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윤석열·허영, 나치 법학자와 뭐가 다를까"
국가비상사태 판단 대통령 권한 주장 일침 "박정희 긴급조치도 국민 판단으로 간주한단 말인가"
[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진중권 광운대 교수가 윤석열 대통령과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 교수의 12·3 비상계엄 옹호 주장에 대해 "나치 법학자의 관념과 뭐가 다른가"라고 비판했다.
진 교수는 20일 중앙일보 칼럼 <비상대권에 관한 단상>에서 윤 대통령이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시절 단둘이 식사 자리에서 나눈 나치 법학자 카를 슈미트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진 교수가 한 칼럼에서 '민주당 정치인들의 법관념이 자유주의와는 거리가 멀고 카를 슈미트를 연상시킨다'고 썼는데, 윤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며 나치 법학자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진 교수와 공유했다는 것이다.
진 교수는 "심지어 그는 법학의 문외한인 내게 카를 슈미트의 헌법관을 '결단주의'라 부른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이 법관념을 다른 것으로 대체한 분이 계신다고 가르쳐 주기까지 했다"며 "그 자리에서 들은 것이 하필 헌법학자 허영 교수의 이름"이라고 했다.
진 교수는 "최근 언론을 통해 접하는 윤 대통령과 허 교수의 발언이 그때 그 자리에서 들었던 것과는 너무 혹은 사뭇 달라 당황스럽다"며 "두 분의 생각이 그새 달라진 것일까? 아니면 내가 무지해서 그의 말귀를 잘못 알아들은 것일까?"라고 자문했다. 윤 대통령과 허 교수는 비상계엄 선포는 헌법상 대통령의 비상대권으로, 국가비상사태를 판단할 권한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허 교수는 지난 10일 헌재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사기 탄핵"을 주장했다.
헌법과 계엄법상 계엄의 요건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를 말한다. 12·3 비상계엄 당시 무장한 계엄군은 국회 창문을 깨고 난입해 국회의원 체포·구금을 시도했다. 헌법과 계엄법 어디에도 계엄을 통해 입법부의 활동을 금지할 수 있다는 내용은 없다. 오히려 헌법과 계엄법은 국가비상사태에서 계엄이 선포되더라도 국회의 계엄 통제권을 규정하고 있다.
진 교수는 "국가비상사태에 계엄의 발동은 당연한 일. 문제는 ‘국가비상사태’가 언제인지 ‘누가’ 정하느냐"라며 "허 교수는 그 권한이 '오로지 대통령에게 있다'고 본다. 이게 '주권은 비상사태를 결정하는 자에게 있다'는 카를 슈미트의 관념과 뭐가 다를까?"라고 비판했다.
진 교수는 "대다수의 국민은 12월 3일의 상황을 국가비상사태로 보지 않았다. 대한민국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규정한다"며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가 비상사태인지 결정할 권한도 당연히 국민에게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헌법에 비상계엄의 요건을 박아 놓고 의회의 동의를 거치게 한 것은 그 때문일 게다"라고 했다.
진 교수는 국민의 눈높이와 달라도 국민 주권을 부여받은 대통령은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양심에 따라 책임지면 된다는 허 교수의 주장을 지적했다. 진 교수는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는 국민 주권을 부여받았으니 그의 독자적 판단을 곧 국민의 판단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라며 "그렇다면 박정희가 시도 때도 없이 내린 긴급조치들도 다 국민의 판단으로 간주해야 한단 말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진 교수는 "‘양심에 따라 져야 한다’는 그 ‘책임’은 사법적 책임이 아니라, 아마도 ‘역사 앞에서의 책임’, 뭐 이런 것일 게다. 대통령의 옹호자들은 이렇게 대통령의 비상대권을 헌법의 ‘바깥’에 놓는다"며 "이게 카를 슈미트의 관념과 뭐가 다른가?"라고 했다.
진 교수는 "슈미트의 논리를 원용해 비상계엄을 변명하는 이들이 정작 탄핵을 '각하'하라고 헌재를 압박하는 대목에서는 철저한 법실증주의자의 면모를 과시한다"며 "이 또한 헌정을 수호하기 위해 헌정을 파괴한다는 대통령의 자가당착 못지않게 인상적"이라고 꼬집었다.
중앙일보는 지난 19일 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결론을 놓고 헌법재판관 8인의 숙고가 길어지는 가운데 탄핵 반대파(반탄파)가 당초 기각론에서 각하론으로 선회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기각론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의 청구 이유를 따져보고 청구인 측 패소로 판결해야 한다는 뜻이다. 12·3 비상계엄은 내란죄에 해당할 만큼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 즉 국헌문란이 없었기 때문에 기각해야 한다는 게 당초 윤 대통령과 반탄파의 주장이었다"며 "각하론은 국회의 탄핵소추 자체가 헌법상 소추 요건에 맞는지, 국회 의결 절차가 적법했는지 등 법적, 절차적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심판 자체가 불성립한다는 주장"이라고 짚었다.
중앙일보는 "반탄파로선 ‘인용 대 기각+각하’로 절차적 문제로 전장을 넓히는 것이 승산이 더 높다는 전략"이라며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헌법과 법률 위반 소지가 크다는 건 스스로도 인정돼 기각 주장은 부담스러우니, 절차상 흠결을 내세워서 각하 가능성을 들고 있다'(김근식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는 주장이 나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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