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항소심 무죄에 윤석열 탄핵 기각 꿈꾸는가
[김민하 칼럼]
[미디어스=김만하 칼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항소심 무죄 선고 이후 국민의힘은 ‘멘붕’에 빠진 모양새다. 그간 이재명 대표가 항소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것을 전제로 모든 전략을 짜왔는데 그게 한순간에 헝클어졌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범죄자’라는 프레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메시지가 필요하다. 첫 번째는 ‘이재명은 나쁜 사람’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다른 근거를 대는 것이다. 재난 대응에 필요한 예비비를 ‘이재명의 민주당’이 삭감했다는 식의 공격은 여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이재명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가 잘못됐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 일부가 항소심 재판부 판사를 우리법 연구회 카르텔로 규정하는 건 이 전략이다.
그러나 이런 손에 집히는 대로 던지는 전략이 큰 효과를 거둘리는 만무하다. 그러다보니 손대지 말아야 할 것까지 손을 대는 사람들마저 나온다. 가령 윤석열 대통령 탄핵 필요성을 앞장서서 강조했던 한동훈 전 대표 측 인사 일부가 그렇다.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의 경우 소셜미디어에 “현시점에선 면죄부를 받은 이재명을 이길 수 없으니 탄핵은 불가하다. 시간도 벌어야 한다”, “대법원 판결도 받아보고 위증교사와 같은 다른 재판 결과도 받아볼 수 있다”고 썼다. 이를 통해 이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적 비상계엄 선포에 대하여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절차인 탄핵을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는지 재차 확인할 수 있다. 유불리의 관점으로만 보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27일 조선일보에 실린 양상훈 주필의 글로도 표현됐다. <이재명의 ‘빈집 털이’ 113일>이라는 제목의 이 글은 이재명 대표가 권력의 진공상태를 활용해 대선을 의식한 중도 행보를 해왔다고 평가하면서 탄핵이 기각이나 각하로 결론나면 이러한 행보는 끝나고 정국은 다시 윤석열 대 이재명의 무한 정쟁 소용돌이가 될 것이라고 썼다. 그러나 항소심 무죄를 받은 상태에서 탄핵이 인용되면 국민의힘은 대선 후보 경선조차 정상적으로 치르지 못할 수 있고, 이 경우 이재명 대표의 중도 공략은 계속될 수 있다는 게 이 글의 결론이다. 결론에서 명확하게 주장한 건 아니지만, 이 글을 읽은 국민의힘 사람이라면 ‘정권을 내주는 것보다는 윤석열-이재명의 무한 정쟁 소용돌이가 낫다는 뜻’이라고 이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국민의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헌법재판소가 흔들리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한다면 이러한 황당한 구상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한여름 밤의 꿈처럼 끝날 것이다. 그러나 한덕수 총리에 대한 탄핵심판이 5(기각)대 2(각하)대 1(인용)으로 결론나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 일정 확정이 지연되면서 헌법재판소에 대한 의문은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도 헌법재판관들의 의견이 모아지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이유가 일부 헌법재판관들이 법리에 충실한 논의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 헌법재판소 밖의 상황에 신경쓰거나 외부와 코드를 맞추고 있기 때문이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SBS의 27일 보도는 이러한 의심을 본격화 할 수 있는 길을 공중파가 공식적으로 열어 젖힌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헌재 선고 지연 이유는 '5:3 교착상태' 때문?>이란 제목의 보도에서 SBS는 헌법재판관들의 논의가 인용 5명 대 기각 또는 각하 3명으로 갈려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일 수 있다는 전망을 전했다. 결국 9번째 재판관이 임명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교착국면에 빠진 것 아니냐는 거다.
물론 취재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보도는 아니겠지만, 리포트에 정확한 근거가 드러나 있지 않고 보도 내용에도 ‘추정’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는 걸 볼 때 이러한 전망도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제 이런 전망이 공식적으로 보도의 형태로 주요 매체의 전파를 탈 정도로 헌법재판소 결정의 지연이 이상기류를 타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국민의힘 인사들은 헌법재판소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한 상태로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 퇴임일인 4월 18일을 넘길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어찌되었든 이재명 대표의 항소심 무죄 판결 효과를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바람이 반영된 주장이다. 정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정권을 잡고 있는 이들이 헌법재판소에 구체적인 압박을 가하는 일도 상상 가능하다.
만일 이들의 이러한 바람이 실현된다면 헌법재판소는 사실상 마비되고 위기는 장기화 된다. 헌법재판소 스스로가 헌정 중단을 초래함으로써 존재 의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글자 그대로 내전과 같은 상황에 돌입하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상식으로만 본다면, 어떤 헌법재판관이 이를 용인하겠는가? 절차와 법리로 따지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8대 0으로 인용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지금으로서는 이 당연한 결론을 하루 빨리 내리는 것만이 헌법재판소가 자기 의무를 다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지금도 극히 위험한 상황이다.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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