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AI 신문, 그리고 유발 하라리의 우려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미디어스=김홍열 칼럼] 지난주 두 건의 흥미로운 뉴스가 있었다. 하나는 이탈리아에서 세계 최초로 AI가 만든 신문이 발행되었다는 보도다. 지난 18일 이탈리아의 일간지 일폴리오(Il Foglio)는 기사 작성에 모든 과정을 AI가 담당한, 100% AI 신문 '일폴리오 AI'를 발행했다. AI는 기사 작성뿐만 아니라 제목 선정, 인용문 구성, 요약 작업까지 맡았으며, 기자들의 역할은 AI에 질문하고 답변을 검토하는 수준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AI가 작성한 기사는 당연히 문법적 오류 없이 깔끔했고 주술관계가 명확해 가독성이 좋았다. 일폴리오는 AI 기술이 저널리즘에 미치는 영향 분석을 위해 약 한 달간 AI 신문을 발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른 뉴스는 최근 방한한 유발 하라리가 연세대에서 강연한 내용이다. 하라리는 강연 내내 AI 발전 속도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다음은 언론에 보도된 하라리의 발언 중 하나다.
“AI는 모든 지식을 기억할 수 있고, 수려한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권력을 가지고 있다.”
AI가 빠른 속도로 진화하기 때문에 사람은 AI와 싸워서 이길 수 없으며, AI 지배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AI 개발 주체가 적절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라리는 강조했다. 강연 결론 부분에서 그는 AI가 지배적인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 사이에 진실'이라며 신뢰 회복과 협력을 통해서 인간은 AI 시대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우선 위 두 단락에서 공통적인 것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AI가 글을 잘 쓴다는 사실이다. 100% AI가 만들었다는, 일폴리오 AI의 기사는 근사하게 작성되어 있고, 내용은 명확했으며, 눈에 띄는 문법적 오류는 없었다고 보도되고 있다. 즉 일폴리오 AI의 AI 기자들의 글쓰기 실력은 숙련된 사람 기자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하라리는 이미 2년 전 인공지능 글쓰기 프로그램 ‘GPT-3’가 자신의 저서 <사피엔스> 10주년 특별판 서문을 쓰는 것을 보고 충격받은 경험이 있다. 간단한 명령어 입력만으로 짧은 시간 안에 거의 완벽에 가까운 글쓰기가 이루어진 것을 본 하라리의 충격이 당시 여러 언론에 주요 뉴스로 보도되었다.
AI 일반 사용자들이 AI 능력에 기꺼이 동의하게 된 이유는 일차적으로 글쓰기 능력에 있다. 최근 다양한 AI가 출시되고 AI를 사용해 본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어느 정도 AI에 익숙해졌지만, 사실 글을 잘 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이 있어야 하고 지식을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구성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전에 질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질문자의 의도를 분석할 수 있는 분석력이 있어야 한다. 쉽지 않은 능력들이다. 타고난 재능에 오랜 기간 독서와 학습을 거쳐야만 형성되는 능력이다. 사람 중에서도 소수의 인원에게만 허락된 이 능력을 AI가 쉽게 보여준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글을 통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인문학자 하라리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지금도 완벽한 AI가 인간과 달리 계절의 순환이나 삶, 죽음, 휴식 등을 무시하고 매우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어 어느 순간 인간 지능을 초월하는 싱귤래러티(Singularity)가 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다. 그러나 일폴리오 AI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질문과 요청은 기자들로부터 시작된다. 어떤 질문을 할지, 질문을 어떻게 구성할지, 어느 수준으로 질문할지를 결정하고 순서대로 질문한다. 그리고 질문에 의해 나온 답변을 검토해서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 어느 경우에도 반대되는 사례는 없다.
사실 일폴리오 AI가 최초의 AI 신문이라고 하지만, 이미 우리 주변에는 AI가 작성한 글들이 넘쳐나고 있다. AI 기자가 스포츠와 기상, 주식 등 특정 분야의 기사를 작성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AI를 이용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언론사들도 늘고 있다. 기사뿐만이 아니라 보고서, 논문, 소설 등 여러 분야에서 실제 활용되고 있으며 점점 더 확산되는 추세다. 이제 서서히 사람들은 자신이 조금 전 본 기사의 작성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는다. 정보를 얻을 수 있거나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기사에 관심을 주게 된다.
인문학자들의 우려는 기술과 미래에 대한 과도한 '공포감'에서 비롯된다. 물론 미지의 시간에 대한 불안감은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지나친 우려가 오래 지속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일폴리오가 최초의 AI 신문을 냈다고 해서 향후 신문의 종말이 올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일폴리오 AI 사례를 통해 언론인들은 AI 시대에 뉴스를 어떻게 재구성할지, AI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솔루션을 얻을 수 있고, 여기서 얻은 솔루션은 많은 사람들에게 미래 언론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다. 신기술이 처음 등장할 때는 몇몇 사람들에게 흉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선택하는 도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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