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집회 참여' 따져본다는 KBS 감사실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 D-1 사내 공지 취업규칙 '정치단체 참여금지' 근거로 탄핵 찬반 집회 참여 금지 "헌법 위배" 감사실 "성격·주최측·가담 정도 종합 판단"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KBS 감사실(감사 정지환)이 취업규칙을 확대 해석해 구성원들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KBS 감사실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복무 유의사항이라며 '정치 단체 참여 금지' 지침을 내세웠다.
KBS 감사실은 정치단체 집회 참여에 대한 취업규칙 위반 여부는 집회 성격과 주최 단체 등에 따라 종합해 판단하고 있다며 이번 공지는 탄핵심판 전후 발생할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3일 KBS 감사실은 사내망에 '직원의 정치단체 참여 금지 등 복무 관련 유의사항 안내'를 게재하고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와 관련해 "모든 직원은 정치단체 참여금지의무 및 품위유지의무 등을 준수하여 복무기강이 훼손되지 않도록 유의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KBS 감사실은 "특정 정당 지지·반대 운동, 정치 집회 등의 활동에 참여하여 정치단체 참여 금지의무 위반 논란에 휘말리지 않도록 유의", "근무시간 엄수와 근태관리 등 근무 질서 준수"를 복무 관련 유의사항이라고 공지했다.
KBS 감사실은 복무 유의사항의 근거로 취업규칙을 들었다. 취업규칙 제7조(정치단체 참여금지)는 '직원은 정치활동에 참여하거나 정치단체의 구성원이 되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KBS 취업규칙 제5조는 '직원은 공사의 명예와 위신을 손상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되며 상호 인격을 존중하여 직장의 질서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KBS 내부에서는 '정치 집회 참여'를 금지하는 지침이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KBS 구성원 A 씨는 미디어스에 "'정치 집회'라는 것은 자의적일 뿐 아니라 취업규칙은 정치활동이나 정치단체 구성원이 되는 것을 제한하고 있지, '집회 참여'는 아니다"라며 "심지어 노조법에서도 1997년 정치활동 금지 조항이 삭제됐다. KBS 감사실이 노조법과 사규를 상회하는 지침으로 직원들을 감사하겠다고 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구성원 B 씨는 "취업규칙상 정치단체 참여금지는 어떤 경우에는 굉장히 협소하게 적용된다. 예를 들어 이영풍 전 기자, 현재 KBS 주요 간부 중 과거 국민의힘이나 보수진영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 같은 사례가 너무 많다"며 "감사실이 취업규칙의 문구를 놓고 어떻게 해석하느냐, 자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고 했다. 박장범 KBS 사장은 최근 업무지시 불이행, 외부인(보수 유튜버) 불법행위 유발 등으로 해임된 이영풍 전 기자의 해임처분을 취소했다. 이 전 기자는 국민의힘 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하고 유튜브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하고 있다.
B 씨는 정치집회 참여 금지에 대해 "단순히 정치활동과 관련한 문제냐는 해석상의 논란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B 씨는 "집회 참여는 정치활동을 떠나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리다. 그리고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관련 집회 참여는 단순히 특정 정당의 이해를 담고자 하는 문제가 아니라 헌법 준수와 관련한 문제라고 개인이 판단할 수 있다"며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관련 집회 참여를 특정 정당의 지지와 반대 문제로 치환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구성원 C 씨는 "탄핵 찬성이든 반대든 정치단체에 가입하는 게 아니지 않나. 정당 행사를 같이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안내를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공영방송사 직원이 정치적으로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정치적 가치관을 프로그램과 뉴스에 이를 투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당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 것인데 이런 것까지 제한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했다.
C 씨는 "KBS 직원도 누구나 가치관이 있는데 그것을 프로그램에 투영하지 않는다는 신뢰와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회사가 월급주고 제작하게 하는 것 아닌가. 갑자기 그 신뢰가 없는 것처럼 실현 가능하지도 않은 안내를 한다"며 "오히려 사측이 정치적 가치관을 프로그램에 투영시킨 것 아닌지 돌아보길 바란다. '추적 60분' 불방 논란 같은 게 정치적 이익과 가치관을 투영시킨 행위로 볼 수 있다"고 했다. KBS는 지난 2월 극우세력의 공격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추적 60분-계엄의 기원 2부'를 방송 하루 전 편성에서 삭제한 바 있다.
최혜인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KBS 취업규칙 제7조가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 노무사는 "모든 정치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조항에 따르면 헌법에 있는 집회·결사의 자유는 무용해지는 것"이라며 "헌법과 취업규칙이 충돌하는 상황이 되어 해당 취업규칙은 잘못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만약 KBS 구성원이 집회에 나가더라도 해당 취업규칙을 근거로 징계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최 노무사는 "KBS가 공영방송사이기는 해도 공무원도 아니고 교사도 아닌데 근거법이 없는 상태에서 취업규칙으로만 이렇게 규정해 놓았다"며 "헌법에 반하는 내용이 있는데 이게 효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했다.
김유경 노무법인 돌꽃 노무사는 "취업규칙상 품위유지, 정치단체 참여금지 조항을 이번 집회 참여와 연결시킨 것은 지나치다. 무리하게 취업규칙을 확대 해석했다"며 "예를 들어 KBS 감사실에서는 '민주당이 주최하는 집회'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으나 누가 보더라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전후로 각종 집회에 가지 말라고 협박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고 했다.
김 노무사는 "KBS 취업규칙을 해석해보자면 정당의 당원으로 가입해 활동을 한다든지 하는 본격적인 정치활동에 대한 제한조치인 것 같다"며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집회에 가는 상황에서 '기자니까 가지말라'고 이런 취업규칙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KBS의 의도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고 했다.
KBS 감사실은 '취업규칙을 확대 해석해 헌법상 권리인 집회·결사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집회 참여의 취업규칙 위반 여부는 집회의 성격과 주최한 단체, 참여자의 역할 및 가담 정도를 종합해 판단하고 있다"며 "또한 집회에 참여한 직원의 의도와 무관하게 정치적 시비 또는 충돌로 인한 폭력행위 등에 연루된다면 이는 취업규칙상 '품위유지의무' 위반에도 해당된다"고 답했다.
KBS 감사실은 "명절 또는 휴가철, 사회적 재난 발생 시 통상적으로 직원들에게 복무 관련 유의사항을 안내하고 있다"며 "오늘 게시된 안내는 헌재의 대통령 탄핵 심판 전후로 발생할 수 있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예방적 조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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