덕수 총리에 대한 탄핵 심판을 선고하기 전까지 마은혁 헌법재판관이나 마용주 대법관을 임명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최상목 부총리는 권한대행 시절 마은혁 후보자를 제외한 두 명의 헌법재판관을 임명해 당시의 집권세력으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다. 임명 직후 열린 국무회의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인사가 있었을 정도였다. 이 자리에서 이완규 법제처장은 “국무회의에 회의를 느낀다”며 최상목 당시 권한대행이 국무위원들과 상의없이 헌법재판관들을 임명한 것에 대해 반발했다. 즉, 이 반발 이후 최상목 권한대행은 이완규 법제처장과 소통하며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지연시켰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지연은 위헌적 행위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수 차례나 확인한 사안이다. 앞서의 정황은 권한대행 체제에서 위헌적 행위가 반복된 배경에 이완규 법제처장의 조언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앞서 안가 회동 등의 정황을 볼 때 헌정을 파괴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정파적 법률적 이익 수호를 위한 것으로 의심된다. 그렇다면 한덕수 권한대행의 오늘 결정은 헌법을 수호할 의지가 없는 이를 헌법재판관으로 보내는 것임과 동시에,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 추종자들에 의하여 최근까지 이어져 온 헌정 파괴 행위에 동조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한덕수 권한대행이 8일 이와 같은 결정을 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날은 국무회의에서 대선일을 확정하고 각 부처에 관련 결정을 하도록 한 날이다. 사실상 대선 관리를 시작한 셈인데, 쉽게 말하면 ‘이제 내가 심판인데 선수가 어쩔 거냐’는 메시지인 셈이다. 그러나 원칙 앞에서는 다른 도리가 없는 법이다. 헌정을 무시하고 짓밟는 세력은 오로지 헌정 질서를 통하여 단죄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날, 한덕수 권한대행은 그 자리에 있을 아무런 자격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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